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의 쓸모라는 것
전공 지식 자체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회사에서도 전공 분야를 계속할 게 아니라면, 연구경험 자체만으로 실제적인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제 경우에는 연구라는 경험을 통해서 습득한 능력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런 능력들은 제가 회사에 들어가고 나서도 업무에 실제적으로 도움이 되었습니다.
● 문제 정의: 모든 연구의 시작입니다. 문제 정의는 곧 연구 테마의 선정입니다. 석사학위 과정 학생은 이 문제를 정의하는 데서 많은 애를 먹습니다. 사람들이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무엇을 해결하지 못했는지를 찾아내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에서 “왜 이 연구가 필요한지”를 동료와 선배들, 그리고 지도교수님께 설명해서 동의를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연구 중심의 회사이든 또는 제조 기반의 회사이든, 회사업무는 본질적으로 문제점을 찾아 개선하는 활동입니다. “무엇이 문제인지”를 정확히 정의할 수 있어야 조직에 기여할 수 있겠지요. 잘 훈련된 연구자라면, 회사에서도 조직에 도움이 되도록 문제를 잘 설정하는 능력을 함양하고 있어야 합니다.
● 지식 습득: 문제를 풀기 위해, 관련된 지식을 모으고 조직화하는 능력입니다. 대학원에서는 이 과정을 무수히 반복합니다. 회사에서도 정말 중요한 능력입니다. 회사는 끊임없이 많은 정보와 지식이 생산됩니다. 남들이 다 알고 있는데 나만 모르고 있다면 제대로 된 기여를 할 수 없겠지요. 단지 많이 알고 많이 외우는 것보다는, 서로 다른 지식을 잘 연결하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대학원에서 제대로 연구를 한 학생이라면, “이 자료에 따르면 A는 B의 일부라고 되어 있는데, 저 자료에서는 C가 B를 포함한다고 되어 있네? 이게 사실이라면 A는 C의 일부구나!”라는 식으로, 서로 다른 정보를 가지고 맥락을 연결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 지식 창조: 기존에 나와 있던 문헌과 자료를 취합한 다음에는, 문제를 풀기 위해 가설을 세우고 가설을 검증하기 위한 실험이나 조사를 수행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가설의 논리성이나 개연성 등을 동료와 선배, 지도교수에게 설명하고 그들을 설득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거 이미 했었잖아.”라고 기각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문헌을 더 조사해야 하겠지요.
또는, “실험을 그렇게 하면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해석이 안되잖아.”라고 기각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좀 더 논리적으로 정교하게 실험 계획을 세워야 하겠지요. 이렇게 수많은 기각을 반복하면서 결국은 “그래? 그거 한번 해보면 좋겠네.”라는 결론을 얻어야 가치 있는 실험이 될 것입니다.
이 역시 회사에서 요구되는 중요한 능력입니다. “지금까지 자료들을 종합하면 이러이러한 결론을 내릴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혹시 문제의 원인이 ~~~ 가 아닐까요? 이걸 검증하기 위해 어떤 어떤 실험 (또는 조사)을 수행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는 제안을 무수히 반복하고, 기각당하고, 다시 보완하는 과정을 통해서 정교하게 설계된 실험 또는 조사 등을 진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 결론 도출 : 회사에서 업무를 하다 보면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정말 잘 설계된 실험을 통해 정말 좋은 데이터가 나왔는데, 이걸 가지고 엉뚱한 결론을 내려 버리는 것이지요. 그렇게 되면 조직의 의사결정이 잘못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만약 누군가가 그 결론에 의문을 제기하고 논쟁이 벌어지면, 담당자의 업무능력이나 신뢰도가 하락하게 되겠지요. 인정받는 지식근로자가 되려면, 마지막 결론까지도 논리적으로 문제없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연구 과정을 통해서 이런 능력을 습득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도 수없이 많은 논쟁과 기각을 겪게 됩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논리적으로 단련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찌 되었든 대학원에서 하는 많은 일들은 회사에서도 결국 하는 일입니다. 겉으로 보면 소위 “가방끈”이 길어지는 효과가 있겠지만, 제대로 공부하고 연구를 경험한 석사학위 자라면 이런 능력을 함양하기 위해 훈련받았기 때문에 회사에서도 약간의 적응을 거치면 훨씬 더 높은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학자가 될 생각이 없는 사람이라도 석사학위 정도는 고려해 볼만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