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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한하늘 Oct 18. 2023

대충 하지 말자

재수생 시절에 당구를 많이 쳤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배운 당구였는데, 재수생 때는 달리 할 것도 없고, 같은 재수생끼리 어울리다 보니 당구를 유독 많이 치게 되었다. 그 당구에 '대충 치고 쫑 본다'라는 속어가 있었다. 여기서 '쫑'이라 함은, 내 의도와 상관없이 두 공이 부딪히게 된 상황을 말한다. 의도치 않게 발생하기 때문에 보통은 안 좋은 사건이지만, 간혹 '쫑' 덕분에 되지 않을 것이 되는 경우도 있다. 당구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축구에서 공이 의도치 않게 상대 수비수의 몸을 맞은 뒤 골대로 빨려 들어가는 경우를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대충 치고 쫑 본다'라는 말은 그래서, 대충 치고 운을 바란다는 뜻으로 사용했다. 원래는 각도를 잘 재고, 정확한 계획과 계산으로 쳐야 하는 것이 당구지만, 어차피 프로도 아니고 그냥 취미생활이니까 대충 치면서 운에 약간 기대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쳐도 당구는 충분히 재미있었다. 하지만 운으로는 실력이 늘지 않는다. 대충 치고 쫑을 보는 당구로는 일 년을 쳐도 실력이 제자리에 머물러 있게 된다. 정확히 계산하고 노려 쳐야 결과로부터 피드백을 얻을 수 있고, 그를 통해 실력이 향상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은 대충 치고 쫑을 보면 안 된다. 그런 자세로는 연차만 늘어나고 역량은 그대로가 된다. 그리고, 점점 나를 찾는 곳이 줄어들게 된다. 처음에는 같은 위치에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나랑 같은 위치에 있던 사람들이 저 멀리 앞서 나가고 있는 것을 바라보게 된다. 그러니, 일을 정확히 계획대로 하려고 노력하자. 그리고 스스로 회고와 평가를 하자. 그래야 내가 수정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알 수 있고, 정확하고 빠른 성장으로 연결할 수 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을 통해서 성장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효율적인 것은 없다. 그리고, 일을 통한 성장은 일을 대하는 태도에 달려 있다. 시작할 때는 모두가 똑같은 아마추어였지만, 일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누군가는 빠르게 프로페셔널이 되고, 누군가는 계속 아마추어에 머물러 있게 된다. 남의 등을 보고 달리게 될지, 아니면 남이 내 등을 보게 될지가 지금 내가 일을 대하는 태도에 달려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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