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가고 싶다."
아들의 이 한 마디에 바로 제주도 여행을 계획했다. 먼저 숙소를 알아보고, 비행기 티켓을 예약한 후에, 숙소 주변으로 갈만한 곳과 먹을만한 곳을 선정했다. 그리고, 2주 만에 제주도를 방문했다. 갑자기 계획한 여행이어서 일정은 3박 4일로 짧게 잡았다. 그나마도 가는 날과 오는 날은 이동에 시간이 많이 걸려서 중간의 2일만 알차게 놀자고 생각하고 갔다. 사실, '네가 가고 싶다면 언제든지 데려다주겠다'는 생각의 여행이었기 때문에, 일정을 길게 잡을 필요는 별로 없었다.
제주공항에 비행기가 착륙하는데, 창문 밖으로 백록담이 보여 기분이 좋았다. 열 번 넘게 제주도를 방문했지만, 여행 내내 백록담이 보이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바람이 좀 많이 불었지만, 하늘이 계속 맑아서 좋았던 여행이다.
숙소는 곽지 해수욕장에 있는 호텔이었다. 원래는 저녁 6시쯤 도착하는 일정이었는데, 비행기가 30분 늦게 출발하고, 공항에서 택시 타는 데도 시간이 많이 소요돼서, 7시쯤 호텔에 도착했다. 사실, 제주도 방문하면서 숙소는 크게 기대하지 않는 편인데, 이번 숙소는 위치도 시설도 전부 마음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창문으로 바다부터 구경했다. 그리고, 아들이 일어나기를 기다렸다가 같이 바다로 나갔다. 곽지 해변은 우리 가족에게 익숙한 곳이다. 제주 한달살이를 했을 때 많이 놀러 왔던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변가로 나아가니, 예전에 네 식구가 함께 놀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성수기가 아니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지 않았는데, 덕분에 한적하게 바다를 바라볼 수 있었다.
제주도 북쪽 해변들은 수심이 얕아서 대체로 아이들이 놀기 좋은 편인데, 곽지 해변은 모래뿐만 아니라 돌도 많아서 단조롭지 않고, 돌로 둘러싸인 얕은 곳들이 있어서 아이들에게 더 좋은 해변이다.
곽지 해변 근처에서 통 갈치를 점심으로 먹고 어승생악으로 이동했다. 어승생악은 한라산 주변에 있는 오름으로, 높이가 1,169m다. 높이가 꽤 높지만, 주차장 자체가 이미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쉬지 않고 올라가면 30분 만에 정상에 오를 수 있는 오름이다. 다만, 나처럼 평소에 운동을 잘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올라가다가 숨이 넘어갈 수도 있다. 등산로 입구에서부터 정상까지 거의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계단을 30분 올라간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힘들게 정상에 올라갔지만, 정상 부근에 구름이 많아 주변 풍경이 잘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서, 약간 실망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구름이 약간 걷히면서 백록담이 구름 위로 모습을 드러내는 풍경을 보게 되었다. 그 모습이 마치 한 폭의 수묵화를 보는 것 같아 묘한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어승생악을 내려와서, 숙소 가는 길 중간에 있는 도치돌 알파카 목장에 갔다. 생각보다 넓어서 한 바퀴 산책한다는 기분으로 둘러보았다. 알파카 목장이지만 말, 염소, 양, 토끼도 조금씩 있는데, 전반적으로 동물이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는 것 같아 보기 좋았다.
몇몇 장소에서는 안에 들어가서 알파카를 만져볼 수도 있는데, 알파카가 순해서 크게 위험하지는 않다. 다만, 안에서 별도로 구입하는 당근을 들고 있으면, 식탐이 있는 녀석들이 달려들어서 조금 번거롭게 된다. 그래서, 당근을 보이지 않게 숨기고 하나씩 꺼내 주라는 주의사항이 있었다. 참고로 알파카를 만져 본 내 느낌은, 마치 강아지를 만지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이틀째의 일정은 해변과 어승생악, 알파카 목장 정도로 마치고 숙소 근처로 돌아왔다. 돼지갈비 국수를 저녁으로 먹고 나니, 마침 해가 지는 시간이 되어 조금 기다렸다가 일몰을 보고 숙소로 들어갔다. 해변에 숙소를 잡으면 좋은 점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느긋하게 해가 지는 것을 보고 숙소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바다를 다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사흘째의 일정은 해변 산책으로 시작했다. 곽지 해변에서 한담 해변까지 산책로를 따라 걷고, 계속해서 올레길을 따라 걷다가 미리 알아둔 흑돼지 집에서 점심을 먹는 일정이었다. 산을 오를 때는 아들이 나보다 훨씬 잘 오르지만, 평지를 걸을 때는 내가 더 잘 걷는다. 그래서, 등산을 할 때는 아들이 가방을 메고, 평지를 걸을 때는 내가 가방을 멨다.
흑돼지 목살과 오겹살로 배를 채우고 아르떼 뮤지엄으로 이동했다. 아르떼 뮤지엄은 영상과 소리를 이용해 신비로운 느낌을 주고, 공간을 체험하게 해주는 뮤지엄이다. 제주도를 몇 년 만에 방문해 보니, 예전에 없던 것들이 여러 가지 생겼는데, 아르떼 뮤지엄도 그중 하나였다.
제주도에는 예전부터 여러 가지 박물관이 있었지만, 그 안에 놓인 소재만 달랐을 뿐, 경험의 본질에 큰 차이는 없었다. 하지만, 아르떼 뮤지엄은 경험의 종류 자체가 고유한 것이어서 무척 새로웠다. 한 가지 주의할 것은 안이 매우 어둡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박물관 특성상 약간 미로 같은 구조를 하고 있기 때문에, 주의하여 돌아다니지 않으면 구경하지 못하고 나오는 전시물이 있을 수 있다.
아르떼 뮤지엄을 나와 이동한 곳은 새별오름이다. 원래 금오름을 갈까 하였으나, 가을에는 새별오름의 갈대 풍경이 멋지다고 하여 새별오름으로 일정을 정했다. 과연 새별오름의 갈대 풍경은 멋이 있었다. 아들도 이번 여행에서 본 것 중 새별오름이 가장 멋지다고 했다. 바람이 많이 부는 것이 조금 힘들기는 했지만, 날씨가 맑아 정상에서 본 풍경이 사방으로 모두 볼만했다.
사전에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모두들 오른쪽으로 가야 쉽다고 하여 우리는 오른쪽으로 올라가서 왼쪽으로 내려왔다. 막상 현장에서는 대부분 왼쪽으로 올라가서 오른쪽으로 내려오기 때문에 그대로 따라가기 쉬운데, 왼쪽은 경사가 급하고 오른쪽은 경사가 완만한 편이다.
새별오름을 내려온 뒤, 택시를 타고 981 파크로 이동했다. 카트를 태워주기 위해서였다. 981 파크에는 카트를 타고 언덕 위에서 내려오는 액티비티가 있는데, 동력이 없이 경사만을 이용해 이루어지는 레이싱이다. 브레이크를 밟으면 속도가 줄고, 브레이크를 밟지 않으면 경사로 인해 자연스럽게 속도가 증가하는데, 코스의 폭도 넓은 편이고, 앞뒤 차 간격도 넓게 잡아주기 때문에 운전이 쉽고 안전하다.
초등학생은 단독으로 탈 수 없어서 나와 2인승을 두 번 탔다. 원래는 아들에게 운전을 하게 하고 싶었지만, 아들이 만류하여 두 번 모두 내가 운전하고 아들이 뒤에 탔다. 초등학생의 경우에는 쉬운 코스만 가능한데, 처음에는 천천히 운전해서 2분 12초가 걸렸고, 두 번째는 속도를 조금 내서 1분 40초 만에 피니시 라인을 통과했다.
이런 종류의 액티비티를 탈 때는 대기 시간이 길어서 힘들 때가 있다. 그래서 일부러 주말을 피하고 월요일에 타러 갔는데, 그래서 그런지 오래 기다리지 않고 탈 수 있어서 좋았다.
981 파크에는 레이싱 말고도 여러 가지 놀이거리가 있지만, 아들이 관심 없어해서 레이싱만 즐기고 숙소로 돌아왔다. 돌아온 후에 저녁을 먹고 하루를 마무리했고, 다음 날 오전에 숙소를 나와 제주공항으로 향했다. 그리고 하루 지난 지금 이 글을 정리하고 있다.
제주도를 혼자서도 가보고, 여자 친구와도 가보고, 수학여행으로도 가보고, 가족 여행으로도 가보고, 회사 동료들과도 가봤는데, 이번에는 아들과 둘이 가게 되었고, 그 경험이 꽤 좋았다. 거기다 날씨도 계속 좋았고, 숙소도 좋아서 더 좋은 여행이 된 것 같다. 코로나로 인해 한동안 돌아다니지 않다가, 올해 들어서 조금씩 돌아다니고 있는데, 다음에는 네 식구가 함께 제주도를 방문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때는 조금 길게 다녀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