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에는 PVE, PVP라는 용어가 있다. PVE는 Player vs. Environment의 약자로, 게임 프로그램을 상대로 목적을 달성하는 콘텐츠를 말한다. 퍼즐을 푸는 콘텐츠, 몬스터를 사냥하는 콘텐츠가 PVE 콘텐츠이며, 프로그램이 조종하는 자동차와 경쟁하는 레이싱도 PVE 콘텐츠가 된다.
반면 PVP는 Player vs. Player의 약자로, 다른 플레이어를 상대로 목적을 달성하는 콘텐츠를 말한다. 총으로 상대방을 노리는 콘텐츠, 다른 사람과 두는 장기나 바둑 같은 콘텐츠가 PVP 콘텐츠이며, 사람이 조종하는 자동차와 경쟁하는 레이싱은 PVP 콘텐츠가 된다.
상대가 프로그램인가 사람인가 만으로 PVE와 PVP를 구분하지만, 그로 인해 발생하는 특성은 서로 많이 다르다. 이번 글에서는 현대 온라인 게임의 핵심 요소인 PVP에 대해 몇 가지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컴퓨터가 등장하기 이전부터 있었던 게임은 PVP가 많았다. 바둑, 장기, 체스, 포커 등의 게임들이 모두 사람끼리 경쟁하는 PVP게임이다. 하지만, 컴퓨터가 등장하고 컴퓨터로 플레이하는 게임이 등장하면서 PVE 게임이 많아졌다. 게임을 진행시키는 프로그램의 존재는 혼자서도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만들어주었고, 이것은 게임에 있어 혁신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PVE 게임에는 한계가 있었다. 프로그램의 지능이 사람에 비하면 한참 부족했던 것이다. 혼자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것은 큰 장점이었지만, 게임이 펼쳐지는 양상은 다양하지 않았다. 프로그램의 약점을 이해하면 쉽게 이길 수 있었고, 바둑 같은 게임에서는 프로그램의 실력이 너무 부족했다.
그러던 와중에 네트워크 기술의 발전이 이루어졌다. 이는 서로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함께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특히, 인터넷의 등장은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도 게임을 함께 플레이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러자 PVP 게임이 큰 인기를 얻게 되었다.
사람의 플레이는 사람에 따라 매우 다르다. 동일한 규칙의 게임이지만, 상대하는 사람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양상의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게 된다. 이는 PVP 게임이 갖는 매우 큰 장점이다. 어떤 게임이든 반복해서 플레이하다 보면 점차 질리게 되는데, PVP 게임은 오래 즐겨도 잘 질리지 않게 된다. 게다가, 프로그램은 대체로 어처구니없는 약점을 지니게 되는데 반해, 사람은 그런 약점이 없는 편이어서 온전히 실력으로 상대해야 한다는 것도 좋은 점이다.
플레이어의 입장에서 이야기했지만, 게임 제작자의 입장에서도 PVP가 가지는 장점이 있다. PVE는 너무 쉬워도 안 되고, 너무 어려워도 안 된다. 밸런스를 무척 잘 잡아야 하는데, PVP는 그런 밸런스에서 좀 더 자유로운 편이다. 사람끼리 동등한 입장에서 경쟁하도록 만들어주기만 하면 밸런스가 잘 맞는다. 게다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사람들끼리 플레이하면서 다양한 게임 양상이 스스로 개발되기 때문에, 다양한 콘텐츠를 준비해야 하는 부담도 상당히 덜어진다.
결국, 플레이어와 제작자 모두에게 큰 이점이 있기 때문에 PVP는 지금까지도 큰 사랑을 받는 게임 요소이다. 하지만, PVP에는 그 나름대로 주의해야 하는 사항들이 있다.
사람과 프로그램이 대결할 때는 공정성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사람과 프로그램이 자동차 경주를 할 때 프로그램의 차가 더 좋은 엔진을 가지고 있어도 상관없다. 그 핸디캡을 극복하는 것 자체가 게임성의 일부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이 대결할 때 이런 핸디캡은 문제가 될 수 있다. 상대방이 나와 같은 플레이어라면, 사람들은 동등한 입장에서 경쟁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불공정이 발견되면 화를 낸다.
물론, 완전한 공정성은 확보하기 어렵다. 어느 정도의 불공정함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플레이어들도 완벽함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플레이어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의 공정함을 가지고 있으면 된다. 바둑에서는 먼저 두는 ‘흑’이 유리하기 때문에 ‘백’에게 몇 점의 어드밴티지를 주는데, 그 어드밴티지가 완벽한 공정성을 가져오지는 못하지만, 흑과 백 모두가 납득할 만한 정도의 균형은 맞춰주는 것이다.
공정성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변별력’이다. 말하자면,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이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동전 던지기나 주사위 굴리기처럼 운에 의해 좌우되는 게임은 인기를 끌기 어렵다. PVP라면 실력에 의존하는 요소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더불어, 노력에 의해 그 실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여지도 있어야 한다.
PVP에서는 두 가지 성취감을 극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는 이겼을 때의 성취감이고, 다른 하나는 더 잘하게 되었을 때의 성취감이다. 이 두 가지 요소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실력으로 상대방을 이기는 것과 그 실력을 향상할 수 있는 것이 가능해야 한다.
물론, 운으로만 진행하는 PVP 게임도 있을 수 있다. 주사위를 굴려 목적지에 도달하는 인생 게임 같은 것들이 대표적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게임에도 플레이어가 선택할 수 있는 전략적인 요소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재미에 큰 차이가 있다.
실력이 구분되는 콘텐츠라면 당연히 고수와 하수가 나뉘게 된다. 그러면, 고수를 위한 배려와 하수를 위한 배려도 필요하게 된다. 일단, 고수와 하수가 서로를 상대하면 둘 다 재미를 느낄 수 없다. 고수에게는 게임이 너무 쉽고, 하수에게는 게임이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슷한 실력의 플레이어를 만나게 하는 ‘매칭’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PVP가 꼭 일대일로 대결하는 콘텐츠인 것은 아니다. 한 공간에서 수십 명의 플레이어가 함께 경쟁할 수도 있다. 이런 공간에서 실력이 부족한 하수는 게임의 재미를 충분히 느끼지 못할 수 있다. 고수들은 게임의 재미를 스스로 잘 만들어 내는 반면, 하수들은 적응하지 못하고 떠나기 쉽다. 따라서, 많은 고객을 유치하고 싶은 게임이라면 하수에 대한 고려에 특히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게임에 적응할 수 있는 하수 전용의 공간을 만들어 준다던가,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코칭 시스템을 넣는다던가, 아니면 승리하지 못하더라도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게임을 구성하는 등의 고민이 필요하다.
PVP는 재미가 있지만, 그만큼 스트레스도 많이 주는 콘텐츠다. 플레이어들이 공정성에 더 신경 쓴다는 것은 패배가 주는 부정적인 감정이 더 크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기는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지는 사람도 있는 것이 PVP다. 승리의 기쁨이 클수록 패배의 아픔도 크고, 그래서 연달아지는 경험을 하면 많은 사람들이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비매너도 PVP의 큰 문제 중 하나다. 사람과 사람이 부딪히는 콘텐츠이다 보니 매너 없는 행동을 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안 좋은 말로 상대방의 감정을 자극한다던가, 비정상적인 플레이로 게임을 어지럽힌다던가 하는 일이 발생한다. 바둑의 경우에는, 질 것 같으면 그냥 대국장을 나가버리는 플레이어들도 있다. 그러면 대국장에 남아 있는 플레이어는 상대방이 기권처리될 때까지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단순한 네트워크 접속 오류일 수도 있으므로 바로 승패를 결정하지 않고, 상대방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게 한다)
부적절한 시도도 많은 편이다. PVE에도 그런 시도가 있지만, PVP에는 훨씬 많다. 총을 들고 서로를 저격하는 게임에서 자동으로 조준을 맞춰주는 프로그램을 쓴다던가, 게임의 정보를 해킹해서 상대방에 관한 정보를 부당하게 획득한다던가 하는 일이 있다. 부당한 방법으로 아이템을 복사해서 게임의 밸런스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 이런 부적절한 시도는 정상적으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플레이어들에게 큰 피해를 야기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이런 것들 때문에 대규모의 플레이어 이탈이 발생하기도 한다.
기획자의 입장에서는 PVE의 기획보다 PVP의 기획이 쉬워 보일 수 있다. 혼자서 플레이하면서도 재밌게 만드는 것보다, 다른 사람과 플레이하면서 재밌게 만드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더 쉽다. 사람들이 모여서 즐기는 보드게임들이 대체로 단순한 규칙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경쟁이 치열한 것이 PVP 기획의 세계이기도 하다. 경쟁이 치열하다는 것은 무언가 특별한 요소를 더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레이싱 게임을 생각해 보자. 플레이어들이 트랙을 돌며 경쟁하게 만드는 것은 쉽다. 하지만, 그런 류의 레이싱 게임은 이미 차고 넘칠 정도로 많다. 따라서, PVP 레이싱 게임으로 흥행에 성공하려면 무언가 특별한 요소가 더해져야 한다. 그리고, 특별한 요소를 더하기 위해서는 대체로 PVE 요소의 결합이 필요하다. 따라서, PVP에만 집중하지 말고 PVE 기획에 대한 학습과 고민도 병행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 정말 재밌는 PVP 콘텐츠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1. PVP의 부상
PVE 콘텐츠는 혼자서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프로그램의 지능 수준이 낮다는 큰 단점이 있다.
네트워크 기술의 발달로 전 세계에 있는 플레이어들이 함께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게 됐다.
사람에 따라 플레이하는 방식과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PVP 콘텐츠는 같은 규칙에서도 다양한 양상이 발생한다.
사람끼리 서로 상대하게 하면 게임을 제작하는 입장에서도 기획의 복잡성이 낮아진다.
2. PvP를 설계할 때 고려할 점
프로그램을 상대할 때보다 다른 사람을 상대로 할 때, 사람들은 공정성에 더 예민해진다.
실력이 결과에 영향을 미쳐야 하고, 노력을 통해 그 실력을 향상할 수 있어야 한다.
비슷한 실력의 플레이어들이 만나게 하는 '매칭'에 신경 써야 한다.
실력이 낮은 '하수'들에 대해 특별한 배려가 필요하다.
3. PVP의 부작용
프로그램에게 지는 것보다 사람에게 지는 것은 더 큰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부적절한 말과 행동을 보이는 비매너 플레이어들이 많다.
프로그램의 약점을 이용한 반칙 시도가 많은 편이다. 이런 시도를 막지 않으면 플레이어들이 대규모로 게임을 이탈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