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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한하늘 Aug 29. 2022

문제 정의가 반이다

작년 말에 AI SUMMIT 2021에 참관했다. 여러 가지 좋은 내용이 많았는데, 그 와중에 반복해서 강조되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문제를 잘 정의하라'는 것이었다. 조직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치는 핵심 문제가 무엇인지 먼저 정의하고, 그 문제를 풀어내는 데 기술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지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올바른 과제를 선정할 수 있고, 경제적으로 가치 있는 연구를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 중심의 반대편에는 기술 중심의 사고가 있다. 이전에 비해 발전된 기술을 개발하고, 그 기술을 응용할 영역을 찾는 것이다. 연구자들이 이런 태도를 많이 보이는 것 같은데, 그러다 보니 비즈니스적 필요와는 동떨어진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연구 영역에서는 이것이 별로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연구 영역에서는 이전에 구현하기 어려웠던 것을 구현하는 것만으로도 가치를 인정받는다. 하지만, 비즈니스 영역에서는 경제적인 가치가 있어야 쓸모 있는 기술로 인정받는다. 아무리 신기한 기술이라도 경제적인 가치가 작으면 관심을 받지 못하게 된다. 바로 이 점을 기업에 소속되어 있는 연구자들이 명심했으면 한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중에는 비싼 방법도 있고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이 드는 방법도 있다. 근본적인 해결이 되는 방법도 있고, 일시적으로 해결하고 넘어가는 방법도 있다. 여러 가지 방법을 여러 가지 기준으로 평가한 후에, 가장 적절한 방법을 선택해서 적용하는 것이 비즈니스에는 필요하다. 그런데, 이렇게 여러 가지 해결책을 검토하기 위해서는 문제를 중심에 두고 있어야 한다. 기술을 중심에 두고 생각하면 다른 해결책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그보다는 자신의 기술을 최적화하는 정도에 머무르기가 쉽다. 그래서, 훨씬 좋은 해결책이 있는데도 상대적으로 비효율적인 해결책을 적용하게 된다.


어떤 발표에서 소의 얼굴을 구분하는 인공지능에 대해 발표자가 이야기한 적이 있다. 인공지능이 발전하여 소의 얼굴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소에게 태그를 다는 것이 인공지능을 이용하는 것보다 훨씬 싸기 때문에, 소의 얼굴을 구분하는 인공지능은 필요하지가 않다는 얘기였다. 인공지능 영역 안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한다. 게임과 관련된 인공지능을 연구할 때 많이 쓰이는 것이 강화 학습이다. 그런데, 연구 영역에서 강화 학습을 많이 이용하는 것은, 그것이 좋은 성능을 내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단지 데이터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일 때도 많다. 연구 영역에서는 양질의, 그리고 충분한 양의 데이터를 구하는 것이 쉽지 않다. 하지만, 기업에는 데이터가 많다. 게임 회사에는 게임과 관련된 데이터가 충분하다. 그리고 데이터를 이용하면 더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과제들이 있다. 그런데, 기존 연구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데이터가 필요 없는 강화 학습으로 무조건 접근하고 보는 경우들이 있다. 이런 일도 문제보다는 기술 중심의 사고를 할 때 더 잘 발생한다.


비즈니스 영역에 몸 담고 있는 연구자가 문제 중심의 사고를 해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대부분의 중요한 의사결정이 비즈니스 전문가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비즈니스 전문가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문제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판단을 내려왔다. 문제를 중심으로 생각해야 우선순위를 결정할 수 있고, 기회비용을 고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자가 연구한 결과를 제품이나 서비스에 적용하려면 의사결정자의 승인이 필요하다. 그 승인을 얻어내기 위해서는 연구자의 주장에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문제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사람에게 설득력 있는 주장을 하기 위해서는, 똑같이 문제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한다.


연구 영역에서는 기술 자체가 목적이 된다. 그래서, 기술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된다. 하지만, 비즈니스 영역에서 기술은 목적이 되지 못한다. 그것은 경제적인 가치를 생산하는데 쓰이는 도구일 뿐이다. 목적을 중심에 두지 않고 도구를 중심에 둔다면, 망치를 들고 그것을 쓸 곳만 찾아다니는 상황에 빠질 수 있다. 그래서는 조직의 목적에 기여하는 것이 어려워질 수 있다. 따라서, 비즈니스 영역에 몸담고 있는 연구자라면, 늘 도구보다는 목적에 더 관심을 갖고, 해결책보다는 문제를 중심에 두어야 한다. 그것이 조직에도 더 도움이 되고, 길게 보면 연구자 자신의 커리어에도 도움이 된다.


<summary>

비즈니스 영역에서는 비즈니스에 기여할 수 있는 기술만이 인정받는다.

문제 중심으로 생각해야 좋은 과제를 선정하고 최선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문제 중심의 사고에 익숙한 조직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똑같이 문제 중심의 접근을 해야 한다.

기술은 목적이 아니라 도구다. 도구가 중심에 있기보다는 목적이 중심에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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