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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박사 Jan 31. 2020

이 책은 왜 이렇게 빨리 1위가 되었는가?

거의 모든 판매처가 주간 순위를 발표하는데 교보문고는 종합순위를 최종으로 발표한다. 교보문고의 종합순위는 4주간의 “온라인+오프라인+ebook” 판매를 합친 순위로써 프렌차이즈가 아닌 지역 서점들은 교보문고의 종합순위를 적용하여 베스트 셀러를 진열하는 경우도 많다. 최근에 출간된 <폭군>은 1주일 판매 성적으로 정치/사회분야에서 바로 1위가 되었다. 정치/사회분야가 판매 규모가 큰 편이 아니라고 생각해도 1주일만에 4주 합산된 책들의 경쟁을 따돌리고 가장 높은 순위가 되었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고 흥미로운 경우이다. 우리는 출간을 2주에 한 권씩 하지만 이런 경우는 매우 드물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을까?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여러가지 조사를 해보니 이전 글에 쓴 것처럼 50대에서 압도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지난 글에서 나는 몇일 지나면 5위 안에도 진입할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예측했지만 5위가 아니라 2위까지 올랐다. 왜 50대가 유독 이렇게 <폭군>에 열광하는 것일까? 사실 나는 50대도 아니고 심지어 50대라도 다수가 선택한 대중성에 대해서 정답을 명확하게 추론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그들이 책을 선택했기 때문에 책에서 답을 찾아보기로 했다.

위의 인용한 책의 한 구절을 보면서 이런 추측을 했다. 이 시대의 <폭군>은 단순히 대통령이나 정치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회사에도 어떤 모임에도 폭군은 존재한다. 특히 연공서열과 장유유서 문화를 뿌리로 인생의 대부분을 보낸 50대는 폭군을 너무 오랫동안 경험했고 몇몇은 자신이 폭군이 되어있다. 직장생활을 잘하려면 줄을 잘 서야 한다는 말이 있다. (내가 제일 혐오하는 말 중에 하나이다.) 그 줄이란 무엇인가? 카르텔의 형성이다. 결국 <폭군>은 자신의 카르텔을 만들어서 단순히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이 만든 유기적 조직의 독재성을 유지하려고 한다. 책에서 나온 것처럼 이런 카르텔에서 나온 불합리는 누군가의 가능성을 죽인다. 누군가의 잠재적 가능 즉 미래는 <폭군>이 건설한 왕국의 잠재적 위협이기 때문에 애초에 싹조차 키울 수 없는 환경을 만든다.

두번째 인용한 구절은 너무 섬찟하다. <폭군>은 누군가의 정신 속으로 침투할 수 있고 그 악몽은 현실까지 될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그냥 지나칠 말이 아니다. 우리의 행복도를 전 연령별로 측정해보면 놀랍게도 50대일 때 그 행복도가 제일 낮다. 행복도가 낮은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누군가에게 억압받는 인생이 계속 누적된 결과가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라고 추측한다. 내 가설을 뒷받침해주는 근거는 60대부터 사람들의 행복도가 다시 올라가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60대는 무엇인가? 조직에서 은퇴한 시기이다. <폭군>의 악몽이 사라지면서 인생 행복의 반전이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나는 모든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추천 이유는 정말 많다. 그 중에서도 위의 인용한 셰익스피어의 천재성을 모두가 느껴 보기를 간절히 원해서이다. <폭군>을 읽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누가 생각났나? 누구 얘기였다.”하고 현 시대의 인물을 말한다. 놀랍게도 셰익스피어는 우리와 동시대 사람도 아니고 우리나라 사람도 아니다. 그렇게 전혀 다른 배경에서 나온 글에서 우리는 이 시대의 <폭군>을 만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셰익스피어의 천재성을 말하는 것이다.

<폭군>은 놀랍도록 깊은 책이다. 그리고 책을 제대로 읽었다면 세상에 대한 이해는 물론 자신에 대한 이해도 올라갈 것이다. 모두가 누군가를 <폭군>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나 역시도 무의식적으로 어떤 영역에서는 <폭군>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정치 참여도가 매우 높은 나라이다. 정치 참여가 높다고 해서 수준도 높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말 내가 모든 서평에서 인용한 구절인 다음 구절은 너무나 비참한 현실세계를 명료하게 묘사하고 있다. 우리는 현재 정치참여보다는 편향에 쌓여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토론의 생각은 없고 내 생각만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착각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편도 똑같은 생각을 하게 되고 합리적 대화는 성립되지 않는다. 정치인들의 대화를 코미디라고 하고 시사 토론 프로그램을 보면서 황당함을 느낄 때가 많았을 것이다. 그 이유는 모두 각자의 입장에서 진실은 너무 명백하기 때문이다. 장님조차 저 빛을 볼 정도로 명백하다고 생각하니 과연 합의를 도출할 수 있을까? 진심으로 한 명이라도 이 책을 더 읽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함께 의식 수준을 성장시키면서 조금씩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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