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콘텐츠 트렌드에 대한 고찰: 결국 중요한 건 우리네의 이야기다
최근 2030세대에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이하 진격거) 붐이 일면서, 인스타그램에서 진격거 'AI 실사화' 밈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 그냥 쉽게 접하는 정도가 아니라, 넘길 때마다 나오는 수준이다. 오타쿠인 내 알고리즘이 애니 특화여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그걸 차치하더라도 조회수나 좋아요 수가 장난이 아니다. AI 실사화만 제작하는 계정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을 정도. 생성형 AI가 아무리 MZ에게 익숙한 툴이 되었다지만 이건 익숙해지는 속도가 빨라도 너무 빠른 것 아닌가? 특히 몇 년 전까지만 해도 AI 영상은 어색하거나 ‘딱 봐도 합성’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실사 수준으로 구현이 가능해져 가끔은 AI와 실사 영상이 분간이 안 간다.
2D로만 존재하던 애니 속 캐릭터들을 현실로 불러왔다. 그것도 아주 리얼하게. 단순한 실사화가 아니다.
이 AI 밈의 인기 비결은 제작자가 고안한 '컨셉'에 있다. 제작자들은 사진이나 영상에 현실 속 스토리를 부여해, 있을 법한 상황들을 구현했다. '진격의거인 쫑파티', '실시간 유출된 에렌 인스타 스토리' 등 사진 한 장 한 장에 컨셉을 담아 덕후들이 더욱 과몰입하게 만들어놨다. 캐릭터를 마치 우리 주변에서 생동감있게 움직이고 있을 것 같은 진짜 사람으로 만들어 놓은 것.
아래 보면 '케이팝 데몬 헌터스' 실사화도 있다. 이외에도, 주술회전이나 귀멸의칼날같은 최신 유행 애니메이션들도 쉽게 관찰된다.
원초적으로, AI 캐릭터는 심미적으로 아름다우며 아름다워야만 하니까, 보는 재미가 있는 건 당연하다. 대체로 현실보다 더 이상적인 비주얼을 가지니까. 나처럼 상상력이 그닥 풍부하지 않은 사람은 제작자들의 상상력을 엿보는 느낌이 들어 흥미롭기도 하다. 상상력이 풍부하지 않거나, 스스로 구현할 수 없는 사람도 간접적으로 창의성을 소비하게 되는 것. ‘존재하지 않는 인물인데 마치 실제 같은’ 모순이 뇌를 자극한다.
요약하자면 이 AI 실사화 밈은 ① 심미적 완벽함, ② 현실과 비현실이 교차하는 독특한 쾌감, ③ 제작자의 상상력에 대한 감탄, 그리고 ④ ‘있을 법한 상황’을 입힌 컨셉 몰입을 통해 사람을 붙잡아 두고 그 매력을 나누고 싶게 만든다.
실사화가 아니라 반대로 '캐릭터화'도 하나의 흐름이 되려 하고 있다. 유튜버 '정서불안 김햄찌'를 아는가. 단기간에 50만 구독자를 달성하며 ‘AI의 순기능’이라는 호평을 얻은 이 채널은, 현실에서 쉽게 드러내지 못하는 감정들을 귀여운 AI 햄스터가 대신 표현해 시청자에게 해방감과 대리만족을 제공한다.
작고 귀여운 햄스터가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상황들에 대해 시니컬한 속마음을 거침없이 쏟아내며 반전매력을 선보인다. 이를테면 상사의 애매한 지시에 속으로 말대꾸를 하거나, 퇴근 후 보상심리로 인해 배달음식을 시켜먹으며 원기 충전을 하거나, 퇴근 직전에 들어온 업무 지시에 속으로 욕을 하는 상황들을 실감나게 구현한 스토리텔링이 일품이다. 특히 햄스터라는 귀여운 매개를 통해 다소 거친 감정 표현을 중화하고, 직장 내 세대 차이 같은 무거운 주제도 유머로 소비할 수 있는 완충지대를 만든 점이 흥미롭다.
'이 사람의 AI는 거부감이 안 든다', '역시 AI도 쓰는 사람에 따라 다르구나', '다른 양산형 AI 유튜버들과는 다르다' 등의 반응을 보면, 확실히 요즘 대중이 양산형 AI에 신물이 나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요 귀여운 햄스터의 일상 영상은 이 흐름의 빈틈을 잘 찌른 것. 지금껏 보지 못했던, AI를 통한 확실한 '브랜딩'이다. 현대인의 스트레스를 대변하는 귀여운 AI 캐릭터. 이제는 AI 캐릭터로도 브랜딩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걸 이 채널이 증명해냈다. 이 브랜딩의 핵심은 결국 또 '컨셉'과 '스토리'다. ‘내 얘기 같다’는 몰입감을 주는 스토리. 그리고 이름과 성격, 직업, 말투까지 페르소나가 구체적으로 설계된 동물 캐릭터. 평면적인 햄스터가 아닌, 살아 숨쉬는 '사람 같은' 햄스터.
AI 실사화 밈부터 AI 캐릭터 콘텐츠까지, 요즘 시청자들이 양산형 AI 콘텐츠에 질려 이와는 다르게 '차별적으로 스토리텔링하는' 콘텐츠에 주목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명확한 컨셉을 바탕으로 몰입을 유도하는 콘텐츠들이 대세. AI를 통해 만든 영상일지언정, '사람 냄새'가 나야 하는 것이다.
결국 AI 콘텐츠에 있어서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얼마나 사람과 밀접하게 맞닿아있는가'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