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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한하늘 Oct 27. 2023

내 마음을 움직인 문장들

사춘기 시절에 신조처럼 들고 다니던 문장들이 있었다. 주로 문학 작품에서 발견한 문장들이고, 일부는 우연히 알게 된 것도 있다. 지금은 좋다고 생각하는 문장이 있어도 굳이 외우고 다니지는 않는데, 그때는 마음에 드는 문장이 있으면 몇 번이고 되뇌었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열심히 고민하던 때였기 때문에, 삶의 지침이 되는 문장들에 더 꽂혔던 것 같다.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


아마 나에게 영향을 미친 문장들 중에서 최초의 문장일 것이다. 리처드 바크의 소설 '갈매기의 꿈'에 나오는 문장인데, 나는 소설을 읽기 전에 이 문장을 먼저 접했다. 중학교 1학년 때 교실 한편에 있는 액자 속에 그림과 함께 있던 문구였다.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에 내 시선을 사로잡은 문구였던 것이다.


갈매기들은 먹이를 구하기 위해 비행을 한다. 그리고, 먹이를 구하는 데 필요한 만큼만 비행을 한다. 소설의 주인공 '조나단'은 그것에 의문을 던진다. '왜 비행이 단순히 먹이를 구하는 과정이어야만 할까? 비행에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조나단은 남들과 다른 비행을 연습한다. 더 멋진 비행을 추구하고, 어려운 기술에 일부러 도전한다. 그리고 점차, 삶을 '생존을 위한 투쟁'에서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내가 사춘기에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도 그것이었다. '단순히 먹고 자고 살아남는 것에 만족한다면 인생이 가치 있다고 할 수 있을까?'였다. 광활한 우주와 무한한 시간 속에서 나의 삶은 너무나 보잘것없었다. 그러던 차에 이 문장을 만나게 됐고, 조나단처럼 나도 생존 이상의 의미를 찾는 여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생존의 가치'를 매우 크게 생각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 이상의 의미를 내 삶에 부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새는 알에서 빠져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한 문장은 아니긴 한데, 이 문장도 나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이 문장은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 나온다. 고전 소설 중에서 가장 많은 청소년들에게 영향을 미친 소설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그 청소년들 무리에 나도 포함된다.


알은 나를 구속하는 무언가다. 그것은 가정이나 학교 등 외부적 환경일 수도 있고, 고정관념이나 사회적 통념, 신념처럼 정신적인 것일 수도 있다. 심지어 강한 윤리 의식이나 책임감조차도 알이 될 수 있다. 그리고, 한 명의 완성된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그런 구속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이 문장의 뒤에는 새가 '아브락사스'를 향해 날아간다는 문장이 이어진다. 보통 신이라고 하면 선한 신과 악한 신을 구분하여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아브락사스는 선과 악을 모두 가지고 있는 신이다. 알을 깨고 나온 새가 아브락사스를 향해 날아간다는 것을 나는 '선과 악조차도 자신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라고 해석했다. 그리고 지금도 그 기조를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다. 세상에 무조건 옳은 것과 무조건 틀린 것은 없다고 생각하고, 모든 일을 다양한 각도에서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둘이 만나 서는 게 아니라, 홀로 선 둘이 만나는 것이다.


서 정윤 시인의 '홀로서기'가 크게 유행했던 적이 있다. 나도 이 시인의 시를 좋아했고, 서 정윤 시인의 시집은 전부 샀다. 그중 몇 권은 아직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아마 여러 편의 시리즈로 나온 '홀로서기'에서 가장 유명한 문구가 바로 이 문구가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사람은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라고 배운다. 사람을 뜻하는 한자 '人'은 두 사람이 서로 기대고 있는 모양으로 많이 회자된다. 하지만, 나는 세상의 한가운데에서 '혼자' 굳건히 서 있어야 한다는 관념을 가지고 있다. 어쩌면, 어린 시절에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나를 언제나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일찍 알아버렸기 때문일 수도 있다.


'갈매기의 꿈', '데미안', '홀로서기'는 모두 스스로의 힘으로 굳건히 일어설 것을 요구하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문장과 작품에 이런 공통점이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나의 잠재의식 어딘가에 그런 인식이 있었고, 그것을 표면으로 끌어 내 준 것이 이런 문장들인 것 같다.


If you think you can, you will.


이 문장은 고등학생 시절에 영어 공부를 하다 우연히 발견한 문장이다. 어떤 문제의 지문에 포함된 문장이었는데, 평범한 문장이지만 어쩐 일인지 마음에 크게 와닿았다. 아마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그 후로 한동안 이 문장을 연습장에 반복하여 적으면서 공부를 했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는 이 문장을 되뇔 일이 없었지만, 이미 내 사고 한편에 깊게 자리 잡았던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무엇이든지 하기만 하면 잘할 수 있다는 의식이 나에게는 생겨 있었다. 그래서 안 해본 역할에도 도전할 수 있었고, 잘 안 되는 일이 있어도 금방 포기하지 않았다. 40대 후반에 글쓰기에 도전하고, 계속 이어나갈 수 있는 것도 그런 의식 덕분이다.


당연히 무엇이든지 다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 그런 사람은 없고, 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내가 스스로 충분히 노력해 봤다고 생각하기 전까지는 미래를 의심하지 않는다. 많은 걸 이룬 것은 아니지만, 내가 성취한 것들은 그렇게 의심하지 않고 나아갔기 때문에 이룬 것들이다.


나를 형성하고 있는 문장들


모두 30년 전에 만났던 문장들이지만,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도 나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다. 사춘기는 '자아'가 형성되는 시기라고 하는데, 과연 사춘기에 형성된 자아가 지금까지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작은 변화들이야 있었지만, 큰 줄기는 그대로인 것이다.


거꾸로 생각해 보면, 자아를 정립하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어른의 말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 지 깨닫게 된다. 수도 없이 뱉어 내는 말 중 한 마디일 뿐이지만, 그 한 마디가 어떤 사람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게다가 그것이 말이 아니라 글이라면, 그 영향력은 더 클 것이다. 지금 글을 쓰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쓸 사람으로서, 문장 하나하나에 더 신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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