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더너스의 '오당기'를 보고
후회란 오답노트다.
내 인생 모토 중 하나는 ‘후회하지 말자’다. 지나간 일을 돌아보며 후회에 잠겨봤자 피곤함만 가중되는데 그런 쓰잘데기 없는 짓을 하여 무엇하랴- 같은 생각을 하곤 했다. 웬만해선 한 번 내린 결정에 후회 없는 편이었다. 그때의 내가 하고싶은 걸 한 거고, 과거는 그저 과거에 머물러있을 뿐. 나는 현재를 살아내고 미래를 향해 가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후회를 하는 빈도가 조금씩 늘고 있었다. 상술했듯 내가 원하는 내 모습은 그런 게 아니었다. 그래서 애써 후회하지 않으려 나를 다잡곤 했다.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자. 나는 내가 침잠하는 게 싫어. 그건 내가 아니야. 늘 후회라는 감정을 부정해왔다. 내게 있어 후회란 절대악에 가까웠다.
그런데 유튜브 채널 ‘빠더너스’의 영상 속, 문상훈은 이렇게 말하더라.
“후회란 오답노트다."
후회란 오답노트다. 후회는 반성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즉, 후회는 과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자신만의 매뉴얼을 갖게 한다. 후회가 많은 사람은 그만큼 아이템이 많은 사람이다.
영상 속 문상훈이 담담히 뱉었지만 크게 남은 문장들이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말인데, 당연해서 더욱 의외였다. 나는 이런 식으로 후회를 바라본 적이 없었다. 누군가 낙관주의적 발언이라 한들 어떤가. 지나치게 맹목적으로 받아들이지만 않는다면 분명 좋은 시선이다.
해당 영상은 유튜브 채널 빠더너스의 시즌제 콘텐츠 ‘오지 않는 당신을 기다리며’, 이하 ‘오당기’에 해당한다. 어느날 문득 생각이 나서 별 생각 없이 봤다. 평소 빠더너스 콘텐츠를 즐겨보지는 않는 편이다. 그간 몇 편 보지 않은 입장에서는 좋아하는 사람들의 세계관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당연한 거다. 사실 오당기를 몇 개 보고도 내 취향이라는 생각은 딱히 들지 않았지만, 문장들이 남았다. 기억하고 싶은 문장들이. 사람들이 왜 그토록 문상훈을 좋아하는지 이해가 됐다.
나는 좋은 책을 판단할 때 그 기준이 ‘문장이 하나라도 남았는가’이다. 오당기는 영상이지만 그런 면에서 흡사 책 같았다.
위 댓글이 공감이 많이 됐다. 도파민이 폭발하는 급속네트워크 세상 속에서 친구처럼 기댈 수 있는 영상. 오당기의 매력은 이것에 있다. 또 다른 오당기 영상에서는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난로 같은 사람들이 댓글로 각자 요즘 사는 얘기들을 늘어놓는 게 너무 좋다고. 구독자를 난로같은 사람들이라 표현한 거다. 따뜻한 콘텐츠에 난로같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건 당연한 법이다. 온갖 자극 요소가 넘쳐나는 콘텐츠 시장 속 그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오당기는 도피처이자 힐링의 장이 된다. 그것만으로도 오당기는 차고 넘치게 기능하고 있다.
후회란 과거의 망령에 붙잡히게 만드는 부정적인 감정이라고 생각하던 내가 이제는 어쩌면 후회가 미래를 위한 발판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후회는 반성을 수반하므로 오히려 앞으로의 삶을 더욱 잘 살아나갈 원동력이 된다는 난로같은 발언은 나에게 깊이 남았다. 15분도 채 되지 않는 영상을 통해서.
이전의 나는 후회에 잠겨있는 친구들을 조금 답답해하는 편이었다. 내가 그렇게 되는 것도 싫었고. 물론 본인에 대한 연민에 빠져 과거에 머물러있는 건 여전히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기다려주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도, 나도. 마음껏 후회할 수 있도록. 후회라는 감정을 무작정 덮어두고 회피하기보다는 받아들이는 편이 미래를 위해 좋을 것이다. 후회한 그 이후에 어떻게 할 지가 중요한 거니까. 후회란 오답노트라는 말은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후회가 무작정 좋다는 게 아니다.
마음껏 후회를 하고, 오답노트를 써볼까.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서. 생각해보면 문제를 풀 때도 그렇다. 오답노트를 꼼꼼히 쓰지 않으면 내가 틀렸던 이유를 이해할 수가 없고, 다음에도 그 문제를 맞히지 못하게 된다. 왜 틀렸는지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틀렸다는 사실 자체에만 집중하며 자책하기만 하면 당연 발전은 따라오지 않는다. 오답노트를 꼼꼼히 써야겠다. 그리고 다음 번에는 틀렸던 문제를 맞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