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품의 역사: 인류의 투기 열풍 (7화)
2008년의 금융위기는 현대 금융시스템의 취약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었다. "너무 커서 망할 수 없는(Too Big to Fail)" 금융기관들이 도미노처럼 무너지는 모습은, 복잡한 금융상품이 어떻게 전체 시스템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이 위기의 시작은 미국의 주택시장이었다. 2000년대 초반 연준의 저금리 정책은 주택 구매 붐을 일으켰다. 주택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자 은행들은 신용이 낮은 차주들에게도 적극적으로 대출을 제공했다. "집값은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는 믿음이 시장을 지배했고, NINJA(No Income, No Job, No Assets) 대출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금융혁신은 이 위험한 대출을 전세계로 퍼뜨렸다. 투자은행들은 모기지 채권을 묶어서 새로운 증권(MBS, Mortgage-Backed Securities)을 만들었다. 이를 다시 쪼개고 재포장하여 부채담보부증권(CDO, 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을 만들었다. 신용평가사들은 이런 복잡한 상품들에 관대한 신용등급을 부여했다.
파생상품 시장도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신용부도스왑(CDS)이라는 새로운 상품이 등장했는데, 이는 채무불이행 위험을 보험처럼 거래할 수 있게 했다. AIG 같은 거대 보험사들은 이 시장에서 막대한 위험을 떠안았다. 전 세계 CDS 시장 규모는 GDP의 수배에 달했다.
2006년부터 주택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변동금리 대출의 금리가 오르면서 연체율이 급증했다. 2007년 중반, 베어스턴스의 헤지펀드 두 개가 파산하면서 위기의 징후가 나타났다. 2008년 3월 베어스턴스가 JP모건에 매각되었고, 9월에는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했다.
리먼의 파산은 금융시스템을 마비시켰다. 은행들은 서로를 믿지 못해 대출을 중단했다. 머니마켓 펀드들이 뱅크런을 겪었고, AIG는 파산 직전까지 갔다. 주가는 폭락했고, 실물경제로 위기가 전염되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시작된 것이다.
미국 정부는 전례 없는 규모로 개입했다. 7,000억 달러 규모의 부실자산구제프로그램(TARP)을 시행했고, 연준은 제로금리 정책과 양적완화를 도입했다. AIG 등 대형 금융기관들이 공적자금으로 구제되었다. "월가를 위한 사회주의"라는 비난이 일었지만, 시스템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위기 이후 금융규제는 대폭 강화되었다. 도드-프랭크법이 제정되어 시스템적 중요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이 강화되었고, 볼커룰로 은행의 자기계정거래가 제한되었다. 바젤 III는 은행의 자본건전성 기준을 높였다. 그러나 이러한 규제들은 시간이 지나며 완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서브프라임 사태는 현대 금융시스템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드러냈다. 첫째, 금융공학이 위험을 분산하는 것이 아니라 증폭시킬 수 있다. 둘째, 단기성과에 치중한 보상체계가 과도한 위험추구를 조장한다. 셋째, 금융기관의 상호연계성이 시스템 리스크를 키운다.
특히 이 위기는 그림자금융(Shadow Banking)의 위험성을 부각시켰다. 규제받지 않는 금융영역이 얼마나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지가 드러난 것이다. 현재 암호화폐와 디파이(DeFi) 시장의 성장은 이러한 우려를 다시 불러일으키고 있다.
2023년 SVB 사태나 크레디트스위스의 몰락은 금융위기의 교훈이 아직도 유효함을 보여준다. 저금리 시대가 끝나고 금리가 급등하면서, 2008년과 유사한 취약성이 다시 드러나고 있다. "이번에는 다르다"는 말이 다시 들리지만, 역사는 금융시스템의 근본적인 취약성이 여전히 존재함을 경고한다.
결국 서브프라임 사태는 우리에게 금융혁신의 양면성을 일깨운다. 혁신은 효율성을 높이고 새로운 기회를 만들지만, 동시에 예기치 못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더 복잡해지는 금융시스템 속에서 이 균형을 찾는 것이 우리 시대의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