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is AI Summit 2025에서 찾아보는 한국의 길
파리 AI 정상회의는 인공지능(AI)이 단순한 기술 발전을 넘어 국가 간 전략적 경쟁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행사였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프랑스와 미국은 각기 다른 접근 방식을 내세우며 AI 산업의 방향성과 규제 방안을 논의했다. 프랑스는 AI 혁신을 촉진하면서도 균형 잡힌 규제를 유지하려는 입장을 보였으며, 미국은 AI 기술의 절대적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강경한 태도를 드러냈다. 이러한 두 국가의 전략 차이는 향후 글로벌 AI 산업의 규제 및 기술 패권 경쟁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며, 한국 역시 이에 대한 대응 전략을 신중히 수립해야 하는 시점에 놓여 있다.
https://onu.delegfrance.org/ai-action-summit-10-and-11-february-2025
프랑스는 이번 정상회의에서 유럽이 단순한 AI 규제자가 아니라 AI 산업의 핵심 주체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AI 혁신을 가속화하기 위한 “노트르담 전략”을 제시하며, 신속한 목표 설정과 추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프랑스는 1,000억 유로(약 140조 원) 이상의 민간 AI 투자를 유치하였으며, 스타트업 육성 및 컴퓨팅 인프라 구축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을 발표했다. 특히,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가 원자력 발전을 통해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할 수 있음을 강조하며, AI 데이터센터 운영을 위한 에너지 인프라의 중요성을 부각했다. 이는 탄소 배출을 줄이면서도 AI 산업을 지속 가능하게 성장시킬 수 있는 전략적 접근법으로 평가된다.
반면, 미국은 AI 산업에서의 절대적 패권을 추구하는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JD 밴스 부통령은 연설에서 미국이 AI 기술의 핵심 요소를 지배할 것이며, AI 반도체부터 소프트웨어까지 미국 중심으로 구축될 것임을 선언했다. 그는 유럽의 디지털 규제가 AI 혁신을 방해한다고 강하게 비판하며, 유럽이 미국과 협력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규제 구조를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AI 기술이 민주적 가치를 반영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권위주의적 경쟁국, 즉 중국과의 기술 경쟁에서 유럽이 미국을 선택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이는 AI 기술을 경제적·안보적 자산으로 보고, 이를 통해 글로벌 기술 질서를 미국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전략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프랑스와 미국의 전략 차이는 유럽과의 관계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났다. 프랑스는 유럽이 AI 기술 경쟁에서 독립적인 역량을 확보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규제 완화를 통해 AI 산업을 성장시키려는 태도를 보였다. 마크롱 대통령과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은 AI 규제를 단순화할 필요성을 언급하면서도, AI 기술이 신뢰성과 윤리를 기반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이에 반해, 미국은 유럽을 AI 산업의 “주니어 파트너”로 간주하며, 미국 중심의 AI 기술 질서에 동참할 것을 요구했다. 이는 AI 기술 패권을 둘러싼 미국과 유럽 간의 갈등이 향후 더욱 심화될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드러난 AI 규제와 산업 전략에 대한 논의는 한국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한국은 AI 기술 개발을 국가 핵심 과제로 설정하고 있으며, 글로벌 AI 경쟁에서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프랑스처럼 AI 규제와 산업 육성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며, 미국의 AI 패권 전략 속에서 자국의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첫째, 한국은 AI 규제와 산업 육성의 균형을 고려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프랑스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과도한 규제는 기업의 성장을 저해할 수 있으며, 지나친 규제 완화는 AI의 윤리적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AI 윤리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되, 혁신을 저해하지 않는 방향으로 정책을 조정해야 한다.
한국은 인공지능(AI) 산업의 발전을 위해 다양한 입법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024년 1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인공지능 기본법’은 유럽연합(EU)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제정된 포괄적인 AI 진흥 및 규제법으로, AI 개발·활용 시 준수해야 할 위험관리, 이용자 보호, 결과물에 대한 설명의무, 딥페이크 등 생성형 AI 서비스 제공 시 표시 의무 등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이는 AI 기술이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여 규제와 진흥의 균형을 맞추려는 시도로 평가된다.
그러나 AI 관련 입법 과정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도 존재한다. 정부 부처마다 AI 규제 법안을 경쟁적으로 제정하면서 통일된 기준 없이 개별 규제가 쏟아지고 있으며, 이는 산업 현장에서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AI 기본법’ 외에도 산업통상자원부의 ‘AI 산업활용 촉진법’, 방송통신위원회의 ‘AI 서비스 이용자 보호법’ 등이 각각 추진되고 있으며, 문화체육관광부와 개인정보보호위원회도 AI 저작권 및 개인정보 보호와 관련한 별도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있다. 이러한 부처별 개별 입법은 AI 산업의 큰 그림을 고려하지 못한 채 중복 규제와 비효율적인 법체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와 함께, AI 산업 발전을 위한 명확한 정책 방향 설정도 중요한 과제이다. AI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경제, 사회, 안보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치는 핵심 요소이므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체계적인 법·제도 마련이 필요하다. 특히, 50년 이상의 장기적 비전과 함께 일관된 AI 정책을 추진해야 글로벌 AI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을 것이다.
또한, AI 관련 법안은 산업 발전과 기술 혁신을 저해하지 않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현재 한국의 AI 법·제도는 규제 중심적 성격이 강한데, 이는 신기술 도입을 저해하고 기업의 혁신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 미국과 중국 등 주요국들은 AI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법적 불확실성을 줄이고 기업이 적극적으로 AI를 개발·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한국도 이러한 흐름을 고려하여 산업 진흥과 규제 간의 균형을 맞추는 방향으로 법체계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
AI 법제의 글로벌 정합성 또한 고려해야 할 요소이다. 한국의 AI 관련 법·제도가 글로벌 스탠더드와 지나치게 괴리가 있으면, 국내 기업들이 해외 시장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 있다. 특히, EU의 AI법, 미국의 AI 규제 가이드라인 등과 조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법안을 설계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국제 협력을 강화하고, 글로벌 AI 규제 동향을 반영하는 유연한 입법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AI 반도체 및 데이터센터 인프라를 강화해야 한다. 미국이 AI 반도체 공급망을 자국 내에서 통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가운데, 한국은 반도체 산업에서 독자적인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기업들이 AI 반도체 기술을 선도하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전략적 지원과 글로벌 협력이 필요하다. 아울러 AI 국제 협력 방향을 신중히 설정해야 한다. 한국은 미국과 프랑스의 전략적 입장을 고려하여 AI 협력 관계를 조정해야 한다. 미국과 협력하여 AI 기술 경쟁력을 높이는 동시에, 유럽과의 협력을 통해 AI 윤리 및 규제 프레임워크에 대한 글로벌 리더십을 확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미국의 ‘스타게이트(Stargate)’ 프로젝트와의 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미국은 AI 반도체 및 컴퓨팅 인프라 강화를 위해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통해 향후 4년간 최대 5,000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며, 이는 글로벌 AI 산업의 판도를 좌우할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한국의 AI 반도체 기업들은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활용하여 글로벌 AI 반도체 공급망에서 전략적 입지를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같은 한국 기업들이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지분 투자를 포함한 협력 모델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자국 내 반도체 생산을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여전히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보유한 기술력과 생산능력은 대체할 수 없는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한국 기업들은 스타게이트 프로젝트 내에서 반도체 설계 및 생산 파트너로서 주요 지위를 확보해야 하며, 이를 통해 장기적으로 AI 반도체 시장에서의 주도권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한국 정부 차원에서도 미국산 GPU(그래픽처리장치) 확보를 위한 대규모 수급 노력이 필요하다. 현재 AI 기술의 발전은 대규모 컴퓨팅 파워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으며, 특히 엔비디아(NVIDIA)의 H100, B100과 같은 고성능 GPU는 AI 모델 훈련과 추론에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반도체 수출 통제를 강화하며 중국뿐만 아니라 기타 국가들에 대한 GPU 공급도 제한할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 정부는 미국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AI 반도체 및 GPU 수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한국이 AI 반도체 공급망에서 중요한 파트너임을 강조하고, 반도체 장비 및 소프트웨어 생태계에서 상호 이익이 되는 협력 모델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AI 데이터센터 구축을 위한 인프라 투자 확대와 함께, GPU 및 AI 전용 칩셋의 안정적인 공급을 위한 정부 차원의 협상력을 강화해야 한다.
셋째, AI와 에너지 정책을 연계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프랑스가 원자력을 활용하여 AI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는 전략을 강조한 것처럼, 한국도 안정적인 전력 공급과 AI 기술 발전을 연계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재생에너지 및 원자력 발전을 활용하여 AI 인프라를 구축하는 방식이 장기적인 산업 경쟁력 확보에 기여할 수 있다.
파리 AI 정상회의는 AI 기술이 단순한 산업 경쟁을 넘어 국제적 기술 패권 경쟁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미국과 프랑스는 AI 산업 육성과 규제에 대해 상반된 접근 방식을 보였으며, 이는 향후 AI 글로벌 거버넌스의 중요한 논점이 될 것이다. 한국은 이러한 변화 속에서 AI 기술 발전과 규제 정책을 조화롭게 설계하고, 글로벌 AI 경쟁에서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는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미국과 유럽의 전략 차이를 고려하여 AI 정책을 수립하고, AI 반도체 및 인프라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향후 AI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