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대로 보는 삼국지 인물
@ 본문의 인물평은 가벼운 생각으로 적은 것이니, 진지하게 읽지 않기를 권합니다.
우리는 살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알게 된다. 그 사람들은 대체로, 겉으로 풍기는 인상과 실제 행동이 비슷하다. 그런데 종종, 인상과 실제가 다른 사람들이 있다. 스스로 어떤 인상을 가장(假裝)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관찰하는 사람의 선입견이나 제삼자의 왜곡된 해석에 의해 그렇게 되기도 한다. 삼국지에도 그런 인물이 한 명 있으니, 바로 삼국지의 주인공 유비이다.
유비에 대한 전통적인 이미지는 너그럽고 인덕이 넘친다는 것이었다. 최근에는 음흉한 면이 소개되는 콘텐츠들도 있는 것 같지만, 어쨌든 삼국지 내에서는 ‘덕의 화신’처럼 묘사되고 있다. 또 한 가지 유비에 대한 강한 이미지는, 그가 우유부단하다는 것이었다. 서주의 여포, 형주의 유표, 익주의 유장 등과의 관계 속에서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형주를 쉽게 얻을 수 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유비를 중심으로 삼국지를 읽는 사람들에게 가장 답답한 장면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데 유비는 정말 우유부단한 사람일까? 결단력이 없는 리더일까?
앞에서 말한 것처럼 유비가 결단을 내리지 못해 어려움에 처했던 장면들이 있다. 하지만, 삼국지에서 유비가 보여준 행동들 중에는 그 반대의 경우로 보이는 행동들도 꽤 많이 있다. 몇 가지 살펴보자.
첫째, 유비는 수백 명의 의용군을 모아 황건적 토벌에 나섰다. 이것이 우유부단한 인물이 할 수 있는 일일까? 황건적을 토벌하기 위해 자신의 장사 밑천을 털어 수백 명의 의용군을 모으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일제 강점기에 가산을 털어 독립운동에 사용한 사람이 흔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현대에도 자신의 재산을 사회 정의를 위해 내놓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하물며, 그 의용군을 직접 지휘하여 전투에 나섰으니, 우유부단한 것과는 참으로 거리가 먼 행동이다.
둘째, 유비는 동승, 마등과 함께 조조 암살 계획에 가담했다. 비록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지만, 암살 계획에 가담한 것만으로도 간이 큰 행동이다. 당시의 조조가 어떤 인물인가? 황제를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이다. 그런 권력자를 암살하는 것은 보통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사건이다. 들키면 동승처럼 가족이 모두 몰살당하게 된다. 설혹 일이 잘 풀려 성공한다고 해도, 그 이후가 편안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하진을 암살한 십상시도, 십상시를 처단한 원소도, 동탁을 처치한 왕윤과 여포도 모두 그 뒤가 편하지는 않았다.
셋째, 조조 휘하에 머무르고 있던 유비는 원술 토벌을 핑계로 서주로 도망친다. 원소에게 의탁하여 지내기도 했고, 나중에는 유표가 다스리는 형주로 이동하기도 했다. 삼국지에서는 기반을 닦을 힘이 없어 여기저기 방랑하는 것처럼 묘사되지만, 사실 우유부단한 사람은 자기가 있어야 할 곳을 찾아 부지런히 이동하지 못한다. 조금이라도 가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놓지 못하고, 변화를 두려워하여 안주하는 것이 우유부단한 사람의 특징이다. 아무리 주변 여건 때문이라고 해도, 화를 피해 부지런이 돌아다닌 것은 그때그때의 결단력 덕분일 것이다.
넷째, 유비는 제갈량을 영입하기 위해 삼고초려를 했다. 유비가 아무리 가진 것이 없다고 해도 명성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따르는 무리들도 있었고, 천하 패권을 가지고 있는 조조와 대결했던 적도 있다. 방랑을 하고 있다고 해도 이미 유력한 제후의 반열에 올라있는 유비였다. 그런 유비가 제갈량을 얻기 위해 머리를 숙인 것은 우유부단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조직에 필요한 사람을 얻기 위해 머리를 숙이는 것은, 최고 권력자에게는 가장 힘든 결단 중 하나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유비는 제갈량에게 전권을 위임했다. 제갈량의 능력이 워낙 출중하니,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당연하지 않다. 삼국지 속 리더들 뿐만 아니라, 현대의 어떤 리더도 이 만큼의 권한위임은 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 팀원이 제갈량이라면 나도 위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과연 그럴까? 위임이 어려운 것이 항상 팀원의 능력이 부족해서일까? 오히려 많은 리더들은 유능한 팀원을 경계한다. 중간 리더들뿐만 아니라 황제 같은 최고 권력자도 유능한 부하를 경계한다. 그래서, 일부러 곤란한 상황에 빠뜨리기도 하고, 중요한 의사결정은 절대로 부하에게 넘기지 않는다.(유방이 한신을 경계한 것이나 히틀러가 장군들을 경계한 것을 생각해 보라) 그런 면에서, 제갈량이라는 유능한 책사에게 최대한의 권한을 위임한 것은 리더로서 큰 결단이었다고 생각한다.
유비는 무척 신중한 인물이었지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인물은 아니었다. 그는 여러 번 과감한 결단을 보여주었다. 심지어 그가 유표로부터 형주를 취하지 않은 것도 보통 리더들이라면 선택하기 힘든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그 결정이 항상 좋은 결정은 아니었을 수 있지만, 적어도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인물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애초에 유비가 우유부단한 인물이라면, 수많은 제후가 천하를 놓고 다투는 혼란한 시기에, 상대적으로 기반이 약했던 유비가 마지막 천하삼분의 한 주인공이 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제 지금 시대의 리더들을 생각해 보자. 유명한 기업을 이끄는 리더들 중에는 유비처럼 결단력 있는 사람들이 많다.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갖고 실천에 몰입하는 리더들이다. 짧은 기간에 큰 성장을 이루어 낸 기업들에서 특히 이런 리더들을 발견하게 되는 것 같다. 반면, 작은 성공을 잃을까 봐 더 과감한 도전과 모험에 나서지 못하는 경우들도 있다. 한때 유망해 보였지만,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오랜 기간 정체되어 있는 경우들이다. 이런 경우야말로, 과감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우유부단함에 빠져있는 결과가 아닐까? 삼국지의 원술과 유표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