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에 있어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바로 ‘감정’이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이 감정일지도 모르겠다. 사람들과 좋은 인간관계를 형성하려면, 사람들이 나와 함께 있을 때 ‘좋은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면 된다. 나와 함께 있는 것이 좋은 감정으로 연결된다면, 사람들은 나를 좋아하고 나에게 우호적으로 행동할 것이다.
그런데, ‘좋은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다. 좋은 감정을 느끼게 되는 요인이 사람마다 다양하고, 그런 요인을 만족시키는 것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나쁜 감정’을 느끼지 않게 하는 것은 좀 더 쉬운 편이다.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나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요인 중 몇 가지가 잘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을 하는 것보다 하지 않는 것이 대체로 실행하기가 쉽다.
직장 생활에서 피해야 할 나쁜 감정 중 하나가 바로 ‘패배감’이다. 조금 더 넓게 이야기하면 ‘실패했다는 느낌’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나와 함께 있을 때 ‘실패’를 경험하게 되면, 그 사람은 나와의 관계를 불편하게 느낄 수 있다. 많은 직장인들이 ‘실패’에 아주 예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좋은 인간관계를 위해서는, 상대방에게 ‘패배’ 혹은 ‘실패’의 느낌이 들지 않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패배의 경험을 느끼게 하는 대표적인 자리가 바로 토론의 자리일 것 같다. 토론에서는 서로 상충되는 의견이 대립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치열한 논쟁을 통해 승리한 의견과 패배한 의견이 갈린다. 그런데, 종종 결론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억지를 부리는 경우가 있다. 감정을 개입시키는 경우도 있고, 부당한 수단으로 이기려고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들이 발생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겠지만, ‘패배감’을 느끼고 싶지 않은 마음도 많이 작용한다.
예전에, 회사가 ‘치열한 논쟁’을 권장했던 적이 있다. 서양에서는 회의실 안에서 얼굴이 벌게지도록 싸우고, 회의가 끝나면 다시 웃으면서 잘 지낸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리고,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그때는 그것이 상당히 그럴듯해 보였지만, 지금은 다르게 생각한다. 심지어, 내가 읽은 서양의 유명한 협상 서적도 그것과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협상과 토론은 상대방을 이기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가장 좋은 결론을 만들어 내기 위해 하는 것이다. 승자와 패자를 만들지 않고도 그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택’이 아니라 ‘탐색’의 관점이 필요하다. 누구의 의견이 더 좋은지가 아니라 가장 좋은 의견이 무엇인지를 함께 찾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내 의견’이 아니라 ‘이런 의견’으로 이야기를 풀면 도움이 된다. 내가 말한 의견이더라도 마치 다른 사람이 이야기한 의견인 것처럼 대화를 진행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의견의 ‘소유권’을 제거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답이 아니라 문제에 집중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문제에 대해 같이 탐색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같이 찾아가는 과정으로 만들면, 누가 제안한 의견인지가 희석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어떤 의견이든 명시적으로 존중하는 표현이 필요하다. ‘그것도 좋은 생각이네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군요’ 같은 표현을 더하는 것이다. 자신의 의견이 충분히 존중받았다고 생각하면, 다른 사람의 의견이 선택되더라도 패배감을 느끼지 않게 된다.
어떤 사람이 ‘임진왜란’에 대해 사람들에게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 모두 재밌게 듣고 있는데, 중간에 잘못 설명되는 부분이 있다. 이럴 때, 중간에 끼어 들어서 그것을 바로잡는 사람이 있다.
틀린 것을 바로잡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니다. 그냥 두면 사람들이 잘못된 정보를 사실로 알게 될 수 있으니, 바로잡아 주는 사람에게는 바로잡아야 하는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그것이 꼭 ‘필요한’ 일인가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만약, 역사 수업 중에 선생님이 틀린 이야기를 했다면, 그것을 빨리 바로잡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회사에서 잡담을 나누는 중이라면 ‘임진왜란’에 대해 잘못된 정보를 접하는 것이 대체로 큰 문제는 아니다.
사람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쉽게 불러일으키는 장치가 있다. 바로 ‘브레이크’다. 자신의 행동이 제지되었을 때, 자신의 의지가 꺾였을 때 부정적인 감정이 쉽게 형성된다. 행동에 많이 몰입했을수록, 의지가 클수록, 브레이크의 부정적인 효과는 더 커진다. 심지어 그 브레이크가 자신의 말과 행동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어떤 기분을 느끼게 될까?
지금 당장 바로잡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면 일단 그냥 넘어가자. 만약, 틀린 말이 마음에 걸려서 수정하고 싶다면, 그 말을 했던 사람을 나중에 따로 만나 공손하게 이야기하자. 다른 사람들에게 잘못 알려준 것을 수정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 맡기자. 그러면 그 사람이 ‘실패’의 느낌을 느끼지 않게 하면서도 틀린 말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다른 사람이 있는 곳에서는 조용히 있었던 것에 대해 고마워할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 부탁이나 제안을 했다가 거절을 당하는 것도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일이다. 일상 속에서 실패나 좌절을 쉽게 접하게 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괜찮다’고 말은 해도 괜찮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거절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예스맨이 되어서도 곤란하고, 두리뭉실하게 이야기하는 것도 썩 좋은 대응은 아니다. 그랬다가는 결국 본인이 괴로운 처지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거절은 명확하게 해야 한다. 다만, 상대방의 부탁이나 제안에 대해 존중의 표현을 더해 보자. 상대방의 상황을 이해한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고, 나를 떠올려 줘서 고맙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그러면서 내가 그 부탁이나 제안을 받아들일 수는 없음을 분명하게 이야기하자.
제안을 하는 사람은 이미 상대방의 거절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거절을 당하면 마음이 좋지 않다. 그런데, 상대방이 내 제안을 존중한다는 느낌이 들면, 거절을 당했어도 그 경험이 크게 나쁘게 느껴지지 않게 된다.
상대방이 거절을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 요구할까 봐 걱정될 수도 있다. 만약 상대방이 질척거린다면, 그래서 반대로 내가 힘들어질 것 같다면, 그때는 단호하게 거절하자. 거절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라면, 굳이 배려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자신의 위치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실패나 좌절에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그것이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많지는 않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경쟁’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고, 높은 성과를 위해 모든 곳에서 ‘경쟁’이라는 도구를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경쟁’의 본질에는 ‘불안’이 존재한다.
생존에 대한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실패나 좌절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자기 수양으로 쉽게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타인의 불안을 이해하고, 그들의 불안을 자극하지 않는 커뮤니케이션을 지향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함께하고 싶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좋은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1. 토론은 이기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승자와 패자를 나누는 과정이 아니라 최선의 답을 함께 찾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내 의견'을 없애고 '이런 의견', '저런 의견'으로 소유권을 공동화하면 좋다.
토론 중에 나오는 모든 의견에 존중의 표현을 하자.
2. 틀린 말을 꼭 바로잡을 필요는 없다
여러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누군가의 말을 바로잡을 때는, 그것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인지 생각하자.
즉시 수정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면, 다른 사람이 없는 곳에서 따로 이야기하자.
'바로잡는' 것에 집착하지 말고, 사소한 것은 틀린 대로 놔둬 보자.
3. 거절하는 과정에서도 존중을 표현하자
부탁이나 제안을 거절당하는 것도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한다.
거절을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존중의 표현을 더하면 부정적인 감정을 불식시킬 수 있다.
거절의 표시는 명확하게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부탁을 반복한다면 단호하게 거절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