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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한하늘 Mar 08. 2024

다음 생에 물건으로 태어난다면

나는 환생을 믿지 않는다. 그래서, 전생이니 다음 생이니 하는 것들을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재미있는 이야깃거리인 것은 맞는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으로 태어나면 좋을까 생각해 봤다. 살아있는 인간으로 한 번 살아봤으니, 다음 생은 물건으로 태어나면 좋을 것 같다.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카메라'다. 여행을 좋아하니 여행 필수품이 되고 싶은데, 아름다운 풍경을 담는 카메라가 그중 가장 좋은 것 같다. 요즘은 스마트폰으로도 사진을 많이 찍지만, 스마트폰이 되고 싶지는 않다. 스마트폰은 워낙 일을 많이 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진만 찍는 카메라가 좋은데, 카메라 중에서도 필름 카메라보다는 디지털카메라가 좋을 것 같다. 디지털카메라가 되어야 내가 본 풍경을 내 기억 속에 더 오래 담아둘 수 있으니까.


글 쓰는 것을 좋아하니 '펜'으로 태어나도 좋겠다. 펜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심이 잘 부러지는 샤프는 별로다. 그리고 연필도 좋지 않을 것 같은데, 몸에 칼을 대야 하기 때문이다. 필기감 좋고 오래 쓸 수 있는 볼펜이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검은색보다는 파란색이면 더 좋겠다. 검은색이 아니어야 다른 볼펜이 쓴 것과 구별할 수 있고, 이왕이면 하늘과 바다를 떠올릴 수 있는 파란색이 나와 잘 어울릴 것 같다.


이왕 물건으로 태어난다면, 사람들에게 이로움을 주는 물건으로 태어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그래서 생각해 본 것은 '등대'다. 바다를 좋아하니, 바닷가에 서 있는 것도 마음에 들고, 바다에서 배들이 길을 잃지 않게 비추어 주는 역할도 마음에 든다. 다만, 추운 것을 많이 싫어하는 편이라서 바닷바람을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로운 것으로 하나 더 생각한 것은 '방'이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밤을 편하게 보낼 수 있는 공간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된다. 돈이 없어서 기차역 대합실에서 자본 적도 있고, 산에서 해가 지기 전에 내려오지 못해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상태에서 하산해 본 적도 있으며, 바닷가에 있는 초소에서 찬바람을 피해 밤을 새운 적도 있다. 그럴 때마다 춥고 어둡고 무서운 밤을 안전하고 안락하게 보낼 수 있는 방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것도 돌아갈 곳이 있기 때문에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편하게 쉴 수 있는 방으로 태어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하나를 더 꼽으려 했는데, 그 하나를 생각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원하는 것이 많지 않아서 그런지, 다시 태어난다면 되고 싶은 것도 별로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하나가 떠올랐고, 다른 어떤 것보다 이것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바로 '인공위성'이다. 나는 다시 태어난다면 인공위성이 되고 싶다. 조용한 곳에 혼자 머무르면서 지구가 변해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 태양이 이글거리는 것도 보고 싶고, 아득한 우주와 다른 별들도 보고 싶다. 생각하면 할수록 내가 원하는 환상적인 삶이 될 것 같다.


역시 다음 생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공위성이 된 나를 생각하니 마음이 즐겁다. 나중에 시간이 되면 인공위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을 써보면 어떨까 싶다. 꼭 다음 생까지 가지 않더라도, 인공위성으로 사는 삶을 체험해 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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