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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한하늘 Jan 20. 2023

[Movie] 인간이란 무엇일까?

@ 영화의 내용과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괜찮으신 분만 읽어주세요.


프로그램의 역습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인간을 정의하고자 하는 노력은 계속 있어왔다. 수많은 철학자들의 사유가 있어왔고, 과학이 발달하면서 과학의 도움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려는 노력도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정의는 그럴듯해 보였다. 인간과 인간 아닌 것이 직관적으로 너무나도 잘 구분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황이 달라졌다. 인간만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할 수 있는 존재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인공지능이다. 동물도 뇌를 이용해 여러 가지 판단을 하지만, 인간처럼 고차원적인 사고를 할 수는 없었다. 기계가 인간의 뼈와 근육을 훌륭히 대체했지만, 인간의 뇌를 대체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이제 마지막 보루가 위협받고 있다. 사람처럼 시각적으로 사물을 구분할 수 있고, 사람처럼 언어를 이해할 수 있으며, 이제는 사람처럼 예술 작품을 만들어 낼 수도 있게 되었다.

만약, 프로그램과 로봇이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된다면, 무엇으로 인간과 인간이 아닌 것을 구분해야 할까? 단순히 몸을 구성하는 물질이 유기물인지 아닌지로 구분하면 되는 걸까? 심지어 그 유기물조차 합성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 정말로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 걸까?


공각기동대 - 인간의 정신도 하나의 프로그램이라면?


'공각기동대'의 세상에서, 사람들은 기계로 된 몸을 사용하고, 기계로 된 뇌를 이용한다. 기억을 컴퓨터로 전송할 수 있고, 그 반대도 가능하다. 물론, 고유의 뇌를 가지고 있어서 그것으로 인간과 사이보그를 구분할 수 있다. 바로 이 세상에, 스스로 생명체라 주장하는 프로그램이 나타난다.

주인공인 쿠사나기 소령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다. 머릿속에 유기체로 된 뇌가 남아있다고 하지만, 정작 자신은 그것을 본 적이 없다. 의학 장치를 사용해 간접적으로 관찰할 수는 있겠지만, 이미 전자화된 뇌를 통해 기억을 조작할 수 있는 시대다. 자신의 기억을 믿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쿠사나기 앞에 순수한 프로그램인 인형사가 나타난다. 인형사는 인간에 의해 작성되었지만, 버그로 자아를 갖게 된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인형사는 인간의 의식도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는다며, 자신도 하나의 생명체임을 주장한다.

보이지는 않지만 존재할 것이라고 믿었던 많은 것들이, 과학의 발달과 함께 그 존재를 부정당했다. 어쩌면 그다음 차례가 인간의 정신일지도 모른다. 그동안 인간은 우주의 법칙과 별개로 존재하는 독립적인 '정신'을 가지고 있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과학은 뇌 활동이 일련의 전기적 신호처리 과정임을 밝혀냈다. 그리고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인간의 유전자에 각인된 프로그램에 명시된 규칙을 따르는 것이, 뇌 활동의 전부일 가능성이 존재한다. 우리가 생각을 하는 것이, 우리 자신의 의지라기보다는 유전자의 명령을 그대로 따르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정신이 단지 프로그램이라면, 거꾸로 프로그램으로 인간의 정신을 만들어내지 못할 것도 없다. 과연 그렇게 만들어진 프로그램은 인간인 것일까? 혹은 또 다른 생명체인 것일까? 영화는 그런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블레이드 러너 - 인공적으로 인간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공각기동대'에서는 인간의 몸을 기계화하고 뇌를 전자화했을 뿐이지만,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는 아예 인간을 만들어 내고 있다. 행성 개척이나 전쟁에 사용하기 위해 인간과 똑같은 존재 '레플리컨트(replicant)'를 만들고 노예처럼 부리는 것이다. 영화는 저항 의식을 가지고 지구에 침투한 레플리컨트들과, 그들을 찾아서 사살하는 임무를 가진 주인공과의 대치 구도로 이루어져 있다.

레플리컨트는 인간과 똑같은 몸을 가지고 있고, 인간과 똑같이 생각할 줄 알며, 심지어 감정까지 가진 존재다. 차이라면, 인간의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라는 것뿐이다. 하지만, 그 차이만으로 인간들은 레플리컨트들을 소모품처럼 다룬다. 그리고, 레플리컨트들은 말한다. 자신들도 인간이라고.

'복제'가 관심의 중심에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인간을 복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되기도 했다. 그러자, 복제된 인간의 인간성에 대한 물음이 생겨났다. 인간을 완전히 만들어낼 수 있게 된다는 것은, 사람들이 '영혼'이라 믿어왔던 것이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하는 것이 될 수도 있었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복제된 인간의 인간성을 부정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블레이드 러너'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존재를 소재로 사용하고 있지만, 이 영화는 사실 매우 현실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레플리컨트와 인간의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출생'이다. 그리고, 출생에 의해 삶의 가치와 존엄성의 크기가 달라지는 것은 상상 속 미래가 아니라 지금의 현실이다. 인간을 고귀한 존재로 여기는 것은 그런 차별을 정당화하는데 자주 활용되고 있다. 영화는 말한다. 인간은 고상한 지적 활동을 통해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살아가려고 하는 의지와 그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솟아나는 감정으로 정의되는 것이라고.


캐스트 어웨이 - 내 존재를 확인해 줄 사람이 없다면?


영화 '캐스트 어웨이'는 사회로부터 완전히 단절된 사람을 보여준다. 주인공은 사회의 일원으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던 사람이며, 심지어 연결을 상징하는 운송 업체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다. 그런, 주인공이 불의의 비행기 사고로 인해 무인도에 표류하게 된다. 그리고, 4년이라는 시간을 사회와 단절된 채 살아가게 된다.

4년이라는 시간 동안, 주인공은 무인도 생활에 익숙해졌다. 더 이상 무인도 생활이 불편하지는 않다. 그럼에도 주인공은 문명 세계로 돌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잃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목숨을 걸고 문명 세계로의 복귀에 도전한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목숨이 위태로운 시도를 하게 만들었을까? 왜 그는 그토록 문명 세계로 돌아가고 싶어 했을까?

사람은 가지고 있던 것을 잃어버렸을 때 심한 갈증을 느낀다고 한다. 문명 세계에서 살던 그가 무인도에 표류하게 되었을 때, 그는 여러 가지에 갈증을 느꼈을 것이다. 문명의 편리한 도구들, 그를 무료하지 않게 해 주었던 콘텐츠들, 일에서 느꼈던 성취감, 사회적 지위 등 그가 잃어버린 것은 여러 가지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그가 가장 갈증을 느낀 것은 아마 '관계'일 것이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기 존재에 대한 '불안감'이 있다. 항상 자신의 존재를, 자신이 존재하는 가치를 확인받고 싶어 한다. 그리고,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그런 욕망을 충족시킨다. 하지만, 무인도에는 나의 존재를 인정해 줄 누군가가 없다. 내 삶의 가치를 만들어 줄 타인이 없다. 그래서, 주인공에게는 배구공 윌슨이 그토록 소중했던 것이다. 살아있는 생명체는 아니지만, 나의 존재를 확인해 주는 유일한 개체였으니까.

앞서 살펴본 '공각기동대'의 인형사와 '블레이드 러너'의 레플리컨트들도 모두 사회와의 연결을 소망하고 있다. 사회로부터 그들의 존재를 인정받고 싶어 하고 있다. 개체로서는 아무리 완벽한 존재이더라도, 사회로부터 확인받지 못하면 '인간'으로서의 정의가 완성되지 않는 것이다.


특별한 존재이고 싶은 욕망


왜 인간은 스스로를 정의하고 싶은 걸까? 그냥 적당히 살아도 될 텐데, 왜 그토록 자기 존재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걸까? 아마도 대자연과 광활한 우주, 그리고 영원한 시간 속에서, 인간의 존재가 너무나도 미미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인간은 스스로가 대단한 존재이기를 바란다. 우주의 역사에 한 순간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섬광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우주는 너무나도 쉽게 인간의 존재를 압도해 버린다. 불을 이용할 수 있게 되고, 자연을 원하는 대로 개척할 수 있게 되고, 심지어 달과 화성에 갈 수 있게 되어도, 그 모든 활동이 우주와 시간의 입장에서는 별일 아닌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우주에 떠도는 소행성 조각들과 다를 것이 없다는 사실을 인간은 참을 수 없어하는 것 같다.

과학이 발달하면 인간을 더 잘 정의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어쩐 일인지, 과학이 발달할수록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는 더 모호해지는 것 같다. 어쩌면, 인간이라는 존재가 생각보다 특별하지 않다는 진실에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특별한 존재이기를 바라기보다는, 그냥 주어진 시간을 잘 보내다가 가는 것, 결국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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