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가 부산과 비슷한 느낌이라면, 교토는 경주와 비슷한 느낌의 도시다. 1,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일본의 수도 역할을 했다. 그래서 교토에 가면 일본의 전통적인 풍경을 보는 재미가 있다.
교토에는 경주처럼 유적지가 여러 군데 있다. 대표적인 곳으로는 청수사, 금각사, 은각사가 있고, 그밖에 니조성, 헤이안 신궁 등이 있다. 다 돌아보려면 시간이 꽤 걸리는데, 오사카에서 당일 여행으로 다녀가는 경우에는 오사카와 교토를 오가는 시간에 두 시간 정도를 써야 하기 때문에, 꼭 보고 싶은 것 몇 개 위주로 여유 있게 일정 짜는 것을 권한다. 이번 아들과의 여행에서 우리는 은각사, 헤이안 신궁, 청수사를 차례대로 보고 왔다.
은각사는 원래 쇼군의 별장이었던 것을, 유언을 통해 사찰로 사용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정원이나 산책길이 상당히 잘 조성되어 있다. 같이 간 아들 녀석도 이런 곳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할 정도였다. 이름만 보면 은각사보다 금각사가 더 매력 있어 보이지만, 일본 사람들은 은각사를 더 좋아한다고 한다. 과연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각사 앞으로는 '철학의 길'이 있다. 일본의 유명한 철학자가 산책하던 길이라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특별한 것이 있는 길은 아니고, 그냥 보통의 소박한 산책로다. 하지만, 나처럼 산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충분히 아름답고 한적한 길이었다. 산책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아들에게도 그 길의 산책은 좋았던 것 같다.
헤이안 신궁은 건설된 지 100년이 조금 넘었다. 교토가 수도가 된 지 1,100년이 된 것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옛 왕궁을 복원한 장소인데, 궁 자체는 그렇게 넓지는 않다. 그래도, 사진을 찍으면 꽤 예쁘게 나오는 장소라서, 사진 찍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 와볼 만하다. 가끔 여기서 결혼식을 올리기도 하는데, 17년 전 방문했을 때 마침 결혼식 일행이 있어 구경했던 기억이 난다.
헤이안 신궁 뒤쪽으로 정원이 있다. 헤이안 신궁은 입장이 무료지만, 정원은 우리 돈으로 몇 천 원 정도의 입장료가 있다. 그런데, 몇 천 원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상당히 괜찮다. 이번에 꽃이 아직 덜 핀 2월에 갔는데도 정원 구경이 상당히 좋았다. 넓기도 엄청 넓어서, 신궁의 3배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청수사는 교토의 대표 관광지다. 이곳도 처음부터 절은 아니었고, 어떤 장군이 살생을 회개하고 자신의 주택을 기증하여 절이 되었다고 한다. 교토에 여행을 오는 사람은 누구나 가는 곳이기 때문에, 사람이 정말 많다. 은각사나 헤이안 신궁은 한적하게 즐길 수 있었는데, 청수사는 사람으로 가득했다. 그래도 구경하기 불편할 정도로 많은 것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우리는 오후 3시쯤 갔는데, 노을이 지는 풍경이 멋지다고 하니 그 시간이 되면 사람이 더 많았을지도 모르겠다.
청수사 앞으로는 상점가가 길게 형성되어 있다. 물건을 파는 가게도 많고, 음식을 파는 가게도 많아서 이곳도 사람으로 북적인다. 길거리 음식을 좋아하거나, 소품 구경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상점가에서도 꽤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교토에서는 유명한 관광지를 돌아보는 것도 좋지만, 그냥 교토의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것도 좋다. 면적은 서울의 1.4배 정도 되지만, 인구는 서울의 1/6이 채 되지 않는다. 높은 건물도 많지 않고, 소박하고 예스러운 거리 풍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적한 산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도시 자체가 매력이 있다. 그렇게 걷다가 특이한 사찰이나 건물이 나오면 들어가 보기도 하고, 맛있어 보이는 식당이 있으면 들러서 음식도 먹고 하면 좋을 것 같다.
만약 다음에 다시 교토를 온다면, 그때는 필수 관광 코스 말고, 교토의 일상을 볼 수 있는 장소들을 천천히 돌아보고 싶다. 도시에 쌓인 사람의 흔적, 도시가 가진 본연의 모습들을 하나하나 음미해보고 싶다. 만약, 일본에서 가장 살아보고 싶은 도시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나에게는 단연 교토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