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제165호. 이 건물은 1452년(문종 2)에 등제하여 대사헌까지 지낸 최응현(崔應賢)의 고택에 딸린 별당으로, 1536년(중종 31) 이이가 태어난 유서 깊은 곳이다. 평면구조는 앞면 3칸, 옆면 2칸으로 된 일자집이며 대청·온돌방·툇마루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이가 태어난 방은 몽룡실(夢龍室)이라고 한다.
커다란 장대석으로 쌓은 단층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워 기둥 윗몸을 창방으로 결구했으며, 기둥 위에 주두를 놓고 익공으로 처리한 이익공집이다. 앞면에는 띠살창호를, 옆면에는 골판문을 달았으며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이 건물은 한국주택사에서 현존하는 유구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방과 대청으로만 구성된 별당만 남아 있고, 본채가 없어 조선 초기의 주택구조를 알 수 없는 것이 유감이다.
- '다음백과'
날씨가 한창 더운 8월 말에, 바다가 있는 강릉을 찾았다. 가기 전에 가 볼 만한 곳이 있나 먼저 찾아봤는데, 어렸을 때부터 그 이름이 익숙한 '오죽헌'이 강릉에 있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오죽헌이 충청도에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강원도에 있다는 것을 그제야 처음 알게 되었다. 강릉 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어, 강릉역에 도착한 날에 바로 오죽헌으로 향했다.
오죽헌은 주택 주변에 검은 대나무가 있어서 ‘오죽헌(烏竹軒)’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하는데, 지금도 그 대나무를 쉽게 발견할 수가 있다. 보통은 이이와 신사임당이 살던 집으로만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을 텐데, 주택 자체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주택 중 하나로 중요한 유물이라고 한다. 하지만, 주택에 대한 조예가 별로 없는 나에게는 많이 봐왔던 옛 저택들과 크게 달라 보이지는 않았다.
본채는 없고 별당만 남아있는 것이라고 하니, 본채까지 하면 꽤 규모가 큰 저택이었을 것 같다. 7월에 방문한 정약용의 소박한 생가와 비교를 해보니, 같은 양반이면서도 사는 모습이 크게 달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고로, 오죽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선교장'에 가면 조선시대 양반 저택의 전체적인 모습을 잘 볼 수 있다.
율곡 이이는 퇴계 이황과 동시대에 살았던 학자다. 13세에 진사시에 합격했고, 나중에 장원을 9번이나 했다고 하니, 조선 시대 천재 중 한 명이었던 것 같다. 당시의 학문은 성리학 이론인 '이기론'이 중심이었던 것 같은데, 본질을 의미하는 '이'와 현상을 의미하는 '기'로 세상의 이치를 설명하고자 하는 이론이었다. 언뜻 보면 플라톤의 '이데아론'이 생각나는 이론이기도 하다.
율곡의 이기론은 퇴계의 이기론과 다른 점이 있다. 퇴계는 '이'를 더 중요시한 반면, 율곡은 '이'와 '기'에 우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봤다. 한쪽에 치우치기보다는 조화를 이루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퇴계는 '이'가 '기'와는 별개로 존재한다고 본 반면, 율곡은 '기'가 없으면 '이'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 것도 다른 점인 것 같다.
강릉시 초당동에 위치한 허균 허난설헌 기념공원은 조선 시대 만들어진 최초의 한글 소설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과 최고의 여류 문인으로 인정받고 있는 허난설헌. 이 두 남매를 기념하기 위한 문학 공원이다. 시설로는 허균·허난설헌 기념관, 전통차 체험장, 녹지 공원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공원은 허난설헌 생가 터, 허균·허난설헌 기념관, 전통차 체험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허난설헌 생가터는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널찍한 사랑 마당이 있고, 그 안에 네모나게 지어진 본채가 있다. 본채는 두 개의 대문으로 안채와 사랑채로 갈리는데, 그 사이에 곳간이 있어 내외를 구분하고 있다. 허균·허난설헌 기념관은 목조 한식 기와로 이루어진 단층 건물이다. 내부는 네모나게 난 통로를 따라 들어가면 안내 데스크와 만나고 이어 주전시실과 소전시실로 이어진다.
- 강릉시 홈페이지
조선 시대 저택은 대체로 느낌이 비슷한 데, 허난설헌 생가는 어쩐지 그중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주황색 담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생가뿐만 아니라 기념공원 전체가 비교적 작은 규모를 가지고 있다. 그래도, 가까운 곳에 아쿠아리움과 아르떼 뮤지엄도 있고, 입장료도 따로 없으니 방문객이 꽤 있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대한민국에는 허균을 아는 사람보다 '홍길동전'을 아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어린이들을 위한 이야기로 많이 소개되었고, 나도 초등학생 시절에 '홍길동전'을 처음 접했다. 아이들이 보는 책에는 도술을 이용해 악당을 혼내주는 영웅 이야기로 묘사되는데, 사실 그 내용은 조선 시대에 함부로 떠들고 다니기 어려운 내용들이다. 그래서인지, 허균은 결국 역모죄로 처형을 당하고 만다.
사실 허균이 '홍길동전'만 쓴 것은 아니다. 한문 소설도 여러 편 썼고, 논설도 많이 남겼던 듯하다. 다만, 역모죄로 처형을 당하면서 많은 저작이 불태워지고 일부만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홍길동전'도 그렇지만, 그는 당시 사회를 비판하고 개혁안을 제시하는 글을 많이 썼는데, 그런 면에서 그를 단순히 '소설가'로 기억하기보다는 '사회개혁가'로 기억해 주는 것이 합당할 것 같다.
강릉 시가지에서 북동쪽으로 약 6㎞ 떨어져 있고 동해안과 접해 있다. 폭이 가장 넓은 곳은 2.5㎞, 가장 좁은 곳은 0.8㎞이며, 둘레는 4.35km이다.
주로 경포천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좁고 긴 사주에 의해 동해와 분리되고 연안에는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다. 경포천을 비롯한 작은 하천에 의해 운반된 토사가 매몰되어 수심이 얕아지고 호수의 규모가 축소되었으나, 1966년부터 경포천의 본류를 강문포구(江門浦口)로 돌리고 정기적인 준설작업을 하고 있다.
호수 안에는 잉어·가물치·뱀장어·붕어 등이 서식하며, 민물조개와 곤쟁이는 호수의 명물로도 손꼽힌다. 호수 중앙에는 송시열이 썼다고 전하는 조암(鳥巖)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바위섬이 있으며, 맞은편에, 특이한 전설을 지닌 홍장암(紅粧岩)이 있다. 호수 서쪽에는 경포대를 비롯하여 그 주변에 선교장·해운정·방해정·경호정·금란정 등의 옛 누각과 정자가 있어서 한결 정취를 느끼게 한다.
경포호의 자리는 옛날 최 씨 부자가 살던 집이었는데, 시주를 청한 스님에게 똥을 퍼 준 바람에 마을은 큰 호수로, 곳간의 쌀은 조개로 변했다고 한다. 그 뒤부터 흉년에도 맛 좋은 조개가 많이 잡혀 굶주림을 면하게 해 주었다는 적선조개의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호수 동쪽은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경포대해수욕장을 비롯한 그 주변은 소나무숲과 벚나무가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치를 이룬다. 특히 4~5월에는 벚꽃이 만발하여 관광지로 더욱 활기를 띠고 있다.
- '다음백과'
경포호는 경포 해변 근처에 있는 커다란 호수다. 크기가 꽤 커서, 한 바퀴 도는데 1시간 남짓 소요된다. 호수 자체는 특별한 것이 없지만, 주변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산책하기에 무척 좋다. 게다가, 경포대, 아쿠아리움, 아르떼 뮤지엄 등 구경할 거리가 산책로 바로 옆에 있어 한 나절 여행 코스로도 충분히 제 몫을 한다.
경포호의 특징은 바다에 가깝다는 것이다. 어떤 아주머니 말로는 바닷물과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학꽁치'가 있는 곳을 일러주었는데, 가리킨 곳을 보니 과연 학꽁치가 있었다. 호수와 해변 사이에는 숙박 시설도 굉장히 많은데, 이 근처에서 숙박을 하면 일출을 보기 쉽다는 장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