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품의 역사: 인류의 투기 열풍 (6화)
1990년대 후반의 닷컴 버블은 인터넷이라는 혁신적 기술이 어떻게 맹목적인 투기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건이다. "이번에는 다르다"는 말로 대변되는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에 대한 과도한 기대가 결국 거품으로 이어진 대표적 사례다.
1995년 넷스케이프의 IPO는 닷컴 붐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아직 수익을 내지 못하는 이 인터넷 브라우저 회사의 주가는 상장 첫날 무려 108%나 상승했다. 이는 수익성 없는 인터넷 기업들도 엄청난 기업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었다.
투자자들은 인터넷이 비즈니스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꿀 것이라 믿었다. "클릭 수"와 "페이지뷰"가 전통적인 재무지표를 대체했다. ".com"만 붙여도 기업가치가 급등했고, 많은 전통기업들이 닷컴 기업으로 변신을 시도했다.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가 주창한 "Get Big Fast" 전략이 표준이 되었다.
벤처캐피털과 투자은행들은 이러한 광풍에 기름을 부었다. 수익은커녕 구체적인 사업계획도 없는 기업들이 IPO를 통해 수억 달러를 조달했다. 24살의 대학중퇴생이 CEO인 회사가 수십억 달러의 기업가치를 인정받는 일이 흔했다.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환상이 시장을 지배했다.
당시의 맹목적 낙관론은 황당한 기업들도 투자를 받을 수 있게 했다. "Pets.com"은 무료배송으로 펫용품을 판매하는 기업이었는데, 물류비용이 매출을 크게 초과했음에도 IPO에 성공했다. "Boo.com"은 1억 달러 이상을 투자받아 사치품 온라인 쇼핑몰을 만들었지만, 당시 인터넷 환경에서 구현이 불가능한 화려한 그래픽으로 가득한 웹사이트를 만들어 실패했다.
1999년 말에 이르러 광기는 절정에 달했다. NASDAQ 지수는 1995년 1,000포인트에서 2000년 3월 5,048포인트까지 치솟았다. VA 리눅스는 상장 첫날 698% 상승했고, 시가총액이 IBM의 절반에 달했다. 당시 연준의장 앨런 그린스펀은 1996년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을 경고했지만, 시장은 이를 무시했다.
2000년 3월, 버블은 마침내 터졌다. 많은 닷컴 기업들이 자금을 소진했고, 추가 투자 유치에 실패했다. 2000년부터 2002년까지 NASDAQ 지수는 78% 폭락했다. 5조 달러의 시장가치가 증발했다. 수많은 닷컴 기업들이 파산했고, "버닝 레이트(자금 소진율)"는 새로운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닷컴 버블의 붕괴가 남긴 것은 단순한 파괴만이 아니었다. 아마존, 이베이, 야후 등 진정한 가치를 가진 기업들은 살아남았다. 광대역 인터넷망 등 닷컴 시대에 구축된 인프라는 이후 디지털 혁명의 토대가 되었다. 많은 실패한 아이디어들은 10년 후 스마트폰 시대에 부활했다.
닷컴 버블은 현재 AI 열풍에 중요한 교훈을 준다. 첫째, 혁신적 기술도 수익모델이 없으면 지속가능하지 않다. 둘째, 과도한 자금조달은 오히려 기업을 망칠 수 있다. 셋째, 기술의 실현가능성과 시장의 준비도를 냉철하게 평가해야 한다.
특히 현재의 AI 열풍은 닷컴 버블과 놀라운 유사점을 보인다. AI를 붙이기만 하면 기업가치가 급등하고, 구체적인 수익모델 없이도 대규모 투자가 이루어진다. "이번에는 다르다"는 말도 다시 등장했다. 물론 AI는 인터넷만큼이나 혁명적인 기술이 맞지만, 그 상업화 과정에서 닷컴 버블의 교훈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결국 닷컴 버블은 기술혁신과 투기의 경계가 얼마나 모호한지를 보여준다. 혁신적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우리는 이 경계에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 과도한 회의주의는 혁신을 가로막지만, 맹목적 낙관론은 거품을 만든다. 이 미묘한 균형을 찾는 것이 투자자와 기업가 모두에게 주어진 영원한 과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