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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한하늘 Aug 04. 2023

그때 그 시절 - 가게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10년은 커녕 20년이 지나도 내 주변의 강산은 그다지 변함이 없다. 오히려 강산보다 확실하게 변해가는 것들이 있다. 바로 '가게들'이다. 10년 전, 20년 전에 다니던 곳을 가면 가게 풍경이 달라져 있는 곳이 많다. 어린 시절에 살던 동네는 정말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바뀌어 있었다. 그래서, 오늘은 새삼 어린 시절에 익숙했던 가게들을 추억해 보고자 한다.


추억의 가게들 중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겨울 나그네'였다. 그 시절, 어지간한 번화가에는 '겨울 나그네'라는 가게가 하나씩 있었다. 그 가게의 정체는 바로 '경양식집'이다. 당시에는 프랜차이즈라는 개념을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도 그 많은 '겨울 나그네'들이 프랜차이즈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런데도 약속이나 한 듯이 같은 이름을 쓴 가게가 많았다는 것이 신기하다. 혹시, 알고 보면 소유주가 다 같았던 걸까?


경양식집에서는 돈가스, 함박 스테이크 같은 것을 팔았다. 지금은 돈가스가 흔한 음식이지만 그때는 가끔 큰 마음먹고 먹으러 가는 음식이었다. 돈가스만 나오는 것은 아니고, 그 앞에 수프가 나오고 후식으로 커피 같은 것도 나왔던 것 같다. 나름 코스 요리였던 셈으로, 내 입장에서는 맛보다는 분위기가 더 좋았던 기억이 난다.


추억의 가게들 중에는 '동네 서점'도 있다. 지금도 동네 서점이 간혹 있기는 하지만, 예전에 비하면 찾기가 쉽지 않다. 예전에는 중고등학교 주변에 서점이 여러 개 있었다. 내가 살던 곳에서 조금 걸어가면 류 현진이 다녔던 고등학교가 있는데, 그 주변에도 서점이 몇 개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내가 단골로 다니던 '태양 서점'도 있었다.


'태양 서점'을 다니게 된 것은 원래 형의 심부름 때문이었다. 형이 책을 사 오라고 하면 심부름값 100원을 받고 책을 사러 다녀왔다. 그러다가, 국민학교 4학년 때 처음으로 내가 보고 싶은 책(책 내용이 지금도 생각난다)을 샀고, 이후 고등학교 때까지 그 서점에서 많은 책을 사서 봤다. 하도 어렸을 때부터 단골로 다닌 서점이라서 주인아저씨, 아주머니와도 잘 알고 지냈는데, 지금은 어디서 살고 계신지 궁금하다.


서점을 떠올리고 나니 레코드점이 생각난다. 내가 다니던 시절에는 음악을 대체로 카세트테이프로 들었기 때문에, 'ㅇㅇ 레코드'라는 간판의 가게에 들어가면 벽에 빼곡하게 카세트테이프가 꽂혀 있었다. 그중에서 원하는 것을 꺼내 계산하면 되었다. 가끔은 주인아저씨에게 추천을 받아 사는 테이프도 있었는데, 그렇게 접하게 된 음악이 '미스터빅'과 '스팅'의 음악이었다. 내 돈으로 처음 산 책을 기억하듯이, 처음 산 테이프도 기억한다. '강 수지 1집'과 '변 진섭 2집'이었다.


예전에는 동네에 '철물점'도 있었다. 온갖 공구를 파는 잡화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요즘은 동네 철물점이 잘 보이지 않는다. 철물점은 주로 어른들이 이용하는 가게여서 나는 이용할 일이 많지는 않았다. 가끔 심부름을 가는 일이 있거나, 학교 준비물 때문에 갔던 기억이 난다. 준비물 중에서 특히 '철사' 때문에 철물점을 많이 찾았던 것 같다.


어렸을 때 친했던 친구네 집은 양장점을 했다. 간판에 'ㅇㅇ라사'라고 되어 있는 집들이 양장점이었다. 양장점은 그야말로 이용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나와 별로 관련이 없는 가게였지만, 어린 시절 동네에 두 개나 있을 정도로 비교적 흔한 가게였던 것 같다. 역시 요즘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손목시계를 차고 다니지 않는 세상이 돼서 시계 수리점도 많이 없어지고, 전기 제품이 고장 나면 들고 가던 전파사도 보기 어렵게 됐다. 세상은 계속 변하기 마련이고, 가게 풍경도 계속 새롭게 바뀌기 마련이지만, 가끔은 예전의 그 가게들이 보고 싶기도 하다. 그리고 어쩌다 의외의 곳에서 익숙한 가게를 봤을 때는, 마치 그 시절의 나를 만난 것처럼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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