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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한하늘 Sep 01. 2023

[Movie] 허수아비, 양철 나무꾼, 그리고 사자

'오즈의 마법사'는 1900년에 출간된 판타지 소설이다. 토네이도에 휩쓸려 미지의 땅에 떨어진 소녀 '도로시'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까지의 여정을 그린 이야기다. 원작이 소설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영화로 기억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것 같다. 나도 소설은 읽어 본 적이 없고, 1939년에 개봉했다는 영화만 봤다.


이 작품에는 도로시와 함께 하는 세 명(단위를 정하기가 어렵다)의 일행이 있다. 바로 허수아비, 양철 나무꾼, 사자다. 이들은 각자 소망하는 것이 하나씩 있었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도로시와 함께 오즈의 마법사를 만나러 간다. 그런데, 이 세 일행에게 결여되어 있는 것, 그래서 그들이 갖고 싶어 하는 것 세 가지는 사람에게 있어 굉장히 중요한 것들이다. 작가가 어린이들을 생각하며 이 작품을 썼을 텐데, 아마 이 세 가지 요소가 사람에게 무척 필요하다는 것을 특별히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머리를 갖고 싶은 허수아비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누군가가 시키는 대로만 행동하는 사람을 우리는 '허수아비'라고 부른다. 허수아비는 스스로 판단하지 않는 사람을 가리키는 보편적인 상징이다. 그런 허수아비가, 이 작품에서는 머리를 갖고 싶어 한다. 겉모습은 사람이지만, 스스로 판단할 줄 모른다면 사람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나 다른 어른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대부분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러다가, 사춘기에 접어들어서는 그런 이야기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그리고, 모든 것을 스스로 판단하려고 한다. 심지어 도덕이나 예절 같은 것도 새롭게 바라보려고 노력한다. 그런 노력 끝에 마침내 자기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갖추게 되고, 그렇게 어른이 된다.


그런데, 현대 한국 사회에서는 반대의 모습이 종종 보인다. 스스로 생각하기보다는 누군가 하라는 대로 하는 것을 더 편하게 생각하는 현상이다.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직업을 갖고, 사람들이 재밌다고 하는 장소에 가고, 사람들이 맛있다고 하는 음식을 먹는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N가지 법칙을 쫓고, 실패하는 사람들의 M가지 행동을 피한다. 이런 것들이 꼭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는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남들이 좋다는 것은 무조건 좋을 것이라고 받아들이지 말고, 나에게도 좋을지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마음을 갖고 싶은 양철 나무꾼


이 작품은 캐릭터를 매우 잘 설정한 것 같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고, 언제나 옳은 말과 옳은 행동을 하지만, 타인을 대하는 따뜻한 마음이 없어 보이는 사람을 우리는 '기계'에 많이 비유한다. 양철 나무꾼은 바로 그런 기계다. 그리고, 사람처럼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싶어 한다.


어린이들에게도 따뜻한 마음이 있다. 어린이들도 다른 사람에게 공감할 줄 안다. 다만, 어린이들의 마음은 비교적 단순한 원리로 움직인다. 그리고 때로는 자기중심적인 면을 여지없이 보여 준다. 그러다가 사춘기를 겪으면서, 이런 마음이 좀 더 정교해진다. 사람의 마음과 마음이 복잡하게 얽히는 것을 더 잘 이해하게 되고, 자신의 마음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방법도 배워 간다. 그래서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마음도 잘 이해하게 되고, 타인에 대해 잘 배려할 줄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어른스럽다'는 표현을 붙여 준다.


서로가 서로를 잘 배려하는 것이 어른의 모습이지만, 현대 한국 사회에서는 그렇지 않은 모습도 많이 발견하게 된다. 좋은 공동체를 만들려고 하기보다는 나와 내 가족의 이익만을 챙기려 드는 사람들이 있다. 사적인 목적을 위해 대결 구도를 만들고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람과 사람을 비교하고, 보이지 않는 계급을 만들어 사람을 위아래로 구분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이들에게 어른이 되기 위해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정작 한국 사회는 얼마나 어른스러운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의문을 갖게 된다.


용기를 갖고 싶은 사자


사자는 용맹의 상징이다. 그래서, 사자를 문양으로 쓰는 가문이나 집단도 많이 있다. 심지어 용맹한 왕에게 '사자왕'이라는 칭호를 붙이기까지 한다. 그런데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사자에게는 용기가 없다. 그래서, 용기를 얻기 위해 도로시의 여정에 함께 한다.


어린이들 중에 용감한 어린이들도 있지만, 대체로 어린이는 겁이 많다. 그래서, 두려운 상황에 놓이면 부모나 다른 어른들의 도움에 의지한다. 그러다 사춘기에 접어들게 되면, 계속 어른들의 도움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의식이 생긴다. 그리고, 두렵고 어려운 상황을 자신의 힘으로 타개하려는 의지가 싹트게 된다. 물리적인 위협이든, 정신적인 고난이든 간에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마음을 다잡는다. 그렇게 용기를 함양하면서 역시 어른이 되어 간다.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서 오히려 용기를 잃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불의에 맞서 싸우기보다는 그것이 자신만은 비켜 가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어려운 일을 정면돌파하기보다는, 눈을 감고 그것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의 존재는 불의한 행동을 통해 이익을 취하려는 사람들에게 매우 큰 도움이 된다. 그래서, 더 좋은 공동체를 만들려는 노력을 의도치 않게 방해하게 된다. 나만 피해 가는 불길은 없다. 불길에 맞서는 용기가 없으면 결국 모두가 불길의 피해를 입게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


작품에서 허수아비는 스스로 생각하는 머리를 얻었고, 양철 나무꾼은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얻었으며, 사자는 불의에 맞서는 용기를 얻었다. 그런데, 그것은 오즈의 마법사가 그들에게 준 것이 아니다. 그들 스스로가 만들어 낸 것이다. 그리고, 그 세 가지가 완성되고 나서야 도로시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도로시가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미지의 땅에서 좌충우돌하면서, 한 사람의 온전한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전쟁을 겪은 나라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짧은 기간에 눈부신 성장을 했다. 88 서울 올림픽은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그리고 또다시 비슷한 시간이 흐른 뒤에, 대한민국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나라로 또 한 번 큰 도약을 이루어 냈다. 첫 번째 도약이 경제적인 도약이었다면, 두 번째 도약은 문화적인 도약이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정신은 얼마나 성장한 것일까. 전쟁 직후와 비교하면 분명 정신적인 면에서도 큰 성장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최근의 상황은 오히려 퇴행을 의심할 정도가 되었다. 


나이를 먹는다고 누구나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대한민국도 시간이 지난다고 무조건 성숙해지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생각하는 머리,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 불의에 맞서는 용기를 온전히 갖게 되었을 때, 대한민국은 정신적으로도 성숙한 공동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부디 세 번째 도약은 공동체 의식에서의 도약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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