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통찰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런 통찰은 그 사람이 만들어 가는 커리어의 핵심 요소 중 하나가 된다. 프로그래머에게는 프로그램에 관한 통찰이, 기획자에게는 기획이나 콘텐츠에 관한 통찰이 중요한 도구이자 무기가 된다. 그런데, 이런 통찰은 영속적이지 않다. 인간관계에 관한 통찰처럼 오랜 시간 효과를 발휘하는 통찰도 있지만, 직업과 관련된 대부분의 통찰은 언제든 무용한 것이 될 수 있는 것들이다.
따라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통찰의 범위를 넓게 만들 필요가 있다. 하고 있는 일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통찰에만 의지하지 말고, 적극적인 활동을 통해 더 많은 통찰을 얻어내려고 해야 한다. 그러면, 나의 핵심 통찰이 무의미해지는 상황이 오더라도, 새로운 환경과 조건에 맞는 또 다른 통찰을 나의 무기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자연어(사람의 말) 처리는 인공지능의 여러 분야 중에서도 쓰임새가 많은 분야다. 그래서 자연어 처리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인공지능 연구자에게 큰 가치가 있었다. 하지만, 자연어 처리를 능숙하게 해주는 서비스가 넘쳐난다면 어떻게 될까? 여전히 높은 연봉을 받는 일자리가 있겠지만, 그 수는 줄어들 수 있다. 대부분의 회사에서는 직접 자연어를 처리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난이도 조절은 게임 기획에 있어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게임은 너무 어려워도 재미없고, 너무 쉬워도 재미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밸런스를 잘 다루는 것은 게임 기획자에게 큰 장점이 된다. 그런데, 인공지능이 알아서 밸런스를 잡아준다면 어떻게 될까? 그때도 밸런스를 잘 다루는 것이 큰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까?
자연어 처리와 밸런스 기획에 대한 통찰은, 언젠가 그 가치가 작아질 수 있다. 자연어 처리를 잘하고 밸런스 기획을 잘하는 것 만으로는 커리어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 하지만, 자연어 처리와 밸런스 기획을 더 깊게 들여다보면, 그 안에 변하지 않는 가치가 숨어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인공지능이 잘하는 부분은 아직 제한적이다. 여전히 인공지능이 접근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그런 분야에서는 자연처 처리 연구가 겪었던 문제들을 아직도 겪고 있다. 인공지능 분야를 벗어나서도 마찬가지다. 많은 기술들이 비슷한 어려움에 직면해 있고, 그것은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따라서, 자연어 처리가 어떻게 문제를 해결했는지, 자연어 처리 성능이 왜 급격하게 좋아졌는지 등에 대해 이해하고 있다면, 더 많은 분야에서 통찰을 활용할 수 있다.
밸런스 기획도 마찬가지다. 밸런스가 필요한 것은 게임뿐만이 아니다. 영화나 드라마 같은 다른 콘텐츠에도 밸런스가 필요하고, 온라인 쇼핑몰과 오프라인 매장의 배치와 진열에도 밸런스가 필요할 것이다. 양 극단이 모두 문제를 가지고 있는 모든 분야에서 밸런스는 중요한 요소다. 따라서, 게임의 난이도를 조절하는 것뿐만 아니라, 밸런스라는 개념에 대해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밸런스를 무너뜨리는 요소는 무엇인지, 왜 밸런스가 사용자의 경험을 크게 달라지게 하는지 등에 대해 이해하고 있다면, 게임이 아닌 곳에서도 좋은 밸런스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서 본질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작업의 가치는 언제든 크게 달라질 수 있지만, 그 작업의 본질에 담겨있는 가치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쉽게 변하지 않는 가치를 보유하고 있어야 커리어를 더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
‘수학 능력 시험’이 처음 도입되었던 때가 생각난다. 새로운 형태의 문제들이 많아서, 기존 ‘학력고사’ 문제에 익숙해 있던 학생들이 당황했던 것 같다. 수학 문제의 경우 푸는 방식이 새로웠는데, 주로 창의적인 접근이 가능한 문제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기존의 방식대로 풀어도 풀 수 있지만, 생각을 조금만 달리 하면 아주 짧은 시간에 답을 도출해 낼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50분이 걸리는 학생도 있었고, 20분 만에 끝내는 학생도 있었다.
사람들은 동일한 방법으로 여러 문제를 풀어내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런 방식이 보통 ‘정답’으로 정리된다. 문제는, ‘정답’이 사람들의 사고를 일정한 울타리 안에 가두어 버린다는 것이다. 더 좋은 해결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답’에 만족하고 안주한다.
물론, ‘정답’의 존재가 나쁜 것은 아니다. 여러 가지 문제마다 서로 다른 해결책을 다 찾아내는 것은 쉽지 않다. 따라서, 많은 문제에 적용될 수 있는 일관된 해결 방식을 익히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다만, 그런 방식에 이미 충분히 익숙해져 있다면, 그다음에는 문제마다 더 좋은 해결 방식이 없는지 찾아보는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그래야 남들보다 더 좋은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게 되고, 그것이 커리어의 경쟁력이 된다.
이것은 취업 과정에서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채용 과정에서, 어떤 상황을 설명하고 그 상황에 어떻게 대응할지 물어보는 질문이 종종 주어진다. 대답은 다양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대체로 ‘한 가지’ 대답을 한다. 나는 조금 다르게 대답했던 적이 있다. 면접관의 질문마다 두 가지 해결책을 제시하고, 각각이 가진 장단점을 설명했다. 각각의 해결책을 어떤 조건에서 사용해야 하는지도 이야기했던 것 같다. 내가 제시한 해결책이 대단한 것은 아니었지만, 면접 결과는 좋았다. 그리고, 내가 매번 두 개 이상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좋았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서로 붙어 있는 두 식당이 있다. 한 식당에는 손님이 가득하고,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사람도 많다. 반면, 바로 옆 집에는 손님이 한 명도 없다. 이런 광경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은 손님이 많은 식당이 맛집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선입견이다.
‘선입견’이라는 말이 부정적으로 사용될 때가 많지만, 사실 선입견은 나쁜 것이 아니다. 앞의 예에서 실제로 손님이 많은 식당이 맛집일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두 식당의 음식을 모두 먹어보지 않고도 어느 집이 맛집일지 가늠할 수 있게 해 준다. 매번 맞는 것은 아니지만 많이 맞고, 그래서 노력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해 준다. 문제는 이런 선입견에 갇혀있을 때 발생한다.
‘사재기’라는 것이 있다. 제품을 판매하는 쪽에서 몰래 제품을 다량으로 사들이는 것을 말한다. 그러면 판매 순위가 올라가고, 판매 순위를 본 실제 고객들은 그 제품이 인기가 많은 것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엄연히 조작이고 속임수이지만, 그 효과가 상당히 좋기 때문에 여전히 곳곳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 그리고, 이런 속임수들이 통용되는 것은 바로 사람들의 선입견 덕분이다.
통찰에 있어서도 선입견은 불가피한 면이 있다. 내가 책과 경험 등을 통해 얻은 수많은 정보를 일일이 다 기억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결국 내 머릿속에서 더 단순한 문장들로 요약될 수밖에 없고, 그런 것이 선입견을 형성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선입견은 실제로 아주 유용하다. 다만, 내가 가진 통찰의 선입견이 언제나 진실이라고 생각하게 되면, 시간이 지날수록 세상의 진실과는 멀어지게 된다. 세상은 계속 변하고 상황은 매우 다양한데, 나는 협소한 선입견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가 가진 선입견이 어떤 것인지 살피고, 그것이 여전히 유효한지 계속 살펴야 한다.
선입견에 갇히지 않기 위해서는 역시 다양한 생각과 의견을 만나보는 것이 가장 좋다. 내 생각과 맞는 것, 나와 의견이 같은 것만 찾아보면 선입견에 더 쉽게 갇힌다. 나와는 다른 생각과 관점을 만나보고 이야기를 나누어 보자. 사람을 만나도 좋고, 콘텐츠를 찾아봐도 좋다. 나와는 다른 그런 생각들이 세상에 많이 존재한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의식해야 한다. 그리고, 내 생각이 어떤 면에서 옳지 않을 수 있는지 생각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유명한 투자 격언이 있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것이다. 분산 투자를 하라는 말이지만, 본질은 ‘한 번의 위기로 모든 것을 잃게 하지 말라’는 내용일 것이다. 이것은 통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내 커리어를 구성하는 핵심 통찰도 한 번에 무너지지 않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어제 유용했던 통찰이 오늘은 무가치해지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격변의 시기에 자신의 커리어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한 두 번의 위협 정도는 지켜낼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할 것이다. 통찰의 범위를 확장하는 것은 그런 준비의 중요한 한 부분이다.
1. 본질에 관심을 갖자
구체적인 작업과 관련한 통찰의 가치는 쉽게 변한다.
모든 일에는 본질적인 부분이 있으며, 본질이 가진 가치는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
변하지 않는 가치를 가지고 있어야 커리어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
2. 더 좋은 해결책을 찾아보자
여러 문제를 동일한 방식으로 풀어내는 '정답'은 유용한 도구다.
문제에 따라 더 좋은 해결책이 존재할 수 있다.
더 좋은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 때, 커리어의 경쟁력이 확보된다.
3. 선입견에 갇히지 말자
선입견은 노력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좋은 도구다.
선입견이 늘 옳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선입견에 휘둘려 좋지 않은 결과를 만나게 될 수 있다.
나와 다른 생각과 의견을 찾고, 내 생각을 의심함으로써 선입견에 갇히는 것을 피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