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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한하늘 Nov 21. 2022

유명 IP를 활용한 게임이 실패하는 이유

PC 롤플레잉 게임이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에, 유명한 IP를 활용한 게임이 많이 등장했다.(IP를 활용한다는 것은, 스타워즈 같은 유명한 작품의 테마나 세계관을 사용한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그중에서도 기억에 나는 게임이, 너무나도 유명한 만화의 IP를 활용한 게임이었다. 많은 기대를 안고 게임을 시작했다. 원작에 충실한 그래픽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게임 플레이도 처음에는 괜찮아 보였다. 하지만, 3일 만에 게임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재미가 너무 없었다. 사실, 그 게임뿐만 아니라, 유명 IP를 가져다 쓰고 망한 게임은 수두룩하다. 한 때는 유명 IP를 쓰면 다 망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문제는 IP만 좋으면 게임이 성공할 것으로 생각하는 데 있었다.


한 때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게임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게임이 종종 등장했지만, 대부분 실패하고 말았다. 그래서, 여성은 게임을 잘하지 않는다는 인식까지 생겼다. 나중에 여성이 더 많이 하는 게임들이 등장하고 나서야 선입견이 조금은 사라진 것 같다. 서로 총으로 겨누어 쏴 죽이는 게임을 여성이 좋아하는 색상과 디자인으로 꾸며놓는다고 해서, 여성들이 그 게임을 좋아할 리는 없다. 하지만, 꽤 오랫동안 게임계는 그런 식으로 여성 대상의 게임을 만들었다. 그리고, 여전히 그런 게임이 종종 등장하고 있다.


게임의 요소들 중에는, 재미를 만들어 내는 요소가 있고, 재미를 강화하는 요소가 있다. 디펜스 게임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묘수를 찾아나가는 과정은 재미를 만들어 내는 요소에 해당한다. 반면, 웨이브를 형성하며 다가오는 적을 제거할 때 나타나는 화려한 연출은 재미를 강화하는 요소에 해당한다. 재미를 만들어 내는 요소가 탄탄하면, 강화하는 요소 없이도 성공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재미를 만들어 내는 요소가 없으면, 강화하는 요소가 아무리 잘 만들어졌어도 성공을 기대하기 어렵다. IP는 바로 재미를 강화하는 요소에 해당한다. 좋은 IP는 재미있는 게임을 더 재미있게 만들어 주지만, 재미없는 게임을 재미있게 만들어 주지는 못한다.


재미를 만들어 내는 요소와 강화하는 요소를 착각하는 것은, 시선을 본질에 두지 않고 피상적인 것에 두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어떤 만화를 좋아하는 이유와 어떤 게임을 좋아하는 이유를 알아야 하고, 그 이유들이 새로운 게임 안에서 잘 어우러지게 설계해야 한다. 그런데, 어떤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고, 어떤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으니, 그 만화 소재로 그 게임과 비슷한 게임을 만들기만 하면 대박을 칠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게임을 제대로 벤치마킹하지 못하고 어설프게 흉내 내는 일이 발생하고, 재미를 만들어 내는 본질적인 요소가 취약한 상태가 된다.


스타워즈를 좋아한다고 해서 스타워즈 테마로 만든 게임을 무조건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스타워즈는 스타워즈고, 게임은 게임이다. 스타워즈 광팬이라고 하더라도, 게임은 재미있는 게임을 하고 싶어 한다. 오히려, 기대했던 경험을 하지 못했을 때, 스타워즈의 팬은 더 빨리 실망할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유명 IP는 양날의 칼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은 응용과 혼합은 곰의 몸에 토끼 머리를 한 괴물을 만들어 낸다. 이런 일이 비단 게임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닐 것이다. 방송, 영화, 그 밖의 어떤 콘텐츠든 간에, 유명한 IP를 이용해서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 때는 IP 없이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을 만큼의 본질적인 성공 요소를 먼저 구축한 다음, 그 위에 IP를 잘 어울리게 결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IP 없이 콘텐츠를 만드는 것보다 더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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