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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Game과 AI

성취감 자판기, 퀘스트 시스템

by 취한하늘

사람들이 게임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반대로 말하면 게임이 사람들을 만족시키는 가장 중요한 도구는 무엇일까? 바로 ‘성취감’이다. 사람은 강한 성취욕을 가진 존재이고, 게임은 그런 성취욕을 매우 효과적으로 만족시켜 준다. 그런데, 성취감을 어떻게 주면 사람들이 좋아할까? 커다란 성취를 이루게 하면 될까? 물론, 그것도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잦은 성취감’이다. 성취감을 자주 느끼게 하면 사람들은 그 게임을 계속 플레이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잦은 성취감’을 위해 여러 개의 목표를 촘촘하게 제시하는 것이 바로 ‘퀘스트’ 시스템이다.


퀘스트의 구조


퀘스트를 구성하는 요소로 트리거, 목표, 상태, 보상, 헬퍼를 들 수 있겠다. 먼저, 트리거는 퀘스트가 발생하기 위한 조건이다. 처음부터 모든 퀘스트가 플레이어에게 공개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조건을 만족해야 비로소 퀘스트가 공개되고, 플레이어는 그 퀘스트를 진행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퀘스트는 캐릭터의 레벨이 10에 도달해야 공개된다. 어떤 퀘스트는 특정 지역에 진입하면 공개되고, 어떤 퀘스트는 다른 특정 퀘스트를 완료해야 공개되기도 한다.


목표는 플레이어가 수행해야 하는 임무의 내용이다. 농작물을 일정 개수 수확하는 것일 수도 있고, 몬스터를 일정 수 해치워야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러한 임무는 플레이어가 쉽게 이해할 수 있게 구성하고 표현해야 한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퀘스트가 최악의 퀘스트일 것이다.


상태는 현재 퀘스트가 어떤 상태에 있는가를 나타내는 것이다. 아직 시작하지 않은 상태일 수도 있고, 진행 중인 상태일 수도 있다. 물론, 완료했다는 상태도 있다. 다른 분류의 상태도 있는데, 예를 들어, 해결하기 어려운 상태, 해결하기 쉬운 상태를 나타낼 수도 있다. 보조적으로는 진행의 정도를 보여주기도 한다. 농작물을 20개 수확해야 하는데, 현재 12개 수확했다고 알려주는 것이다. 이렇게 진행 정도를 알려주는 것은 플레이어의 편의성을 높여줄 뿐만 아니라, 퀘스트를 해결하겠다는 욕구를 자극하기도 한다.


플레이어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는 보상일 것이다. 대부분의 퀘스트는 보상을 얻기 위해 플레이된다. 보상은 캐릭터의 경험치나 재화일 수 있고, 장비나 특수 효과 등도 가능하다. 단순한 ‘칭호’를 보상으로 주기도 한다. 보상이 의미 있을수록 성취감도 커지는데, 그렇다고 보상을 너무 후하게 주면 게임의 밸런스가 무너질 수 있다. 그래서, 작은 것을 주더라도 마치 큰 성취를 달성한 것처럼 과장된 효과를 많이 첨가한다.


헬퍼는 필수 요소는 아니지만, 많은 게임에서 사용하고 있는 요소다. 퀘스트에서 명확하게 목표를 이야기해도 플레이어는 잘 모를 수 있다. 예를 들어, ‘오우거를 5마리 잡아라’라는 목표를 줬는데, 오우거가 무엇이고 어디 있는지 모를 수 있다. 그래서, 퀘스트를 표현하는 곳에 헬퍼 기능을 넣어서, 오우거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볼 수 있게 한다. 또, 게임에 따라서는 퀘스트를 해결하기 위해 넓은 지역을 왔다 갔다 해야 할 수 있다. 이때 길을 찾는 것이 번거로운데, 화면에 퀘스트 장소를 가리키는 화살표 같은 것을 넣어서, 플레이어가 퀘스트를 진행하는 장소를 빠르게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퀘스트 시스템의 각 요소들을 구성함에 있어 중요한 것은 바로 ‘구체화’이다. 일상 속의 성취 과정은 때로 모호하고 불분명할 수 있다. 게임은 그런 모호함을 제거하고, ‘성취에 다가가고 있다는 사실’, ‘성취를 이루었다는 사실’을 플레이어가 분명히 알 수 있도록 한다. 이런 구체화가 있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성취를 위한 과정을 더 쉽게 인내하게 된다.


퀘스트 시스템의 발전


초창기에는 롤플레잉이나 어드벤처 장르에만 퀘스트 개념이 있었던 것 같다. 퍼즐 같은 장르에서는 퀘스트 시스템이 별로 없었다. 그나마 있는 롤플레잉 게임에서도, 퀘스트는 해결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과제였다. 예를 들어, 어떤 왕이 ‘레드 드래건을 해치워라’라는 퀘스트를 주는데, 레드 드래건이 어디에 사는지는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러니까, 플레이어가 스스로 소문을 수집하거나 미지의 땅을 탐험하여 레드 드래건의 위치를 알아내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때로는 수수께끼를 풀어야 진행이 가능한 경우도 있었는데, 이를 테면 ‘많으면 많을수록 보이지 않는 것은?’이라는 수수께끼를 내고, 그 답을 풀어야 다음 단계로 진행이 가능한 것이다.(답은 ‘어둠’이다)


이해하기는 쉽지만 수행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 퀘스트들도 있었다. 예전의 롤플레잉 게임들은 ‘리얼리티’를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그래서 지역 간의 이동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퀘스트를 수행하려면 특정한 도시로 이동해야 했는데, 그러기 위해서 30분 넘게 달려가야 하는 상황들도 많이 있었다. 심지어 이동하는 동안 몬스터를 만나면 전투를 해야 했기 때문에, 이동 자체가 점점 고역이 되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점차 플레이어를 편리하게 하는 장치들이 도입되었다. 일단 퀘스트를 이해하기 쉽게 구성하고, 각종 헬퍼를 도입하여 무엇을 해야 하는지 쉽게 알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이동의 고단함을 덜어주기 위해 빠른 운송수단을 도입하거나, 아예 텔레포트 같은 시스템을 개발하기도 했다.


‘지도’ 시스템도 점차 개량되어서, 초창기에는 지도가 아예 없는 게임도 많았지만, 지금은 퀘스트 해결에 필요한 정보를 모두 담고 있는 지도 시스템이 많다. 덕분에 길을 헤매는 경우도 요즘에는 거의 없을 것 같다.


퀘스트의 종류


퀘스트 시스템이 발전하다 보니, 그 종류도 많아졌다.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는 메인 퀘스트, 사이드 퀘스트, 일일 퀘스트, 업적 정도가 있고, 복합 퀘스트도 종종 발견된다.


‘메인 퀘스트’는 게임의 중심 시나리오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퀘스트이다. 예를 들어, 레드 드래건을 물리치는 것이 게임의 최종 목적이라면, ‘레드 드래건에 관한 정보 수집’, ‘레드 드래건을 물리칠 무기 획득’ 같은 것들이 메인 퀘스트로 구성될 수 있다. 대체로 이런 메인 퀘스트는 게임의 엔딩을 보기 위해 필수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퀘스트로 정의된다. 만약, 게임의 엔딩을 빠르게 보고자 한다면, 메인 퀘스트만 따라가면서 해결해도 된다.


‘사이드 퀘스트’는 반드시 해결할 필요는 없는 퀘스트들이며, 게임의 중심 시나리오와의 연결성도 약한 편이다. 어떤 마을을 괴롭히는 영주를 혼내주거나, 서로 오해하고 있는 연인의 오해를 풀어주거나 하는 등의 퀘스트가 있을 수 있다. 꼭 할 필요는 없지만, 어떤 면에서는 이런 사이드 퀘스트의 존재가 리얼리티를 더 살려주기도 한다. 영웅이 존재한다면, 영웅의 도움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 당연할 테니 말이다.


‘일일 퀘스트’는 매일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퀘스트이다. 롤플레잉 게임에도 일일 퀘스트가 존재할 수 있지만, 퍼즐 같은 캐주얼한 장르에서 더 적극적으로 사용되는 것 같다. 일일 퀘스트에 의미 있는 보상을 연계하면, 플레이어가 매일 일정 분량의 플레이를 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퍼즐 5개 해결하기’, ‘특수 아이템 2개 사용하기’ 같은 퀘스트를 매일 제공한다.


‘업적’은 퀘스트로 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아무튼 목표와 보상이 연계되어 있어서 퀘스트와 비슷하게 취급된다. 다만, ‘누적 통계량’이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 미션과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몬스터 5만 마리 처치’, ‘서버 최초로 엑스칼리버 획득’ 같은 것들이다.


마지막으로 ‘복합 퀘스트’는 퀘스트 안에 퀘스트가 존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라의 수수께끼를 풀어라’라는 퀘스트가 있으면, 그 안에 ‘고대 왕의 피라미드를 찾아라’, ‘피라미드의 수호신을 처치하라’, ‘왕의 관이 있는 곳에서 수수께끼의 정답을 외쳐라’ 같은 하위 퀘스트가 존재한다. 그리고, 하위 퀘스트를 모두 해결하면 ‘미라의 수수께끼를 풀어라’라는 상위 퀘스트가 해결되는 식이다. 보통 하위 퀘스트에도 보상이 걸려 있고, 상위 퀘스트에는 더 큰 보상이 걸려 있다.


퀘스트 시스템에 한 획을 그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퀘스트 시스템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게임이 있다. 바로 블리자드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다. 이 게임은 여러 가지 면에서 명작으로 평가받지만, 퀘스트 시스템에 있어서도 훌륭한 면모를 보여주었다.


일단 그 양에 있어 다른 게임을 압도하였다. 그전까지 다른 게임에도 퀘스트 시스템이 있었지만, 퀘스트만 해결하고 있으면 최고 레벨에 도달할 수 없었다. 퀘스트를 해결하는 것이 재밌기는 했지만, 어느 순간이 되면 모든 퀘스트를 다 해결하게 되고, 그 상태에서 레벨을 더 올리려면 들판에 나가서 보이는 몬스터들을 닥치는 대로 처치해야 했다. 이런 시간이 꽤 길었기 때문에, 롤플레잉이라는 장르에는 필연적으로 지루한 구간이 존재했던 것 같다. 그런데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달랐다. 이 게임에는 아주 많은 퀘스트가 존재했고, 퀘스트를 하나하나 해결하다 보면 최고 레벨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래서 레벨을 올리는 과정이 훨씬 재밌었다.


퀘스트의 양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질적인 측면에서도 훌륭했다. 스토리텔링에 매우 신경을 써서, 퀘스트를 따라가다 보면 한 편의 멋진 드라마를 보는 기분이었다. 번역도 매우 충실했다. 그 당시에 한글화 된 게임들의 번역 수준은 높은 편이 아니었는데,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한글 소설 수준의 번역 품질을 보여주었다. 위트와 재치도 한국에 맞게 재구성하여 한국 유저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퀘스트를 해결하는 방식에서도 창의적인 발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퀘스트가 아무리 많아도 대체로 하는 일은 비슷했는데,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최대한 다양한 ‘활동’을 만들어 내고자 했고, 그것이 다양한 시나리오와 맞물리면서 퀘스트를 지루하지 않은 콘텐츠로 만들었다.


‘업적’과 ‘칭호’ 시스템도 성공적으로 도입되었다. 이것은 처음부터 있던 것이 아니고, 게임에 고인 물 유저가 많아졌을 때 도입되었는데, 할 만한 것을 모두 했던 플레이어들에게 좋은 목표를 제공해 주었다. 특히, 얻기 힘든 ‘칭호’를 얻었을 때 큰 성취감을 주었는데,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큰 성취감을 느꼈던 칭호는 ‘현자’였다. 참고로 이 칭호는 당시에 모든 퀘스트를 해결하면 얻을 수 있는 칭호였고, 그 당시 해결해야 하는 퀘스트의 개수는 3000개가 넘었다.


퀘스트 시스템을 설계할 때 중요한 것들


퀘스트 시스템을 설계할 때 가장 먼저 신경 쓰는 것은 아마도 스토리텔링이 아닐까 싶다. 예를 들어, 당근을 5개 수확하는 퀘스트에서 그냥 ‘당근을 5개 수확하라’라는 미션만 주고 있다면, 너무 기계적인 느낌이 들어 재미가 떨어진다. 그보다는, 어떤 요리에 대한 이야기라던가, 당근을 좋아하는 캐릭터에 관한 이야기를 엮어 줄 때 더 재미있는 콘텐츠가 된다.


퀘스트는 할 일과 보상을 연계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할 일과 보상 사이의 밸런스도 중요하다. 일에 비해 너무 적은 보상을 주면 퀘스트를 수행하고자 하는 의지가 약해질 것이다. 반면, 너무 과한 보상을 주면 게임에 필요한 자원을 너무 쉽게 얻어서 게임 전체의 재미가 떨어질 수 있다.


퀘스트를 어떻게 보여주는 가도 중요한 요소다. 플레이어가 목표를 달성하고 싶게 만들어야 퀘스트 시스템이 의미를 갖는데, 그런 마음을 일으키는 데 시각적인 면이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특히, 퀘스트의 진행률이 분명히 증가하고 있으며, 조만간 어떤 퀘스트를 완료할 수 있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잘 표현할 수 있으면 좋다.


마지막으로, 같은 행동이 너무 많이 반복되지 않게 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고블린 20마리 잡기’ 다음에 또 ‘고블린 50마리 잡기’가 나오는 것은 썩 좋은 디자인이 아니다. 몬스터를 처치하는 퀘스트 다음에는 어떤 아이템의 획득이나 어떤 장소로의 이동 같은 다른 활동을 요구하는 것이 더 좋다. 혹은 적어도 잡는 몬스터를 다른 것으로 바꿔주기라도 해야 한다.


텐 미닛


가수 이효리의 히트곡 중에 ‘텐 미닛(Ten Minutes)’이라는 노래가 있다. 10분이면 상대방의 마음을 훔칠 수 있다는 노래다. 그런데, 게임은 정말로 10분 안에 플레이어의 마음을 훔쳐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플레이어는 게임을 종료하고 다른 게임으로 이동한다.


그래서 많은 게임들이 초반 10분 동안의 경험에 공을 많이 들인다. 플레이어가 10분 만에 게임을 이해하도록 돕고, 최대한 많은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 퀘스트는 이런 10분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도구다. 물론, 플레이어가 게임을 즐기는 내내 중요하게 작용하는 요소이지만, 게임 초반에는 특히 그 중요성이 더 높다. 따라서, 몇 번을 다시 검토하고 테스트하더라도 완성도 높은 퀘스트 시스템을 만들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1. 퀘스트의 구조

트리거 - 퀘스트가 발생하기 위한 조건

목표 - 플레이어가 수행해야 하는 임무

상태 - 어느 정도 진행되었는지, 얼마나 해결하기 어려운지 등을 나타낸다.

보상 - 목표를 달성하면 얻는 것

헬퍼 - 퀘스트 해결을 돕기 위한 장치들

2. 퀘스트 시스템의 발전

초창기에는 시나리오를 보고 추리하여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먼 거리를 이동할 때는 이동에만 많은 시간을 소요하기도 했다.

이해와 이동을 돕는 장치들이 발달하여 최근에는 편하게 퀘스트를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3. 퀘스트의 종류

메인 퀘스트 - 게임의 최종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퀘스트

사이드 퀘스트 - 꼭 하지 않아도 최종 목적의 달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퀘스트

일일 퀘스트 - 매일 같은 행동을 반복하게 하는 퀘스트

업적 - 통계와 연결되거나 해결하기 어려운 미션과 연계된 특별한 퀘스트

복합 퀘스트 - 큰 퀘스트 안에 작은 퀘스트가 여러 개 존재하는 퀘스트

4. 퀘스트 시스템에 한 획을 그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퀘스트만 수행해도 최고 레벨이 될 정도로 압도적인 양을 자랑했다.

스토리텔링과 창의적인 활동에 큰 노력을 기울였다.

'업적'과 '칭호'가 성공적으로 도입되어 오래된 팬들에게 사랑받았다.

5. 퀘스트 시스템을 설계할 때 중요한 것들

게임 전체의 스토리텔링과 잘 어울려야 한다.

목표와 보상 간의 밸런스가 중요하다.

진행 상태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도 중요한 요소다.

같은 행동이 너무 많이 반복되지 않도록 주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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