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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는다는 것

by 취한하늘

타인에 삶에 더 잘 공감하게 되는 것


나는 매우 이성적인 사람이다. 감정에 휘둘리는 것을 지양했다. 나 자신이 감정을 많이 억제하다 보니,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공감이라는 것은 나와는 다소 동떨어진 개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인생을 좀 길게 살다 보니, 느리긴 해도 여러 가지 감정을 겪게 되었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특히,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감정을 좀 더 깊게 경험하게 된 것 같다. 누군가를 나 자신보다 사랑하게 되는 것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나 자신이 중요했는데, 그런 상상할 수 없었던 감정을 가지게 되고 나니, 그 뒤로는 온갖 감정들이 너무 쉽게 나 자신을 침공하게 되었다.

누군가는 나이가 들수록 이성보다는 감성이 지배하게 된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그것뿐만은 아닌 것 같다. 사랑하는 감정을 강하게 느끼면, 슬퍼하는 감정, 분노하는 감정, 외로워하는 감정, 기타 모든 감정들도 더 강하게 느끼게 되는 것 같다.

타인의 감정에 공감이 되는 것이 좋은 일이기는 하다. 특히 글을 쓸 생각이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내 본성과 다소 어긋난 방향이다 보니 불편함도 있다. 긍정적인 감정이야 불편할 게 없지만, 부정적인 감정들이 깊게 느껴지는 것은 아직 잘 감당이 안된다. 예전에도 슬픈 장면은 잘 못 보는 편이었는데, 요새는 거의 안 보고 있다. 그래서 아내와 드라마를 같이 보다가도 서재로 곧잘 들어가 버린다.


새로운 삶을 다시 준비하는 것


청소년 시절에는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이 유일한 목표였다. 대학을 들어가서는 한동안 폐인 생활을 하다가, 제대 후 프로그래밍을 공부해서 프로그래머로서 커리어를 시작하고, 결혼을 해서 가정도 꾸렸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할 지에 대해 큰 고민이 없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가 명확한 편이었다.

그런데, 은퇴를 생각해야 할 나이가 되고 나니 은퇴 이후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다소 막막하다. 조직의 일원으로 성과를 내는 것만 생각하고 살아왔기 때문에, 조직을 벗어난 삶에 대해서는 잘 그려지지가 않는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어서, 조금씩 삶에 변화를 주고 있다.

올해 들어 글을 브런치에 올리기 시작한 것도 그런 변화 중 하나였다. 내가 조직과 상관없이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아무래도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걸 잘하는 편이니, 논리적인 글을 좀 써보기로 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직장 내에서의 글쓰기 외에는 오랫동안 글 쓸 일이 별로 없었어서, 막상 시작하고 나니 젊었을 때처럼 글이 수월하게 쓰이지는 않는다. 그래도 자신감은 생겨서, 올해 안에 그만두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다.

그 외에, 안 하던 주식 투자도 조금씩 하기 시작했고, SNS도 잘 쓰지 않던 플랫폼을 하나 더 활용하게 되었다. 더 많은 변화가 필요할 것 같지만, 올해는 지금 시작한 것들만 충실히 해보기로 했다.

지금까지의 내 삶은 어찌 보면 직장 속 한 귀퉁이에 꼭꼭 숨어있는 삶이었다고 할 수 있다. 직장 내에서야 활발히 활동했지만,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그다지 드러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러던 것을, 이제 조금씩 세상에 내보이고자 하고 있다. 보통 노년의 삶이라고 하면 세상의 중심으로부터 벗어난 삶을 생각하게 되는 것 같은데, 오히려 나는 중심으로 들어가고자 하고 있으니, 묘한 느낌이 든다.


잃어가는 것을 인정하는 것


나이를 먹는다는 것에 굉장한 저항감을 가지고 대부분의 삶을 살았다. 청소년 시절부터 나이 드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고, 그래서 서른까지만 살겠노라 다짐하기도 했다. 아마 그 시절의 내가 지금 내 나이를 들으면 까무러칠지도 모르겠다.

단순히 내 나이를 가리키는 숫자가 커지는 것을 싫어한 게 아니라, 나이가 들어 몸과 정신의 활동이 둔해지는 것을 싫어했다. 그래서 40대 초반까지도 청년의 정신을 유지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몸은 일찍 포기했다.) 선입견을 갖는 것을 두려워하고, 안정보다는 도전을 선택하고, 생각하는 것을 귀찮아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40대 중반에 진입하고부터,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나이 먹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그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그제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예전에는 메모라는 것이 별로 필요하지 않았다. 글을 쓰면 오타가 별로 없었다. 복잡한 설계도 머릿속에 담고 이리저리 조작이 가능했고, 장문의 글도 머릿속에서 모두 정리한 뒤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이 지금은 예전만큼 되지 않는다.

어느 순간부터 나이를 먹는 것에 저항하지 말고, 잘 받아들이고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메모를 열심히 해서 할 일을 깜빡하지 않게 한다. 글을 쓰면 맞춤법 검사도 하고, 여러 번 읽으면서 오타를 수정한다. 긴 프로그램이나 글을 작성할 때는, 전체적인 얼개를 먼저 적고 한 부분씩 공략해 나간다.

나이를 먹으면서 하나씩 잃어가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지금의 나 자신에게 충실하게 사는 것만이 신이 인간에게 허락한 최선인 것 같다.


무언가를 남기려고 노력하는 것


젊었을 때는 세상에 무엇을 남긴다는 개념은 내 머릿속에 없었다. 영겁의 시간 속에서 내 인생은 아주 짧은 찰나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그저 치열하게 살다가 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서, 내게 주어진 시간이 끝난 후에도 어떤 형태로든 내 존재가 세상 어딘가에 남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세상에 어떤 가치를 남기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내 삶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인 것 같다. 글을 쓰기 시작한 것에도 이런 이유가 포함되어 있다. 내가 탐구하고 알게 된 것들을 세상에 남기고, 어딘가에서는 의미 있게 쓰였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논리적인 글쓰기를 먼저 시작한 것은 그것이 가장 잘 써지기 때문이다. 시간이 몇 년 지나고, 쓰는 것이 더 익숙해지고 나면,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풀어내게 될 것이다. 그것은 아마 이야기의 형태가 될 것 같다. 메시지를 담은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 내 마음속의 숨겨진 소망이었는데, 이제는 그것을 정말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있다.

글을 쓰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적 가치가 있는 일에 점점 더 시선이 간다. 아무래도 아이들이 커서 독립할 때까지는 경제적 가치가 더 중요하겠지만, 그런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나면 사회적 가치가 있는 일들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삶의 흔적을 더듬는 것


젊었을 때는 뒤를 돌아보는 일도 거의 없었다. 늘 앞만 보고 달렸다. 과거를 회상하는 일은 무의미한 일로 느껴졌다. 한번 결정한 것에는 절대로 후회가 없었고, 현재 상황이 좋지 않아도 지금 무엇을 해야 좋은 미래가 올 것인가에 대해서만 생각할 뿐이었다.

지금도 그런 성향이 많이 남아있기는 하다. 하지만, 가끔씩 옛날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전에는 아이들을 볼 때나, 본가에 다녀올 때 생각나는 정도였던 것이, 요즘은 혼자 있다가도 문득 옛날 생각이 나고는 한다.

지금의 내가 어린 시절의 나를 보는 느낌은 묘한 부분이 있다. 분명히 내가 겪었던 일이고, 내가 살았던 환경이고, 나 자신인데, 마치 다른 사람이 주인공인 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 때가 많다. 시장에서 엄마를 잃어버리고 울면서 집을 찾아가던 어린아이의 모습, 아빠 자전거 뒤에 탔다가 바퀴에 발가락이 살짝 스쳤는데 겁이 나서 엉엉 울던 소년의 모습, 친구들과 열심히 뛰어놀고 수돗가에 가서 수돗물을 벌컥벌컥 들이켜던 모습, 그런 모습들이 모두 나였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진다. 지금의 나와 내 주변과는 너무나도 이질적이어서 그런 것 같다.

한 번은 어린 시절의 기억을 생각나는 대로 글로 써 내려가 본 적이 있다. 처음에는 단편적인 기억들을 나열할 뿐이었던 것이, 점점 새로운 기억들이 꼬리를 물고 나타나서, 나중에는 시간이 부족할 만큼 글이 빠른 속도로 만들어졌다. 그 과정이 무척 재밌어서 놀랐고, 생각보다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는 것에 놀랐다. 그리고 지금은 그런 기억들이, 정확히는 내가 살아온 그 시간들이, 무척 소중하게 느껴진다.

지금은 기억의 글쓰기는 안 하고 있지만, 글이 잘 안 써질 때 언제나 꺼내 쓸 수 있는 든든한 저금통이 되어 있다.


그 시절의 헤세


헤르만 헤세의 '아름다운 죽음에 관한 사색'이라는 책이 있다. 헤세가 인생 후반기에 쓴 글들을 모아 놓은 책이다. 인생의 후반기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할지 알려주고 있다. 이 책을 중학교 1, 2학년 때 읽었다. 헤세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죽음'이라는 주제에 몰입하던 시기여서 제목을 보고 샀던 책이다. 그 시절에도 읽고 나서 큰 감명을 받고, 내 책장에 아주 오랫동안 머물렀던 책인데,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이 책을 다시 읽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

장년기와 노년기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걱정도 있지만, 사실 약간의 설렘도 가지고 있다. X세대의 소년기와 청년기는 기존의 세대와 다른 모습이었다. 그 X세대가 이제 장년기에 진입하고 있다. 과연 우리 세대가 보여줄 장년기와 노년기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그 속의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지, 나 자신이면서도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미소를 만들어주는 추억과 설렘을 만들어주는 미래가 있으니, 어쩌면 나는 괜찮은 시절들을 보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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