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원, 두물머리, 정약용 유적지

2023년 7월 말

by 취한하늘


세미원 연꽃박물관은 연꽃이라는 단일한 테마 아래 연꽃 관련 생활 용품, 고서, 음식 등의 유물이 전시된 세계 유일의 박물관이다. 세미원 6만 2천 평 정원은 수질정화 능력이 뛰어난 연꽃을 주로 식재하여 한강물 정화에 기여하고 있다. 연꽃 가득한 여름이 가장 아름다우며 각 계절에 맞는 테마로 정원을 꾸며 사계절 내내 볼거리를 제공한다. 또한 생태환경교육, 체험교육, 전시활동을 겸하는 복합문화공간을 지향한다.
- Daum 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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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문은 사람과 자연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뜻이라고 한다.>


원래는 두물머리와 정약용 유적지를 1박 2일로 다녀오려고 했다. 그런데, 근처에 세미원이라는 곳이 있어 일정에 포함시켰고, 동선을 짜다 보니 가장 먼저 방문하게 됐다. 연꽃 정원이라고 해서 머릿속으로 어느 정도 크기를 그려보기는 했는데, 방문해 보니 생각보다도 훨씬 넓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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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많이 피었을 때는 더 볼만 했을 것 같다.>


연꽃은 다른 곳에서도 본 적이 있지만, 이렇게 많이 있는 것은 처음 봤다. 물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연꽃이 밀집해 있었고, 이런 구역이 여러 군데 있었다. 꽃이 많지 않아서 이제 막 개화가 시작된 줄 알았는데, 분무기처럼 생긴 것을 검색해 보니, 꽃이 떨어진 자리에 남는 '꽃턱'이라고 한다. 이미 대부분의 꽃들이 피었다 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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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이라고 생각하면 꽤 괜찮은 공원이다.>


세미원의 시작은 환경운동단체에서 쓰레기를 치우고 연꽃을 심은 것이었다고 한다. 그것을 경기도가 지원하여 연꽃 단지가 형성되고, 점차 확장되어 현재의 세미원에 이르고 있다. 연꽃 말고도 볼만한 것들이 있는데, 유명 관광지 정도는 아니다. 다만, 공원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정도로 조성되어 있다.




두물머리[兩水里]는 금강산에서 흘러내린 북한강과 강원도 금대봉 기슭 검룡소(儉龍沼)에서 발원한 남한강의 두 물이 합쳐지는 곳이라는 의미이며 한자로는 ‘兩水里’를 쓰는데, 이곳은 양수리에서도 나루터를 중심으로 한 장소를 가리킨다. TV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널리 알려진 곳이며 결혼기념사진 촬영장소로 인기가 높다. 예전에는 이곳의 나루터가 남한강 최상류의 물길이 있는 강원도 정선군과 충청북도 단양군, 그리고 물길의 종착지인 서울 뚝섬과 마포나루를 이어주던 마지막 정착지인 탓에 매우 번창하였다. 그러다가 팔당댐이 건설되면서 육로가 신설되자 쇠퇴하기 시작하여, 1973년 팔당댐이 완공되고 일대가 그린벨트로 지정되자 어로행위 및 선박건조가 금지되면서 나루터 기능이 정지되었다. 사유지이지만, 이른 아침에 피어나는 물안개, 옛 영화가 얽힌 나루터, 강으로 늘어진 많은 수양버들 등 강가마을 특유의 아름다운 경관으로 인해 웨딩·영화·광고·드라마 촬영 장소로 자주 이용되고 있다. 또 사진동호인들의 최고 인기 촬영장이기도 한데, 특히 겨울 설경과 일몰이 아름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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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로의 끝에 두물머리가 있다.>


원래 배로 연결된 '배다리'를 건너면 세미원에서 바로 두물머리로 갈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갔을 때는 폭우의 영향으로 배다리가 철거되어 있었다. 그래서, 다소 먼 길을 돌아 두물머리로 갔다. 그래도 한 20분 정도 걸으면 되고, 강변이라 바람도 적절히 불어서 힘들지 않게 걸어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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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를 잊게 하는 시원한 풍경이 있다.>


두물머리는 생각보다 넓지 않았다. 다소 작은 삼각형 모양의 지역이었는데, 거기서 보는 풍경이 운치가 있어 사람들이 많이 찾는 것 같았다. 지하철로 운길산역까지 간 후 버스로 네 정거장 가면 되기 때문에 서울에서의 접근성이 무척 좋은 편이다. 그래서 당일로 두물머리를 찾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서울에서 많이 멀지 않기 때문에 자전거를 타고 왔다가 지하철로 되돌아가는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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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물머리의 명물들>


두물머리에서 유명한 것으로는 400년 된 느티나무와 연핫도그가 있다. 사실, 오래된 나무를 본 적이 많아서 400년이 그렇게 대단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우뚝 서 있는 느티나무의 모습 자체가 상당히 멋있었다. 그리고, 두물머리에 오면 한 번씩 먹어보는 것이 연핫도그다. 반죽에 연잎을 넣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맛이 일반적인 핫도그와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특별히 더 맛있다기보다는 새로운 맛의 핫도그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다산 정약용은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학자로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또한, 약현의 사위가 황사영, 이들 형제의 누이가 최초의 세례자 이승훈의 부인이라는 것을 보면 정 씨 형제가 얼마나 천주교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들 중 정다산은 그의 형 약종처럼 순교하지는 않았으나 천수를 다하면서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수많은 저서를 남겼다. 그는 본래 요한이라는 세례명을 받고 10여 년간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고, 신유박해(1801년) 때 배교함으로써 죽음을 면하고 전남 강진으로 유배를 갔다. 실학을 집대성한 5백여 권의 주옥같은 저서는 바로 이 무렵 18년간의 유배 생활 동안 쓰인 것이다. 유배 생활을 끝내고 다시 이곳 마재로 돌아온 그는 보속 하는 뜻에서 기도와 고행의 삶을 살다 중국인 유방제 신부에게 병자 성사를 받고 7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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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 유적지의 풍경>


두물머리에서 차로 10분 정도 거리에 정약용 유적지가 있다. 전시관과 생가, 묘지 등이 있고, 가까운 곳에 생태 공원이 있다.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 생태 공원은 방문하지 않고 정약용 유적지만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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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성의 설계자가 정약용이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수원 화성이 있다. 알면 알수록, 보면 볼수록 감탄하게 되는 성인데, 그 성을 설계한 사람이 정약용이다. 조선 시대의 학자라고 하면 책과 글에 갇혀있는 이미지가 있는데, 정약용을 비롯한 실학자들은 그 틀에서 확실히 벗어나 있다. 농업, 경제, 기술, 행정 등 여러 분야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만들어 낸 것이 실학이고, 실학자들 중에서도 두드러진 업적을 이룬 사람이 정약용인 것 같다. 그리고, 수원 화성은 실학의 가치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건축물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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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과 정약전의 저서들>


정약용은 긴 유배 생활을 했다. 무려 18년 동안 유배 생활을 했는데, 그 기간에 왕성한 저술 활동을 하여 많은 책을 남겼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 등이 있다. 우리에게 영화로 익숙한 '자산어보'는 정약용의 형 정약전이 저술한 책인데, 마찬가지로 긴 유배 생활 중에 저술한 책이다. 정약용은 나중에 유배가 풀려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정약전은 안타깝게도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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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간의 애틋한 정이 느껴진다.>


정약용의 저술과 업적은 익히 알고 있어서 새롭지는 않았다. 그런데, 정약용의 가족에 대한 전시 내용은 새롭기도 하고 무척 인상적이었다. 자식을 여럿 두었지만, 어린 나이에 죽은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인지, 장성한 자식들에게 깊은 정이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20년 가까운 유배 기간 동안 떨어져 지냈기 때문인지, 부부간의 애틋한 마음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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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의 묘와 생가>


정약용 유적지에는 정약용의 묘와 생가가 있다. 묘에는 부인과 같이 합장되어 있는데, 유명한 학자의 묘라고 보기에는 무척 소박하다. 집도 마찬가지다. 넓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다. 양반이 살던 집으로는 최소한의 크기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작고 소박하다. 어쩌면 생전의 모습과 사후의 모습 모두에서 실학자 정약용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평생을 신념에 어울리게 일관되게 사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데, 그런 면에서 나에게는 좋은 귀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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