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드라이트리 Oct 07. 2024

MIT 철도클럽(MIT TMRC)의 역사

현대적 의미의 해커(hacker) 문화가 시작된 곳

MIT 철도클럽의 역사


MIT 철도클럽(MIT Tech Model Railroad Club, TMRC)은 해커 문화의 기원 중 하나로 평가받는 전설적인 학생 단체입니다. 1946년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 MIT)에서 존 피츠알렌 무어(John Fitzallen Moore)와 월터 마빈(Walter Marvin)의 주도로 설립되었으며, 철도 모형의 자동화와 기술적 혁신을 목표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클럽은 당시 철도와 전기 회로에 관심이 깊었던 학생들이 모여 철도 모형을 조립하고 이를 더욱 복잡하고 정교하게 운영하기 위한 제어 시스템을 개발하면서 기술적 창의성을 발휘했던 공간으로, 20세기 중반부터 현재까지도 지속적으로 기술적 도전 정신을 이어오고 있는 MIT의 중요한 학술 및 취미 단체 중 하나입니다.


MIT 철도클럽이 해커 문화의 원천이 된 이유는 이 클럽이 철도 모형의 설계와 운영을 단순한 취미 활동에서 벗어나 정밀한 전자 회로와 제어 시스템으로 구현하고자 했던 정신 때문입니다.


http://tmrc.mit.edu/


철도클럽의 학생들은 철도 모형의 신호 체계, 선로의 배치, 그리고 열차의 속도 제어와 같은 기술적인 요소들을 기존의 규칙이나 매뉴얼에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 변형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시스템을 최적화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여러 시도와 실험은 단순한 흥미를 넘어서,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방법론을 제안하는 해킹(hacking)이라는 행위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이때 해킹(hacking)이라는 용어는 본래 '어설프게 시도하다' 혹은 '대충 만들어내다'는 뜻을 지니고 있었지만, MIT 철도클럽 학생들에게는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TVdCJaG0bY


특히 MIT 철도클럽은 당시 기존 철도 모형 동아리들과는 차별화된 접근 방식을 추구했습니다. 단순히 철도 모형을 운행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모형 기차의 경로를 자동으로 제어하고, 철도 신호와 스위치의 작동을 전자 회로를 통해 전산화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이를 위해 회원들은 릴레이와 스위치, 전선 등을 직접 연결하여 모형 시스템을 완전히 자동화할 수 있는 제어 시스템을 만들었으며, 이러한 기술적 시도들은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인 실험이었습니다. 클럽의 주요 구성원 중 한 명이었던 잭 데니스(Jack Dennis)와 피터 샘슨(Peter Samson)은 철도 모형 시스템의 제어와 운영을 개선하는 과정을 통해 많은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들이 정리한 'TMRC 용어 사전(Dictionary of the TMRC Language)'은 오늘날 해커 문화와 밀접하게 관련된 다양한 용어의 기원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해킹 용어로 널리 알려진 foo, mung, frob과 같은 단어들이 이때 탄생하였습니다.


MIT 철도클럽의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은 1950년대 후반 클럽이 MIT 캠퍼스 내 건물 20의 214호실에 자리를 잡고, 그곳에서 본격적으로 전기 시스템을 확장하면서 일어났습니다. 당시 클럽은 전화 릴레이를 이용한 자동화 시스템을 설계하여 'ARRC(Automatic Railroad Running Computer)'라는 자동 열차 제어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이 시스템은 전화 스위치와 릴레이를 이용해 열차가 자동으로 신호를 변경하고 스위치를 작동할 수 있게 설계된 것으로, 컴퓨터가 도입되기 이전 전자 회로의 혁신적인 활용을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이 시스템의 설계는 클럽 회원들의 창의적 발상과 기술적 능력의 집합체였으며, 전기공학 및 제어 시스템 설계의 선구적인 모델로 평가받았습니다.


이후 MIT 철도클럽의 활동은 단순한 철도 모형 제어에서 벗어나 MIT의 초기 컴퓨터 개발에까지 연결되었습니다. 당시 MIT에는 고가의 IBM 704 메인프레임 컴퓨터가 있었으나, 접근 권한이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철도클럽의 회원들은 대체로 컴퓨터를 직접 사용할 기회가 적었습니다. 그러나 클럽의 전기공학적 배경을 바탕으로 잭 데니스가 MIT 전기공학부 교수로 부임하면서, 그는 철도클럽의 회원들을 컴퓨터 연구로 끌어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클럽 회원들은 MIT의 연구 프로젝트로 도입된 TX-0 컴퓨터에 접근할 수 있었고, 이 컴퓨터를 이용해 철도 모형의 제어와 프로그램 설계를 실험적으로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TX-0는 기존의 철도 모형 시스템보다 훨씬 복잡한 제어와 데이터 처리를 가능하게 했으며, 이를 통해 클럽의 많은 회원들이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하드웨어 설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특히 철도클럽의 '신호 및 전력 소위원회(Signals and Power Subcommittee)'는 이러한 기술적 도전을 가장 많이 시도한 그룹이었습니다. 이들은 철도 모형의 자동화와 컴퓨터를 이용한 제어 시스템 설계에 있어서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이후 MIT의 인공지능(AI) 연구소와 컴퓨터 연구소의 주요 인력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철도 모형의 전기 회로 설계를 넘어서 디지털 컴퓨터와의 접목을 시도한 이들의 활동은 이후 '해커'라는 개념이 단순한 컴퓨터 시스템을 변형하는 것을 넘어, 창의적이고 자주적인 기술적 실험을 의미하게 된 배경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MIT 철도클럽은 단순한 학생 동아리의 경계를 넘어, 기술적 혁신과 창의적 사고의 상징으로 자리잡았으며, 오늘날 해커 문화의 중요한 기원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해커 문화의 확산


MIT 철도클럽에서 시작된 해커라는 용어와 해킹의 개념은 이후 점차 다른 분야로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들어 컴퓨터가 대학 연구실에 도입되면서, 초기 컴퓨터 과학자와 프로그래머들이 이러한 해킹 문화를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컴퓨터는 매우 제한적인 자원을 가진 복잡한 기계였고, 이를 다루기 위해서는 프로그램의 구조를 세세하게 분석하고 이해해야 했습니다. MIT 철도클럽에서 배출된 여러 학생들이 컴퓨터 연구에 뛰어들며, 컴퓨터 프로그램을 변형하거나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는 창의적인 실험을 통해 시스템을 개선하려는 시도들을 진행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철도클럽의 해커 정신은 자연스럽게 초기 컴퓨터 프로그래머들 사이에서 존경받는 가치가 되었고, 기존의 컴퓨터 기능을 창의적으로 변형하고 확장하는 활동이 해킹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해커라는 용어는 1960년대에 MIT 인공지능(AI) 연구소와 컴퓨터 클럽에서 더욱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MIT의 AI 연구소에서는 전자기계와 컴퓨터 하드웨어의 기초적인 개념을 바탕으로 한 실험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고, 연구원들과 학생들이 시스템의 기본 구조를 이해하고 이를 최적화하거나 새로운 방식으로 활용하기 위해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작업들은 기존의 지식을 단순히 배우는 것에서 벗어나, 문제 해결과 혁신을 추구하는 고유한 연구 문화로 자리 잡게 되었으며, MIT 철도클럽의 전통을 이어받아 해커 문화의 근본적인 요소가 되었습니다.


MIT 철도클럽의 정신이 컴퓨터 해커 문화로 이어지면서, 해커라는 단어는 기존의 정의를 넘어, 창의적이고 비정형적인 방법으로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하거나 기존 시스템을 새로운 방향으로 개조하는 사람을 지칭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해커라는 용어는 컴퓨터 시스템뿐만 아니라, 다양한 기술적 도구와 복잡한 기계 구조를 다루는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MIT 철도클럽이 탄생시킨 해커 정신은 이후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들어 실리콘밸리와 같은 기술 혁신의 중심지에서 더 널리 퍼졌습니다. 초기의 컴퓨터 해커들이 컴퓨터 기술의 한계를 극복하고, 기존의 기술을 혁신하고자 했던 정신은 많은 창업자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특히 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와 같은 인물들이 자신의 기술적 역량을 바탕으로 창의적인 도전을 수행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해커 정신을 기반으로 새로운 컴퓨터 시스템과 소프트웨어를 개발하여 기존의 기술 구조를 재정의하였고, 이를 통해 오늘날의 기술 산업의 근간을 세운 것입니다.


정보는 자유로워야 한다(Information wants to be free)


'정보는 자유로워야 한다(Information wants to be free)'는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MIT 철도모형클럽의 창의적인 정신과 해커들의 지식 공유 및 탐구의 철학을 반영한 중요한 문구로, 해커 문화의 중심이 되는 사상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표현의 어원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들이 존재합니다.


에드 파슨스(Ed Parsons)에 따르면, '정보는 자유로워야 한다'는 표현의 기원이 MIT의 철도모형클럽(TMRC)에서 활동한 피터 샘슨이 1959년경 처음 사용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는 마치 신약성경 요한복음 8장 32절에 나오는 구절인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You shall know the truth and the truth shall make you free)를 떠올리게 합니다.


https://aspoerri.comminfo.rutgers.edu/Teaching/MPResources/MPshowcase/Black/IWtbF.html


'정보는 자유로워야 한다'는 이 표현은 다양하게 변주되어 여러 사람들에 의해 반복적으로 사용됩니다. 스튜어트 브랜드(Stewart Brand)가 1984년 해커 컨퍼런스(Hackers Conference)에서 이 문구를 언급했다고도 전해집니다.


이는 정보가 양면성을 가지고 있어, 희소성이 가치가 있으므로 비싸게 거래되거나 또는 정보를 널리 확산하기 위해 비용을 낮춰서 최대한 무료에 가깝게 전해질 것이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또한 동시에 이는 20세기부터 과학적 지식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과 소통을 강조하는 사상을 대변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정보의 확산에 관한 여러 논의는 사이버펑크(Cyberpunk) 운동을 통해 정부와 기업의 감시로부터 벗어나 무정부주의적으로 자유로운 정보의 이용을 옹호하기도 했으며, 오픈 소스 코드(open source code)나 프리넷(free-net)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해커, 크래커(cracker), 프리커(phreaker) 등 다양하게 불리는 용어들은 정보의 자유에 대한 철학과 해커들의 정체성에 대한 부분이 법적, 윤리적 논쟁의 중심에 있음을 알려주는 사례입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Information_wants_to_be_free


따라서 MIT 철도클럽은 단순한 학생 동아리를 넘어, 현대 해커 문화와 기술 혁신의 출발점으로 자리매김한 중요한 역사적 사례입니다. MIT 철도클럽에서 사용된 해킹이라는 개념은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창의적 도전의 상징이 되었으며, 해커 정신은 이후 전 세계의 혁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해커라는 용어는 단순히 컴퓨터 시스템을 변형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사고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는 모든 창의적인 도전자들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MIT 철도클럽의 이러한 유산은 현대 사회에서 해킹 문화가 왜 중요한지, 그리고 해커 정신이 기술 혁신의 중심에 있는 이유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장거리 라이다(LiDAR) 기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