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 운을 사용하는 이유
'푸에르토리코'라는 보드 게임이 있다. 보드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알 정도로 유명한 게임이다. 보드 게임 순위에서 몇 년 동안 1위를 했다. 지금은 새로운 게임이 기록을 경신했을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압도적으로 오랜 기간 1위를 한 게임이었다. '푸에르토리코'를 1위에서 내려오게 만든 게임은, '푸에르토리코'를 이겼다는 사실로 관심을 더 크게 끌기도 했다.
'푸에르토리코'는 경영 전략 게임이다. 물건을 생산하고 선적해서 돈을 많이 벌면 된다. 이런 게임은 그 전에도 그 이후에도 많이 있다. 그런데 유독 '푸에르토리코'만이 가진 특징으로 회자되는 것이 있다. 바로 '운이 작용하지 않는 게임'이라는 것이다. 물론, 운이 완전히 작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99%는 운과 상관없이 진행된다'라고 할 정도로, 거의 순전히 플레이어의 실력으로 판가름 나는 게임이다. 그것이 많은 전략 보드 게임 애호가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사실 '운'은 게임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다. 운을 배제할 수 없어서 게임에 운이 작용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운이 게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실력으로만 승부를 내고 싶어 하는 소수의 전략 애호가들에게는 불필요할 수 있어도,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에게는 '운'이 반드시 필요하다.
운이 필요한 첫 번째 이유는 누구에게나 성공의 경험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실력은 사람마다 다르다. 잘하는 사람도 있고, 못하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사람과 사람끼리 대결하는 게임에서는, 잘한다는 사람끼리 모아 놓아도 금방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으로 구분되고 만다. 그런데, 실력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해서 실패하고 패배하는 것을 좋아할 리는 없다. 따라서, 실력과 상관없이 어느 정도는 성공과 승리를 경험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운이 게임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 주사위로 진행하는 보드 게임들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편할 것 같다.
두 번째로는 플레이어들에게 매번 다른 경험을 만들어 주기 위해 사용한다. 아무리 재미있는 경험이라고 해도, 같은 경험을 반복하면 재미가 떨어진다. 따라서, 매번 조금씩 다른 경험을 하게 해주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게임에 임의성(ramdom effect)을 넣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운이 포함되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단순히 성공과 실패를 놓고 봤을 때도, 성공만 반복하는 것보다 다수의 성공과 소수의 실패가 섞여있을 때 게임을 더 재미있게 느낀다는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도 운은 좋은 도구가 된다.
세 번째 이유는 게임을 이해하기 쉽게 만들기 위해서다. 운에 의해 결과가 정해지는 구조는 비교적 단순하고 이해하기 쉽다. 운으로만 결과가 정해지는 가위바위보나 제비뽑기를 생각해보면 된다. 반면, 운이 작용하는 범위를 줄이려고 하면 게임의 규칙이 복잡해질 수 있다. 이것이 복잡한 규칙에 익숙한 플레이어들에게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배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플레이어들에게는 높은 진입 장벽이 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푸에르토리코를 새 플레이어에게 설명하는데 40분~60분 정도 소요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주변에서 같이 플레이할 사람을 구하기 어려웠다.
마지막으로, 운은 플레이어에게 기대감을 준다. 어떤 논문에서, 실력이 좌우하는 게임보다 운이 좌우하는 게임이 더 중독성이 높다는 얘기가 있었다. 운이 자기편이라고 믿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임으로 슬롯머신을 들 수 있다. 슬롯머신에서 한참 동안 대박이 터지지 않으면, 플레이어는 이제 대박이 터질 때가 되었다고 믿는다. 슬롯머신에서 대박이 터지면, 이제 좋은 흐름이 왔다고 믿는다. 그래서 이래저래, 플레이어는 슬롯머신을 계속하게 된다. 이런 면 때문에도 게임은 운을 능동적으로 사용한다.
운이라는 것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통제할 수 없다는 그 사실에 일종의 재미가 숨어 있다. 따라서, 재미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운이 동작하는 원리를 탐구해보고, 운이 작용하는 흐름을 이용해보려고 하면 좋을 것 같다. 운은 단순히 '운빨'이라는 말로 치부될만한 것이 아니다. 재미를 만들어내는 훌륭한 도구인 것이다.
<게임이 운을 사용하는 이유>
누구에게나 성공의 경험을 만들어 주기 위해
매번 다른 경험을 하게 해 주기 위해
게임을 이해하기 쉽게 만들기 위해
좋은 결과에 대한 기대감을 주기 위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