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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한하늘 Oct 06. 2023

그때 그 시절 - 카세트

내가 대중음악을 접했던 최초의 기억들은 텔레비전이 아니면 카세트 플레이어였다. 그 이전에 레코드라는 것이 있었지만 우리 집에는 레코드 플레이어가 없었고, 1980년대에는 이미 카세트가 대세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나에게 레코드는 이전 세대의 유물 같은 느낌이 있다. 그런데, 아마 지금 세대에게는 테이프나 CD가 그런 느낌일 것 같다.


정확히 몇 학년 때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국민학교를 들어간 이후인지 그전인지도 확실하지 않다. 아무튼 무척 어렸을 때 아버지가 카세트 플레이어를 하나 장만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나보다 6살, 5살 많은 형, 누나는 마이클 잭슨의 테이프를 사 가지고 왔다.(Thriller 앨범이 1982년에 나왔으니, 국민학교 2, 3학년 때였나 보다.) 그 테이프를 셋이서 같이 들었던 것이 카세트와 관련된 첫 기억이다. 이미 마이클 잭슨에 대해 알고 있었던 형과 누나는 듣고 싶은 음악을 찾아서 들었고, 마이클 잭슨이 누군지도 몰랐던 나는 형과 누나가 좋다고 추천해 준 노래를 들었다.


카세트는 하나뿐이었고, 나는 텔레비전 음악 프로에서 가수들이 부르는 노래를 듣는 것으로 충분했기 때문에, 그 이후 한동안은 카세트와 관련된 기억이 없다. 그러다가 중학생이 되고 나서 카세트를 많이 사용하게 되었다. 형과 누나는 대학생이 되어 자취를 하거나, 집에서 다닐 때도 집에 없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내가 카세트를 쓸 시간이 많아졌다. 그리고, 중학생이 된 나는 책과 음악에 관심이 많았다.


내 돈으로 산 최초의 카세트테이프는 변 진섭 2집과 강 수지 1집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 두 개를 동시에 구매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전까지는 라디오를 듣거나 집에 있는 카세트테이프를 들었는데, 이제 얼마 안 되는 용돈으로 테이프를 살만큼 음악에 관심이 높아진 것이었다. 이후 내가 샀던 것으로 기억나는 테이프들은 아바, 신형원, 조하문, 푸른 하늘 등이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처음으로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를 갖게 되었다. 당시에는 휴대용 플레이어가 대중화된 지 이미 여러 해가 지난 시점이었지만, 중학생이 가지고 다니는 경우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나도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어머니를 졸라 갖게 되었는데, 5만 원 정도의 보급형 제품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일본산 플레이어였고, 하얀색과 검은색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전체적인 모양은 각진 직육면체였고, 상단의 버튼들도 검은색의 직육면체들이었다. 오토리버스 기능이 없었기 때문에 테이프의 한 면을 다 플레이하고 나면 테이프를 꺼내 뒤집어주어야 했다. 당시에 기능도 많고 디자인도 예쁜 휴대용 플레이어가 많이 나왔지만, 나는 CD 플레이어가 생기기 전까지 그 기계 하나만 썼다.


테이프가 대세이던 시절에는 길거리에서 리어카에 테이프를 싣고 판매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테이프는 복제가 쉬웠기 때문에 불법 복제한 테이프를 그런 식으로 많이 판매했다. 기억에는 하나에 1,000 원 정도였던 것 같다. 불법이지만 단속이 심하지는 않았고, 음악계에서도 크게 문제 삼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 판매상들은 늘 음악을 틀어 놓고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신곡의 홍보 창구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최신 유행곡들 위주로 음악을 틀기 때문에, 길거리에서 들리는 음악 만으로 현재 어느 가수와 노래가 인기 있는지 금방 알 수 있었고, 그래서 '길보드'라는 용어도 생겼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길거리 판매상들뿐만 아니라 온갖 가게들이 크리스마스 캐럴을 틀었다. 가게 바깥에 스피커를 놓고 음악을 틀어놓는 가게들이 여럿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번화가에 가면 거리에 캐럴이 넘치도록 흘러 다녔고,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쉽게 빠져들 수 있었다. 지금은 그런 풍경을 느끼기 어려워 아쉬운 마음이 든다.


집에서 사용하는 카세트 플레이어는 대부분 라디오 겸용이었다. 그리고 대부분 녹음 기능이 있었다. 그래서 라디오를 즐겨 듣는 사람들 중에는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빈 테이프에 녹음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그런 사람들에게 좋은 DJ는 노래가 시작되면 말을 하지 않는 DJ였다. 그리고, 노래를 중간에 끊지도 않는 DJ였다. 


빈 테이프뿐만 아니라 가수의 노래가 담겨 정식으로 판매된 테이프에도 녹음이 가능했다. 테이프 아래쪽에 있는 구멍 두 개를 스카치테이프나 종이로 막으면 녹음 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그래서 집에 굴러다니는 테이프에 녹음을 했다가 혼났던 기억이 난다. 생각해 보니 영어 공부 하라고 사준 영어 회화 테이프도, 절반 이상을 그렇게 날려 먹었던 것 같다.


지금은 카세트테이프를 보기가 쉽지 않다. 아이와 끝말잇기를 하다가 "카세트"라고 외치면, "카센터?"라고 아이가 되묻는다. 그래서인지, 여행을 하다 우연히 카세트테이프를 팔고 있는 풍경을 보면, 반가워서 사진을 찍게 된다. 그리고 들을 수단은 없더라도, 테이프들을 버리지 않고 계속 가지고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테이프 하나하나에 추억이 묻어 있기 때문에, 테이프들을 버리면서 추억도 많이 잃어버리게 된 것 같다.


LP가 레트로 느낌의 소품으로 인기를 조금 회복한 것에 비해, 카세트테이프는 귀한 대접을 잘 못 받는 것 같다. 나중에 아이들도 다 독립하고, 회사도 은퇴하여 한적한 시절을 만나게 되면, 카세트와 카세트테이프를 구해서 들어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카세트와 함께한 추억이 많은 나에게는, LP보다 카세트가 오래된 분위기를 더 잘 느끼게 해 줄 것 같다. 거기다 휴대용 플레이어까지 갖출 수 있으면 딱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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