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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지통에 들어있는 것들

by 취한하늘

유럽을 혼자 여행할 때, 어떤 미술관에서 피카소의 스케치들을 볼 수 있었다. 유명한 작품을 그리기 전에 먼저 그렸던 것 같은데, 비슷한 그림이 여러 개 있었다. 피카소는 천재라서 단번에 훌륭한 그림을 그려냈을 줄 알았는데, 피카소의 역작들도 수많은 버림의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인공지능 연구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낸 뒤에는, 특별한 성과 없이 시간을 소모한 실험들이 무수히 쌓여 있었다. 그래서였는지, 내가 인공지능 분야에 처음 발을 들여놓을 때, 연구소장이 나에게 제일 처음 했던 말은 실패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과물만 보고 일의 양을 가늠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자신이 잘 모르는 타인의 분야에 대해 평가할 때 그런 실수를 종종 하게 된다. 하지만, 좋은 결과물 뒤에는 결과로 보이지 않는 작업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기획, 아트, 프로그래밍, 그 밖의 모든 작업에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 심지어 좋은 결과물로 이어지지 않은 경우에도, 많은 시도들이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피라미드의 높이를 1미터 더 높이기 위해서는 1미터짜리 돌 하나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바닥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돌을 쌓아 올린 후에야 1미터가 더 올라간다. 더 좋은 결과를 만들기 위해서 소모되는 시간과 노력들, 그리고 버려지는 작업물들을 알아주고 인정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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