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의 활용에 대한 짧은 생각
15년 정도 게임 만드는 일을 하다가, 몇 년 전부터 AI 관련 부서에서 일을 하고 있다. 다른 연구원들은 AI의 성능이나 동작하는 방식, 새로운 이론에 관심이 많은데, 나는 AI를 게임 제작과 서비스에 연결하는 데 관심이 많다. 그래서 세미나나 학회를 가도 원리보다는 응용이나 쓸모에 더 관심을 갖고, AI를 활용하여 실질적인 개선을 이룬 사례들을 찾아 듣는 편이다.
그런 면에서 매년 AI Summit을 참관하고 있다. AI Summit은 여러 산업 분야에서 AI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확인하기에 좋은 콘퍼런스이기 때문이다. 재작년에는 여러 유망한 스타트업들이 다양한 발표를 했고, 작년에는 대기업들에서 활용되는 AI에 대한 발표가 많이 있었다.
그중 어느 발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떤 발표자가 AI의 활용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었다. 하나는 '비용을 줄이는 측면'이고, 하나는 '품질을 향상하는 측면'이었다. 그리고, 파이프라인의 어느 부분에서는 비용에 집중하고, 어느 부분에서는 품질에 집중한다는 얘기를 했던 것 같다.
그 발표자는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사실 어느 산업 분야건 AI의 활용은 그렇게 두 부분으로 크게 나뉘는 것 같다. 내가 몸 담고 있는 게임 산업만 해도, 비용을 줄이는 측면과 품질을 향상하는 측면 모두에서 AI가 이미 많이 활용되고 있다.
게임 산업에서는 그림이나 애니메이션을 생성한다던가, 테스트 자동화, 비정상 유저 탐지, 고객 대응 등에 AI를 활용하여 비용을 줄이는 사례가 늘고 있다. 동시에, 적절한 유저끼리 상대하도록 하는 것, 게임에서 필요에 따라 콘텐츠를 생성하여 사용하는 것, 유저와 같이 플레이할 인공지능 플레이어를 투입하는 것 등으로 플레이어의 게임 경험을 향상하고 있기도 하다.
비용 감소가 가져다주는 중요한 효용은, 더 적은 리소스로 게임을 만들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만큼 더 많은 게임을 만들 수 있고, 더 빨리 결과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흥행에 실패했을 때의 부담도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반면, 품질 향상은 게임의 성공 가능성을 높여 준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플레이어의 경험을 더 풍요롭고 만족스럽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매출은 고객의 수와 고객 1인당 지출 비용의 곱으로 이루어진다. 매출이 극적으로 증가하기 위해서는, 매출을 구성하는 두 변의 크기가 함께 증가해야 한다. 한 변이 커지면 산술적으로 증가하지만, 두 변이 함께 커지면 기하급수적으로 매출이 증가한다. AI의 효용에도 비슷한 느낌이 있다. 비용 감소나 품질 향상의 한 측면에서만 효용을 보는 것보다, 두 측면 모두에서 효용을 획득했을 때, 그로 인한 이익 증가가 극적으로 커질 것이다.
회사의 입장에서 보면, '비용 감소'가 조금 더 매력적으로 보일 것 같다. 비용 감소의 효용은 즉각적으로 발생하기도 하고,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면도 있기 때문이다. 반면, 품질 향상의 효용은 지연되어 발생하며, 확실하게 보장되어 있지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 공을 들여야 하는 것은 '품질 향상'쪽이 아닐까 한다. 경쟁사보다 비용이 높으면 그만큼 이익이 줄어드는 것이지만, 경쟁사에 품질에서 밀리면 이익이 아예 발생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게임 같은 콘텐츠 산업에서는 더 그렇다. 심지어 비용이 줄어들면 시장에 나오는 게임의 수가 많아질 테니, 그만큼 품질이 더 중요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게임 산업은 부침이 심하다. 20년 전에도 유망했고 지금도 잘 나가는 기업은 엔씨소프트나 넥슨 정도가 전부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10년으로 주기를 줄여도 한 손의 손가락을 다 채우지 못할 것 같다. 그만큼 변화의 시기에 크게 흔들린다는 것이고, 위기이자 기회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분야라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이 누군가에게는 위기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기회가 되는 또 한 번의 변곡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