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GDC(Game Developers Conference)를 참관했다. 해외에서 열리는 콘퍼런스에는 처음 참여하는 것이었다. 그때 여러 가지 새로운 경험을 했지만, 그 와중에 유독 눈에 띄는 단어가 있었다. 한국에서는 생소했던, ‘경험(experience)’이라는 단어였다. 한국에서는 게임을 이야기할 때 ‘재미’라는 단어를 많이 썼는데, 서양에서는 ‘경험’을 주요 키워드로 사용하고 있었다.
게임은 사람들에게 어떤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도구다. ‘재미’는 그 경험이 가지고 있는 한 가지 특징이다. 그리고, 경험을 만들기 위해서는 일종의 ‘설정’이 필요하다. 플레이어가 몰입할 수 있는 환경, 플레이어가 궁금해할 이야기, 감정 이입이 가능한 등장인물 같은 것이 필요하다. 이런 것들을 모두 합쳐서 우리는 ‘스토리텔링’이라고 이야기한다.
스토리텔링은 롤플레잉이나 어드벤처 게임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 장르 자체가 이야기를 중심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콘솔의 대작들도 스토리텔링에 공을 많이 들이는데, 그래픽과 사운드의 품질이 좋아서 스토리텔링의 효과를 극대화하는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회사 중에서는 예전의 블리자드가 스토리텔링의 명가라고 할 만하다. <스타크래프트 2> 같은 실시간 전략게임에서도 영화 같은 스토리텔링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복잡하고 규모가 큰 게임만 스토리텔링을 하는 것은 아니다. 비교적 단순한 게임도 스토리텔링을 한다. 캔디크러시사가 같은 퍼즐게임이나 스트리트파이터 같은 격투 게임에도 스토리텔링이 포함되어 있다.
스토리텔링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뭘까?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스토리텔링이 있으면 게임이 더 재미있어지고 몰입도 더 잘 되기 때문이다. 레이싱 게임을 예로 들어 보자. 레이싱 게임은 레이싱이 재밌으면 된다. 그런데, 대부분의 레이싱 게임은 스토리텔링에도 많은 공을 들인다. 플레이어를 둘러싼 상황이 무엇인지, 어떤 목표를 이루어야 하는지,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설명한다. 그러면 이야기가 없을 때보다 레이싱이 더 재밌어진다. 단순히 'F1 레이싱에서 1등을 하는 것'보다, 'F1 레이싱에서 동생의 원수인 챔피언을 이기고 1등을 하는 것'이 더 재밌고 몰입감 있는 게임이 되는 것이다.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 <더 위쳐>처럼 스토리로 유명한 해외 게임들이 있다. 그 스토리만으로도 전 세계의 플레이어를 열광시킨 게임들이다. 그런데, 한국 게임 중에도 스토리로 전설이 된 게임이 있다. 바로 <창세기전 2>다. 게임 시스템은 많이 사용되는 시스템이었고, 그래픽도 평범했다. 그런데, 그 스토리가 영화를 만들어도 될 만큼 좋았다. 게임의 마지막 장면을 보고 나서도 한 동안 여운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정도였다. 덕분에 당시로서는 꽤 많은 판매량을 기록하기도 했고, <창세기전> 시리즈를 개발한 ‘소프트맥스’는 당시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게임 회사가 되었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참 좋아한다. 그래서, 많은 산업에서 스토리텔링을 활용한다. 예전에는 제품 자체가 이야기와 관련 있는 영역에서만 스토리텔링을 활용했다면, 지금은 이야기와 별로 상관없을 것 같은 제품과 서비스에도 스토리텔링이 도입된다. ‘바나나우유’와 관련된 스토리텔링이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우유’ 자체는 스토리텔링과 크게 연관이 없지만, 그동안 ‘바나나우유’에는 다양한 스토리텔링이 도입되었고(‘빙그레우스’, ‘바나나는 원래 하얗다’), 그것이 제품의 정체성이 되기도 했다.
나는 작가지만 제품 스토리텔링의 전문가는 아니다. 그래서 스토리텔링에 관해 전문적인 이야기를 쓸 수는 없었다. 하지만, 좋은 이야기에 늘 관심이 있고, 그것이 왜 사람들에게 반응을 일으키는지 많이 생각한다. 게임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스토리텔링에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게임의 스토리텔링에도 전문가가 따로 있지만, 게임을 만드는 모두가 스토리에 관심과 생각을 가지고 있을 때 더 좋은 스토리텔링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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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은 스토리텔링을 통해 경험을 제공한다.
크고 작은 게임들 모두 스토리텔링을 활용한다.
스토리텔링은 재미를 확장하고 몰입을 강화한다.
<스타크래프트 2>, <위처 3> 같은 해외 게임과 <창세기전 2> 같은 국내 게임이 스토리텔링으로 유명하다.
요즘에는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스토리텔링을 사용한다.
게임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스토리텔링에 관심을 갖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