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느낌이 바로 '오밀조밀함'이다. 런던의 실제 크기가 어느 정도 되는지, 실제로 오밀조밀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런던을 생각하면 '오밀조밀함'이 떠오른다. '오밀조밀'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모여 있는 무엇이 아기자기하게 빼곡한 모양을 나타내는 말', '솜씨나 재간이 썩 세밀하고 교묘한 모양을 나타내는 말', '마음씨가 꼼꼼하고 자상한 모양을 나타내는 말' 정도의 뜻이 나온다. 세 번째 의미는 사람을 겪어봐야 아는 것이라서 나로서는 잘 모르겠지만, 첫 번째 의미와 두 번째 의미는 내가 본 런던과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런던에서 찍은 사진에는 제목을 붙이기도 애매한 일상적인 모습의 사진들이 많다. 유명한 대상을 찍을 때는 특별한 이유 없이 기계적으로 찍기도 하지만, 일상적인 모습을 찍는 것은 분명 그 풍경이 나에게 어떤 감흥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 감흥이 단지 낯섦에서 온 것인지, 아니면 내 마음속의 어떤 단추를 눌렀던 것인지, 한 번쯤 런던을 다시 방문하여 확인해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영국은 쉥겐 협약에 가입되어 있지 않아서, 입국할 때 입국 심사를 받아야 했다. 그것이 조금 귀찮기는 했지만, 덕분에 지나가는 사람에게 수작을 거는 사람이 없어서 좋았다. 왠지, 소매치기나 날치기도 파리보다 적을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정확하지는 않다.
나라마다 독특한 거리의 느낌이 있다. 그런 느낌은 주로 길 양쪽에 늘어선 건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만약, 내가 건축에 조예가 있었다면, 런던의 거리 풍경이 주는 느낌을 잘 설명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건축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다. 그래서 내가 느낀 런던의 거리 풍경을 그저 이렇게 묘사할 수밖에 없다. '비틀스의 음악 같은 풍경'이라고.
내가 런던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 중 하나는 '산업혁명의 도시'였다. 영국 역사에 대해 읽으면서 갖게 된 이미지였고, 런던의 좁은 지하철을 보면서도 느껴졌던 이미지다. 그래서 그런지, 하이드파크를 보는 느낌도 여느 도시의 공원과는 조금 달랐던 것 같다. 산업혁명 직후에는 효율과 생산성이 신처럼 떠받들어졌을 것이다. 그래서, 10살도 안된 아이들이 15시간 이상의 노동을 해야 했다. 그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일해야 했던 사람들에게도 이 공원이 위로가 되었을지 궁금했다. 지금은 모든 런던 시민의 휴식처이지만 말이다.
유럽에 있는 도시 중에서, 해가 진 후에 가장 많이 돌아다녀 본 도시가 런던인 것 같다. 출장으로 갔을 때가 겨울이어서 해가 일찍 지기도 했고, 같이 간 동료 중에 런던의 펍을 이용해 보고 싶어 하는 동료가 있어 함께 나들이를 하기도 했다. 유럽의 도시들은 해가 지면 빠르게 활기가 가라앉는 편이었는데, 런던에 갔을 때는 해가 짧은 2월이어서, 아직 활기가 남아있는 런던의 밤거리를 돌아다닐 수 있었다. 물론, 그 활기도 대체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분주함이었던 것 같지만 말이다.
런던에는 런던에서만 느껴지는 고유한 모습과 분위기가 있다. 역사적으로 대륙과 활발한 교류가 있었기 때문에, 일본처럼 완전히 다른 문화권으로 발달한 것은 아니다. 그래도 대륙의 도시들과는 구분되는 런던만의 느낌이 확실히 있다. 그 느낌을 앞에서는 비틀스의 음악 같다고 했는데, 다른 면에서 보면 대도시와 소도시가 절묘하게 섞여 있는 느낌 같기도 하다. 화려함과 소박함, 분주함과 한가함이 반의어가 아니라 유의어인 것 같은 생각이 드는 느낌이다. 마치 비틀스의 음악에서 세련됨과 촌스러움이 같이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