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Game과 AI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취한하늘 Jan 16. 2023

여성과 게임

게임은 꽤 오랫동안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 오락실에 가면 늘 남성들로 가득했다. 테트리스라는 게임이 나온 이후에는 오락실에서 가끔 여성이 목격되기도 했지만, 매우 소수였다. 온라인 게임이 대세가 된 이후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PC방에도 남성이 대부분이었고, 유명 게임의 플레이어 자체가 남성에 많이 편중되어 있었다.


여성을 위한 게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번번이 실패했고, 그러다 보니 '여성은 게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라는 인식이 게임 업계에 지배적이었다. 실제로 게임에 대해 인터뷰한 결과를 봐도, 여성들은 게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나왔다. 관심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부정적인 행위로 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가 '팜빌'이라는 게임이 등장하면서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소위 '소셜 네트워크 게임(SNG)'의 트렌드를 이끌었던 게임인데, 농장을 경영하는 게임이었다. 플레이어 간의 상호작용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게임이었고, 어려운 문제를 풀기보다는, 해야 할 일을 부지런히 하면서 성장하는 게임이었다. 기존의 게임과는 다른 문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게임 콘퍼런스에서는 한 개발자가 벌떡 일어나 '저건 게임이 아니야!'라고 외쳤다는 일화도 있다. 실제로 이것을 게임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 설왕설래가 있기도 했다.


'팜빌'은 새로운 형태의 게임이기도 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새로운 고객을 끌어들인 게임이라는 사실이었다. 기존의 게임들에서는 대표적인 고객이 '10대~30대 남성'이었다. 그런데 '팜빌'의 대표 고객은 '43세 여성'이었다. 연령도 비주류, 성별도 비주류에 속했다. 그리고 그런 플레이어의 수가 매우 많았다. 이후로 많은 SNG들이 여성을 대상으로 하여 등장했고, 성공한 게임도 많이 나왔다.


우리나라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 비슷한 일이 한번 더 발생했는데, 바로 '애니팡'과 '아이 러브 커피'의 등장이었다. 이 두 게임은 카카오 게임과 운명을 함께 했다. 카카오가 메신저와 연동되는 게임 사업을 시작한다는 것은 게임 업계에 많이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메이저 게임 회사들은 선뜻 카카오에 게임을 연동하려 하지 않았다. 이유는, '카카오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니다'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그래서 카카오는 게임을 유치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그러다 보니 퍼블리셔(게임의 출시, 마케팅, 운영을 담당하는 파트너)들에게 큰 관심을 받지 못하던 '선데이토즈'와 '파티게임즈'가 카카오의 주요 파트너가 되었다.


이후의 일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대로이다. '애니팡'과 '아이 러브 커피'는 큰 성공을 거두었고, 카카오와 선데이토즈, 파티게임즈는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두 게임도 여성들에게 특히 큰 사랑을 받았다. 이후 게임에 대한 여성들의 인식도 크게 달라졌고, 여성을 대상으로 한 모바일 게임이 여러 장르에 걸쳐 많이 등장했다.


안타깝게도 최근에는 다시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게임의 수가 줄어든 것 같다. 여성이 게임을 많이 하게 되었어도, 돈은 여전히 남성들이 훨씬 많이 쓰고 있었다. 그리고 많은 게임 회사들이, 많은 플레이어를 확보하기보다는 돈을 많이 쓰는 소수의 고객을 확보하는 데 집중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다시 남성에 집중하는 게임들로 제작이 편중된 것 같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게임이 줄어들기는 했어도, 게임에 대한 여성의 인식이 나빠진 것은 아니다. 긍정적으로 전환된 인식은 여전히 유효한 것 같다. 그리고, 예전만큼은 아니어도 여성을 대상으로 한 게임이 꾸준히 나오고 있기는 하다. 게다가, 여성을 대상으로 하여 성공한 게임이 많이 등장했기 때문에, 여성을 대상으로 어떻게 게임을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해 통찰도 예전보다 많이 쌓여있다. 따라서, 언젠가는 다시 여성 대상 게임의 붐이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게임과 더불어 주목해야 할 것이 노인을 대상으로 한 게임이다. 우리나라 인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세대가 점차 노년기에 접어들고 있다. 그리고 그 세대는 게임에 익숙한 세대다. 사람은 나이가 들어도 취미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게다가 게임은 혼자서도 어디서도 할 수 있고, 돈도 적게 드는 편이다. 따라서, 노인을 대상으로 한 게임 시장도 점점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경영학자 톰 피터스는 일찍이 미래의 두 가지 시장으로 '여성 시장'과 '노인 시장'을 지목했다. 그중 하나는 이미 현실화되었고, 나머지 하나는 현실화되고 있다. 만약, 블루 오션을 찾고자 한다면, 여성과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게임 시장을 한번 들여다보면 어떨까 생각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끓는 물속의 한국 모바일 게임 산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