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흔하게 봤지만 요즘에는 보기 어려운 것으로 종이 신문이 있다. 요즘은 다들 디지털 기기로 기사를 읽기 때문에 종이 신문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간혹 뜻하지 않은 곳에서 종이 신문을 만나면 반가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어렸을 때 보던 신문에는 한자(漢字)가 많았다. 앞의 문장처럼 한글과 한자를 병용하는 것이 아니라, 주요 단어는 그냥 한자로만 썼다. 그래서 한자를 모르면 신문을 읽기 어려웠다. 물론, 신문을 보면서 익힌 한자도 꽤 많기는 했지만, 어려운 한자가 나오면 무슨 단어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최초로 한자가 없는 신문이 나왔는데, 바로 ‘한겨레 신문’이다. 한겨레 신문이 어떤 이유에서 한글로만 기사를 작성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신문을 읽는 것이 훨씬 수월해졌다. 자연히 내가 주로 읽는 신문도 한겨레 신문이 되었다.
고등학교 때는 논술을 대비하기 위해 신문 사설을 많이 읽었다. 신문 사설은 언론사의 논설위원이 어떤 주제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서술하는 기사다. 당시에는 논술이 입시에 막 도입되던 시기였기 때문에 별다른 참고자료가 없었다. 그래서 많은 수험생들이 신문의 사설을 참고했고, 사설을 오려서 따로 스크랩하기도 했다.
더 어린 시절에는 신문에서 아주 일부 콘텐츠만 이용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텔레비전 편성표, 십자말 풀이, 4컷 만화 같은 것들이었다. 특히, 텔레비전 편성표를 많이 봤다. 자주 보는 프로그램은 채널과 시간을 외우고 있었지만, 종종 특집 프로그램도 있었고, 매주 내용이 바뀌는 ‘주말의 명화’ 같은 프로그램도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생 때는 스포츠 신문을 많이 봤다. 구기 종목을 대체로 다 좋아했는데, 특히 야구를 엄청 좋아해서 야구에 관한 소식은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다 읽었던 것 같다. 당시 버스 정류장이나 지하철 플랫폼의 가판대에서 몇 종류의 스포츠 신문을 판매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 신문을 사서 지하철 안에서 읽었다. 기억에는 스포츠 신문 중에 ‘석간’도 있었던 것 같다. ‘조간’은 아침에 나오는 신문이고, ‘석간’은 저녁에 나오는 신문이어서, 아침저녁으로 새로운 소식을 접하기도 했다.
국민학교 시절에는 매월 ‘폐품 수집’이라는 것을 했다. 그러면 빈 병이나 종이 뭉치를 학교에 가지고 가야 한다. 빈 병은 무겁기도 하고, 구멍가게에 가져가면 돈으로 바꿔줬기 때문에 학교의 폐품 수집에는 종이를 많이 가지고 갔던 것 같다. 한 달 동안 쌓인 신문들이 학교에 모이는 날이었다.
신문을 본래의 용도가 아닌 다른 용도로도 많이 사용했다. 바닥에 깔고 앉는 용도로 많이 사용되었고, 물건을 포장하는 용도로도 많이 사용했다. 유리 같은 것을 버릴 때는, 유리를 깬 후에 신문에 꽁꽁 싸서 버렸던 것 같다. 신문을 이용해 종이 접기도 하고, 유리창을 닦을 때도 신문으로 닦으면 잘 닦인다고 했다.
지금도 종이 신문이 발행되기는 하지만, 막상 일상에서 만나기가 쉽지 않다. 디지털 기기를 통해 소식을 접하는 것이 종이 신문에 비해 좋은 점이 많은 것 같다. 다만, 신문 특유의 질감과 냄새, 신문을 넘길 때 나는 바스락 거리는 소리 같은 것이 종종 그리울 때가 있다. 여전히 우리 주변에 존재하지만, 감성적으로는 먼 옛날의 유물처럼 느껴지는 종이 신문. 어쩌면 너무 빠른 변화가 너무 많은 것을 성급하게 유물로 만들어 버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