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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한하늘 Sep 15. 2023

건축 박물관 프라하에서의 이틀, 첫째 날

프라하는 블타바 강 유역에 있으며, 9세기부터 세워진 건축물 유산이 풍부한 도시이다. 작은 정착촌들에서 비롯되었으며, 점차 확장되어 지금은 시가지가 구릉지대, 블타바 강 지류의 유역들, 강 연안의 계단식 대지까지 펼쳐져 있다.


<프라하에서는 건물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프라하에는 로마네스크 양식, 바로크 양식, 로코코 양식, 고전주의 양식, 신고전주의양식 등 여러 가지 양식의 건축물들이 많이 보존되어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에게 빠르게 항복한 덕분에 도시를 보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치욕의 역사이지만, 그렇게까지 해서 보존한 도시 덕분에 많은 후손들이 덕을 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신시가지 쪽으로는 특히 탑 형태를 가진 건축물이 많이 있는데, 그래서 프라하에는 '백탑의 도시'라는 별명이 붙어있다. 1945년 이후에는 도시계획에 의해 옛 도심지를 보존하면서 새 건축물들의 건립을 규제하였다고 한다. 유럽에는 이렇게 '가꾸어진' 도시가 많은데, 경제 논리에 좌우되는 한국의 도시들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부러웠다.


<돌바닥이 많아서 캐리어 바퀴가 파손될 수 있다.>


프라하의 전체 면적은 잘 모르겠지만, 주요 관광지가 모여있는 중앙역과 프라하성 사이의 구역은 무엇을 타고 다닐 필요가 없다. 그리 넓지 않기 때문에 걸어서 이동해도 금방 간다. 다만, 길이 우리나라처럼 반듯하게 닦여있지 않고, 약간 울퉁불퉁한 길이기 때문에 발목에 무리가 많이 간다. 편한 신발을 신고 오거나 쉬엄쉬엄 다니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캐리어를 가지고 다니는 경우에는 바퀴가 파손될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할 것 같다.


<서울의 남대문 같은 건가?>


화약탑(Powder Gate, Praszna Brana)은 15세기에 대포를 보관하는 요새로 지어졌다가 나중에 연금술사의 연구실과 화약창고로 쓰인 곳이다. 지금은 내부에 전시관과 전망대를 가지고 있는데, 전망이 그리 좋지는 않다고 하여 올라가지 않았다. 색깔이나 디자인이 옆에 있는 화려한 아르누보 양식의 시민회관과 크게 대조를 이룬다.


화약탑은 탑이면서 성문이기도 한데, 구시가지를 드나드는 출입문 중 유일하게 남은 것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왕과 여왕의 대관식을 거행하는 장소이자, 외국 사신들이 프라하 성으로 들어올 때 꼭 거쳐야 하는 관문으로 이용될 만큼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1437년에 이 자리에서 화형을 당한 종교개혁가 얀 후스와 제자들의 동상이다.>


구시가지 광장은 종교 개혁, 프라하의 봄, 벨벳 혁명 등 언제나 체코 역사의 중심지였던 장소다. 야경도 멋지지만 역시 화창한 날의 낮풍경이 가장 멋진 광장이다. 광장 주변에는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 아르누보 양식의 건물들이 있어 유럽의 건축 박물관으로 불린다고 한다.


<틴 성장의 낮과 밤. 광장의 야경도 상당히 멋지다.>


구시가지를 대표하는 건축물인 틴 성당이다. 1365년에 건립되었으나 이후 계속적인 변형으로 17세기까지 다양한 건물 양식이 가미되어 있다고 한다. 외양은 고딕 양식이지만 내부는 바로크 양식으로 되어 있고, 북쪽 벽에는 로코코 양식의 제단이 있다. 성당 안에는 유명한 천문학자 티코 브라헤가 묻혀 있으며, 교회 바로 옆에는 유명한 작가 프란츠 카프카의 생가가 있다.


입구를 찾기 어려울 수도 있는데 성당 앞의 식당으로 보이는 건물의 통로를 따라 들어가면 성당으로 이어진다. 우측 골목 쪽으로도 통로가 있는 것 같다. 사진을 잘 보면 두 첨탑의 크기가 다르다. 유럽에는 이렇게 크기가 다른 두 개의 첨탑을 가진 건축물이 여럿 있는 것 같은데, 큰 첨탑이 아담, 작은 첨탑이 이브를 나타낸다고 들었던 것 같다.


<천문시계와 관람객들. 소매치기를 조심해야 하는 곳이다.>


이것이 그 유명한 프라하의 천문시계(Orloj)이다. 최초 제작은 1410년에 천문학자인 얀 신델과 시계공 미쿨라시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 이후로 고장과 수리가 반복되고 여러 가지 장식이 덧붙여졌다. 시계는 상하 2개의 큰 원형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위쪽 시계를 칼렌다륨, 아래쪽 시계를 플라네타륨이라고 부른다. 칼렌다륨은 천동설의 원리에 따른 해와 달과 천체의 움직임을 묘사하였으며, 1년에 한 바퀴씩 돌면서 연, 월, 일, 시간을 나타낸다. 플라네타륨은 12개의 계절별 장면들을 묘사하여 당시 보헤미아의 농경생활을 보여준다.


플라네타륨 좌측의 돈 자루를 움켜쥔 유태인은 탐욕과 욕심을(유태인에 대한 당시 유럽인들의 인식을 알 수 있다), 거울을 든 남자는 허영심을, 우측의 악기를 든 터키인은 유혹을, 해골인형은 죽음의 시간이 도래했음을 알리며 회개하라는 메시지를 전한다고 한다.


매시 정각에 칼렌다륨 오른쪽의 해골 모형이 움직이면서 12 사도들이 2개의 창을 통해 천천히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이어서 시계 위쪽의 황금색 닭이 나와 울면서 시간을 나타내는 벨이 울린다. 매우 짧은 퍼포먼스지만, 이것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든다. 물론 나도 봤다. 맨 눈으로 잘 보기 위해 사진은 찍지 않았다. 사람들이 이렇게 모여들 때는 소매치기에게 절호의 기회가 되므로, 천문시계 퍼포먼스를 볼 때는 소지품 단속을 잘하면서 보는 것이 좋다.


<저 멀리 보이는 것이 프라하성이다.>


천문시계가 있는 건물에는 전망대가 있다. 엘리베이터는 보통 장애인이나 노약자들이 이용하는 것 같았고, 건장한 사람들은 걸어서 올라갔다. 전망대에서 본 프라하의 풍경은 꽤 볼만했다. 고층 빌딩이 즐비한 도시의 풍경에 비하면 훨씬 사람 냄새가 나는 풍경이라고 느껴졌다.


<나의 최애 기념품이다.>


하벨 시장은 오전 8시에 열고 오후 6시에 닫는다. 프라하의 가장 큰 재래시장으로 가격이 저렴한 편이므로 기념품 구입하기에 좋다. 가게들마다 대체로 비슷한 물건을 팔고 있는데, 가격이 조금씩 차이가 난다. 시장 입구 쪽은 조금 비싸니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다고 바로 사지 말고, 한 바퀴 둘러보고 사면 조금이라도 싸게 살 수 있다. 


내가 여행을 하며 샀던 기념품 중 가장 애착을 가지고 있는 것이 프라하에서 산 탁상시계다. 프라하의 유명한 천문시계를 모델로 한 것으로 하벨 시장에서 샀다. 지금도 회사 책상에 놓여 있는데, 여전히 잘 동작하고, 10년이 지난 지금도 디자인이 마음에 든다.


<소련에 대항해 자유를 외치며 분신 자살한 두 청년을 기리는 곳이 있다.>


바츨라프는 체코의 영웅으로, 10세기경 보헤미안 기사들과 함께 적군을 물리치고 체코의 국난을 극복했다고 한다. 바츨라프 광장(Wenceslas Square)은 '프라하의 봄'이 일어났던 현장이기도 한데, 수많은 체코의 젊은이들이 바로 이곳에서 소련에 대항하여 자유를 외쳤다고 한다. 750m 정도의 긴 대로가 이어져 있는데, 양 옆으로는 각종 상점과 레스토랑들이 들어서 있어 항상 인파가 붐비는 곳이다.


<낮이 밤으로 바뀌는 시간에 카를교를 방문해 보기를 추천한다.>


프라하에 대해 알아볼 때는 카를교를 그냥 예쁜 다리 하나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와보니 왜 카를교가 프라하에서 가장 인기 있는 명소인지 알 것 같았다. 다리 위에서 보는 풍경이 참 아름다웠고, 내가 이 풍경 속에 있다는 것이 감동적으로 느껴졌다. 환할 때부터 노을이 지는 시간을 지나 밤까지 이 다리에 있었는데,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풍경이 모두 아름다웠다.


카를교는 12세기에 처음 만들어졌으나 2번의 붕괴를 겪었고, 1357년에 다시 건축을 시작하여 1402년에 완공된 것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1965년 보수공사를 시작하면서 차량 통행을 금지시켜, 현재는 보행자 전용 도로가 되었다. 다리 양쪽으로는 15개씩 30개의 성인 사암 조각상들이 세워졌는데 17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약 250년에 걸쳐서 제작된 것이라고 한다. 현재 다리에 있는 것은 모조품이며 진품은 다른 곳에 보관 중이다.


<미신을 안 믿는 사람들도 괜히 한 번씩 만져보게 된다.>


가장 인기 있는 동상은 성 네포무크 동상이다. 바츨라프 4세 때 왕비의 고해신부였던 네포무크는 왕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왕비의 고해성사 내용을 말하지 않아 블타바강에 던져졌다고 한다. 그 후 시신을 못 찾다가 3년 후 강 위에 다섯 개의 별과 같은 광채가 떠올랐는데 그 아래에 신부의 시신이 있어 그 시신을 거두고 성인으로 추대해 성 비투스 대성당에 모셨다고 한다. 이 동상이 인기 있는 이유는 만지면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전설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만진 부위만 반질반질하다.


이날 내 노트에 적어놓은 프라하의 인상은 '나에게 말을 거는 듯한 도시'였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은 '젊은 시절을 이런 곳에서 보냈으면 참 좋았을 텐데'이다. 아마 젊은 시절에 프라하를 방문했다면 한국이 아니라 유럽 어딘가에 터를 잡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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