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는 우리에게 친숙한 도시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축구로, 패션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패션으로 익숙한 도시다. 하지만, 나는 축구에도 패션에도 큰 관심은 없었다. 그저, 최후의 만찬이 있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 밀라노를 방문했다.
미국의 수도는 워싱턴이지만 경제는 뉴욕을 중심으로 돌아가듯이, 이탈리아의 수도는 로마지만 이탈리아의 경제 수도는 밀라노인 것 같다. 이탈리아의 중심 산업들이 밀라노에 기반을 두고 있고, 그래서 경제 활동이 매우 활발한 도시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밀라노를 방문했을 때의 느낌은 베네치아나 로마를 방문했을 때의 느낌과 많이 달랐다. 잘 정비된 대도시의 느낌을 첫인상에서 받았는 데, 굳이 비교를 하자면 독일의 프랑크푸르트를 방문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물론, 돌아다녀보면 두 도시는 많이 다르지만 말이다.
밀라노의 랜드마크는 역시 두오모가 아닐까 한다. 두오모는 이탈리아에서 대성당을 뜻하는 단어다. 프랑스에 여기저기 노트르담이 있듯이 이탈리아에는 여기저기 두오모가 있다. 그중 나는 밀라노의 두오모만 봤기 때문에 다른 도시의 두오모와 비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프라하나 파리에서 봤던 성당에 비해 확실히 크고 웅장한 느낌이 들었다. 다른 성당들에서 장엄함이 느껴졌다면, 밀라노의 두오모에서는 위압감이 느껴졌다.
교회나 성당을 크게 짓는 것에 대해서 우호적인 편은 아니었다. 그 자원이 서민들을 위해 쓰이면 더 좋겠다고 지금도 많이 생각한다. 그런데 밀라노의 두오모를 보고 그 안에 들어가 보니, 성당을 크게 짓는 것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압도적인 외형, 내부의 높은 천장, 울리는 소리, 다소 어두운 조명, 다양한 조각들, 이 모든 것들이 신의 존재를 강하게 주장하고 있었다. 신을 믿지 않는 사람도 신이 진짜로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만들 것 같았다.
예약한 시간에 맞춰 최후의 만찬을 보러 갔다. 최후의 만찬은 한 번에 정해진 인원을 들여보내는 방식이라서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보기가 어려웠다. 나도 한국에서 수개월 전에 미리 예약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사실 밀라노를 방문할 계획이 처음에는 없었는데, 최후의 만찬이 밀라노에 있다고 하여 여행 일정에서 1박을 밀라노로 잡았다.
큰 기대를 하고 갔지만, 막상 최후의 만찬을 눈으로 직접 봤을 때의 감흥은 크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조명도 어두웠고, 벽화가 이미 많이 부식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책에서 봤던 그림을 벽화로 볼 것이라고 기대하면 안 된다. 그냥, 최후의 만찬을 바로 앞에서 '직접 봤다'는 사실에 의미를 두어야 할 것 같다.
나중에 로마를 방문했을 때 가이드가 해준 얘기가 있다. 이탈리아는 문화재를 원래 있던 곳에 두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최후의 만찬 같은 문화재를 박물관으로 옮겨서 보존하지 않는다고 했다. 아마, 영국이나 프랑스였으면 진작에 박물관으로 옮겨졌을 것 같다. 결과적으로 문화재 보존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는 하지만, 이탈리아인들의 생각에 공감되는 부분도 있었다. 전 세계에서 뜯어 온 것을 박물관에서 볼 때의 불편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쇼핑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밀라노가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쇼핑 하나 만으로도 밀라노를 몇 번이고 방문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쇼핑에는 관심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두오모와 최후의 만찬을 본 것으로 밀라노에서 볼 것은 다 본 느낌이었다. 비록 최후의 만찬이 기대만큼은 아니었지만, 보러 가지 않았으면 지금까지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래서, 최후의 만찬 하나만으로도 다녀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