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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한하늘 Jan 02. 2023

끓는 물속의 한국 모바일 게임 산업

'끓는 물속의 개구리'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뜨거운 물에 개구리를 넣으면 깜짝 놀라 뛰쳐나오지만, 미지근한 물에 먼저 개구리를 넣고, 물의 온도를 서서히 높이면, 개구리가 빠져나오지 않고 죽게 된다는 이야기다. 어쩌면 대한민국의 게임 산업이 바로 이러한 처지에 놓여있는 것 아닐까 싶다.


한때 중국 게임이 비웃음의 대상이 되었던 시기가 있다. 한국 게임 회사들이 창의적인 게임을 만들 때, 중국 게임 회사들은 그것을 흉내 내는 데 열을 올렸던 시기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 중국에서 만들어진 게임의 품질이 점점 향상되고, 독자적인 콘텐츠들도 등장하는 동안, 한국의 게임 회사들은 잘 나가는 게임을 모방하거나, 과거에 성공했던 제품을 다시 활용하는 데 열을 올렸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남을 비웃기는커녕, 비웃음을 사지나 않으면 다행인 처지가 되었다.


이런 변화의 기저에는 산업화가 있다. 시장이 커지면서 경쟁이 더 치열해졌고, 하나의 게임을 만들고 서비스하는 데 드는 비용이 급격하게 올라갔다. 특히, 슈퍼셀이 처음으로 텔레비전 공중파 광고를 선보인 이후에 매출과 비용이 함께 상승하는 시기가 있었던 것 같다. 기억에는 당시 슈퍼셀이 한국에 사용한 마케팅비가 100억 원 정도였던 것 같은데, 그렇게 돈을 들이면 시장이 더 커진다는 것이 입증되었고, 이후에는 많은 회사들이 마케팅에 큰돈을 쓰게 되었다.


시장이 커졌기 때문에, 게임이 성공하면 마케팅 금액이 문제 되지 않을 정도로 큰돈을 벌 수 있었다. 문제는, 성공의 확률이 높지 않다는 데 있다. 비슷한 게임이 수도 없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성공하는 게임은 한 두 개였고, 나머지는 도태됐다. 그래서, 수십억 원의 개발비를 들이고 망하는 사례가 많이 나왔다. 심지어, 영화는 극장에서 흥행에 실패하더라도 손해를 보전할 수 있는 방법들이 있지만, 게임은 스토어에서 흥행하지 못하면 그걸로 끝이었다.


로우 리스크, 로우 리턴일 때는 모험도 많이 하고, 도전적인 시도도 많이 한다. 하지만,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 되면, 리스크를 줄이는 데 더 몰두하게 된다. 그래서, 게임 회사들도 안전하게 매출을 올리는 방법을 선호하게 됐고, 그것이 여러 가지 과정을 거쳐, 성공작을 반복해서 모방하는 지금의 양상으로 귀결되었다.


게임 산업 초창기에, 게임은 '창작'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게임을 '생산'한다. 한 때 한국 게임 산업의 자존심이자 자긍심으로 여겨지던 회사조차도, 지금은 마치 게임 '공장'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물론, 모든 게임, 모든 회사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창작을 하고 있는 회사도 있고, 감탄을 자아내는 게임들도 있다. 하지만, 주류는 '생산된 게임'들이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모바일 게임 시장이 그렇다.


라스베이거스의 카지노 산업은 전통적으로 큰돈을 버는 산업이었다. 현재도 역시 큰돈을 벌고 있다. 하지만, 지금 라스베이거스의 카지노 업계는 큰 숙제를 안고 있다. 카지노의 매출이 해마다 줄고 있는 것이다. 젊은 사람들이 카지노를 가지 않고, 기존 고객들로 유지하고 있으니, 여전히 돈을 벌기는 해도 그 규모는 꾸준히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라스베이거스의 카지노들은 여러 가지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슬롯머신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에, 젊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게임을 도입해보기도 하고, 모바일 카지노 게임과 연동도 시도한다. 얼마나 성과를 거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분명 물이 서서히 끓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고, 거기서 빠져나오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다.


한국의 게임 회사들은 여전히 돈을 잘 번다. 하지만, 과연 십 년 후에도 지금과 같은 안락함을 느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최근 몇 년 사이에, 탄탄하다고 여겨진 중견 게임 회사들이 무너지는 일이 있었는데, 지금 잘 벌고 있는 회사들도 향후 십 년 사이에 그런 일을 겪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물론, 사업을 다변화하려는 시도도 있고, 주류 장르가 아닌 게임들도 출시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성공 사례를 모방하려는 형태가 많고, 좋은 게임을 만들려는 노력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 같다.


슈퍼셀은 핀란드의 게임 회사다. 한국에는 슈퍼셀보다 더 일찍부터 게임을 만들었고, 더 많은 게임을 만들었으며, 더 많은 직원을 보유한 회사들이 있다. 안 될 것 같았던 각종 콘텐츠 분야에서 한국 콘텐츠의 약진이 두드러진 지금, 과연 대한민국의 게임과 게임 회사들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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