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무석
“먼저 나를 바라봐 주자. 사람은 자신을 알아갈수록 편안하고 자유로워진다. 나를 바라보면 나를 알아가게 된다. 혹 새로이 알게 된 나 자신이 맘에 들지 않아도, 부족해도 그대로 나로서 인정해 주자. 그동안 수고했고, 열심히 살아왔다고 인정해 주자. 그리고 누군가에게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면 그 상처를 싸매 주자. 힘들었을 거라고, 그러나 이젠 지난 일이라고 위로해 주자.”
- 이무석, <30년 만의 휴식>
정신건강의학과가 사람으로 북적인다. 예약을 하면 몇 개월 지나야 진료를 받을 수 있다. 대기 중인 사람들 중에는 어린 학생들도 많다. 바야흐로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넘쳐나는 시대다. 꼭 상담을 받는 사람들만 아픈 것이 아니다.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마음속에 상처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 상처는 주로 외부의 요인에 의해 생긴 것이지만, 한번 상처가 생기면 외부의 요인이 사라진 후에도 아픔은 계속 남는다. 특히 어린 시절에 새겨진 상처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30년 만의 휴식>의 저자 이무석 박사는 정신과 전문의다. 그리고, 정신분석학에 조예가 깊다. 정신분석학을 연구한 것만이 아니라 그 자신도 350여 시간에 걸쳐 정신분석을 받았다. 그래서 환자들의 마음에 일어나는 변화를 더 잘 이해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런 깊은 이해와 통찰을 바탕으로 이 책을 집필했다. 그가 직접 만나는 환자들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치유받기를 희망하는 마음으로 책을 낸 것 같다.
책은 ‘휴’라는 사람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아마 이무석 박사가 치료했던 환자들 중 한 명이었던 것 같다. 휴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성공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주변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있었고, 결국 자신도 상처를 입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그런 휴가 저자를 만나면서 달라진다. 자신 속에 있던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그것을 통해 마음의 여유와 자유를 획득하게 된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히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의 상처를 보듬는 사람이 된다.
‘휴’라는 사람의 이야기로 독자를 책에 몰입시킨 후에는, 우리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양상의 ‘휴’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시기심이 많은 사람, 열등감이 심한 사람, 잘난 체하는 사람, 이중적인 사람 등의 사례를 하나씩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행동이 어린 시절의 어떤 경험에 근원을 두고 있는지 풀어낸다. 나아가 그런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마음가짐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야기를 한다. 인간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사람들이 겪는 문제가 다른 사람들도 겪는 보편적인 문제임을 밝혀준다. 마음에 짐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수십 년 간 사람의 마음을 치료했던 의사로서 전하고 싶은 말을 담아내고 있다.
유년 시절의 기억이 평생 동안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많이 알려져 있다. 마음속의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것도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 하지만, 아는 것과 공감하는 것은 다르다. 실제로 자신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갖는 ‘설득력’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한 사람의 이야기로부터 점점 더 많은 사람의 이야기로 확장해 가는 구성은 독자를 몰입시키기에 좋다. 게다가 내용도 상당히 전문적이다. 추상적인 수준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문장을 구사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따뜻함과 친절함이 문장 구석구석에 배어 있다.
이 책은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나를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되지만, 내 주변 사람을 이해하는데도 마찬가지로 도움을 준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좋은 인간관계를 구성하고 건강한 공동체를 형성하는 바탕이 된다. 따라서, 지금 마음에 짐이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건강한 마음으로 잘 지내고 있는 사람들도 이 책을 한 번 보기를 권한다. 사람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 주변을 보는 눈이 달라질 것이다.
“휴는 자유로워졌다. 물론 휴의 인생의 문제들이 다 해결된 것은 아니다. 다만 그는 정당한 현실의 무게를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과장할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과소평가하지도 않는다. 굳이 피해 가지도 않는다. 현실의 무게를 인정하고 과장하거나 회피하지 않는 태도, 여기에 자유로움의 근원이 있다.”
- 이무석, <30년 만의 휴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