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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한하늘 Jul 21. 2023

[Book] 최초의 문학이론,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12년 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꺼내 읽었다. 12년 전에는 상당히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지금 시대와 잘 맞지 않는 부분이 많이 보였다. 그동안 내가 콘텐츠에 대해 깊은 고민을 많이 했기 때문에 조금 더 날카롭게 봤을 수도 있고, 12년이라는 시간 동안 사람들이 즐기는 콘텐츠에 큰 변화가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한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몇 천 년 전의 글이라고 해도, 작문에 대한 깊은 고민이 담겨있는 글이기 때문이다.


책의 겉표지에 크게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이라고 쓰여 있지만, 자세히 보면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호라티우스 '시학', 플라톤 '시론', 롱기누스 '숭고에 관하여'가 제목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이렇게 네 편의 글을 번역하고 있다. 역자(천 병희)가 고전 문학의 전문가이고 고대 그리스 문학을 다수 번역한 사람인지라, 책의 번역과 주석도 상당히 완성도가 높다.


"주인공의 운명은 불행에서 행복으로 바뀌어서는 안 되고 행복에서 불행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그 원인은 비행에 있어서는 안 되고 중대한 과실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주인공은 우리가 앞서 말한 바와 같은 인물이거나, 혹은 그보다 훌륭한 인물이어야지 그보다 열등한 인물이어서는 안 된다."  
-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나에게 아리스토텔레스는 '세상의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설명하려 드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최근에 유행하는 말로 '설명충'에 가깝다고나 할까. 나 자신도 그런 부류이기 때문에 친밀감을 많이 느끼는 편인데, 아니나 다를까 문학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려는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다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접근은 '귀납적'이어서, 당시의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어냈던 작품들에서 공통점을 뽑아 원칙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당시에는 일리가 있었을지 몰라도 현대 시대에는 공감하기 어려운 논조들이 있다. 사실, 아리스토텔레스가 대상으로 삼은 것은 문학이라기보다는 공연에 가까운데, 지금은 그렇게 일정한 공식대로 작품을 만들면 상투적이라는 평을 받을 것 같다.


물론, 춘향전 같은 이야기를 몇 번이고 반복해도 먹히던 시대까지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방식대로 작품을 만드는 것이 일리가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도 일정 분야에서는, 이렇게 기존 성공작의 공식을 충실히 따라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작가들이여, 그대들은 자신의 능력에 맞는 소재를 선택하시라. 그대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것은 무엇이며 감당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오랜 시간을 두고 심사숙고하시라. 자신의 능력에 맞는 소재를 선택한 작가는 조사와 언어의 명쾌한 배열 때문에 곤란을 당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 호라티우스, '시학'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문학 평론가의 느낌을 받은 반면, 호라티우스로부터는 국문학과 교수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역자가 밝힌 것처럼, 호라티우스는 시를 쓰는 방법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특히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하여 어떤 것이 필요한 지, 시인은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애욕과 분노에 관해서도, 그리고 우리의 모든 행동에 수반되는 욕망과 고통과 쾌락에 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말하자면 시의 모방은 이런 것들에 관해서도 우리에게 똑같은 작용을 하는 것이 아닐까? 왜냐하면 이런 것들은 시들어 없어져야 하는데도 시는 이런 것들에게 물을 주어 가꾸고 있으며, 사악하고 비참하게 되는 대신 선량하고 행복하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이런 것들을 지배해야 하는데도 시는 오히려 이런 것들을 우리들의 지배자로 만들고 있으니까 말일세."
- 플라톤, '시론'


플라톤의 '시론'은 다른 글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시를 국가에서 추방해야 한다'는 논지를 펴고 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내용에 동의하지 않을 것 같다. 어쩌면 화를 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몇 천 년 전의 철학자가 한 말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단지, '완벽한 이상향'을 추구하던 철학자에게 시가 왜 부정적인 것으로 여겨졌는지 들여다보는 정도로 읽으면 될 것 같다.


예술의 가치에 대해서는 지금도 다양한 의견들이 존재한다. 그중에는 예술을 유해한 것으로 보는 의견도 있을 것이다. 예술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의견을 그저 멀리하고 매도하는 데만 신경 쓸 것이 아니라, 왜 예술을 유해하다고 여기는 지 살펴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모든 것에는 명과 암이 있는 법이니, 어두운 부분을 알아야 밝은 부분을 더 빛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문학에 있어서의 위대한 천재들과 관련하여, 그런 사람들은 비록 실수를 저지르기는 해도 인간적 수준을 훨씬 넘어선다고 결론 내려야 할 것이오. 다른 자질들은 모두 그들이 인간임을 입증해 주지만 숭고는 신의 정신적 위대성 가까이까지 그들을 높여주오. 실수하지 않는 것은 비난을 면할 뿐이지만 위대한 것은 찬탄의 대상이 되기도 하오."
- 롱기누스, '숭고에 관하여'


롱기누스의 '숭고에 관하여'는 호라티우스처럼 글을 잘 쓰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다만, 호라티우스는 완성도 높은 글을 추구하는 반면, 롱기누스는 글이 위대함과 장엄함을 획득하고 있다면, 얼마간의 실수들은 있어도 상관없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숭고한 글이 되기 위해 활용할 수 있는 기법들을 구체적으로 나열하고 있다.


사실 호라티우스와 플라톤의 글은 짧게 수록되어 있고, 아리스토텔레스와 롱기누스의 글이 비교적 길게 수록되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아리스토텔레스보다 롱기누스의 글이 좀 더 흥미로웠다. 현대의 작가들에게도 도움이 될 만한 구체적인 작법들을 다루고 있고, 그 대부분을 예문과 함께 설명하고 있어 이해하기도 쉬웠다.


번역 품질이 좋기는 하지만,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글이라서 현대의 독자들에게 잘 읽히는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지는 않다. 아마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를 재밌게 읽은 사람이 아니라면 페이지를 넘기는 것이 쉽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같은 고대 문학에 관심이 있다면, 이 책도 한 번 같이 읽어 보면 좋을 것 같다.


하품을 참아가며 완독을 하고 나니, 예전에 비슷한 경험을 했던 책이 떠올랐다. 바로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이다. 전쟁사를 워낙 좋아하는 편인데도 읽기 힘들었던 책인데, 다음에는 그 책에 다시 도전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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