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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의 민주화 vs 투기의 확산: 코인베이스와 로빈후드

혁신의 이름으로 탄생한 플랫폼들이 남긴 규제와 책임의 과제

by 드라이트리

지난 10여 년간 글로벌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영역 중 하나는 금융 분야입니다. 전통 금융산업은 높은 진입장벽과 복잡한 규제로 보호되어 왔지만, 모바일 기술의 보급과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의 성장, 그리고 초저금리 시기의 풍부한 유동성이 겹치면서 새로운 플레이어들이 급부상했습니다. 지점 방문 없이 계좌를 만들고, 수수료 없이 매매하며, 앱 하나로 복잡한 자산군에 접근하는 경험은 ‘금융의 민주화’라는 구호와 완벽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그 물결의 정점에 선 두 회사가 바로 코인베이스(Coinbase)와 로빈후드(Robinhood)입니다. 전자는 암호화폐라는 이질적인 자산을 제도권의 문턱 안으로 끌어들였고, 후자는 무료 주식거래를 표준으로 만들다시피 하며 투자 대중화를 가속했습니다. 그러나 두 회사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민주화’의 반대편에 놓인 투기 확대, 규제 충돌, 이해상충, 신뢰의 균열이라는 그림자 또한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코인베이스의 출발점은 명확했습니다. 2012년 설립된 이 회사는 복잡한 지갑 설치와 키 관리, 거래소 계정 개설 등 기술적 장벽에 가로막혀 있던 암호화폐 거래를 ‘앱 하나’로 단순화하겠다는 비전을 내세웠습니다. 사용자 경험(UX)의 과감한 단순화는 채택을 폭발적으로 끌어올렸고, 2017~2018년의 첫 번째 암호화폐 열풍과 팬데믹 시기의 유동성 랠리 속에서 코인베이스는 세계적 사업자로 도약했습니다. 2021년 4월 14일, 코인베이스는 나스닥에 직상장하며 장중 기준 1000억 달러를 웃도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암호화폐 산업이 금융시장의 ‘변방’이 아니라 대중적 관심의 중심에 들어섰음을 상징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직상장 이후 코인베이스는 단순 중개를 넘어 인프라 기업으로 포지셔닝을 넓혔습니다. 특히 2024년 1월 미국에서 현물 비트코인 ETF들이 승인된 뒤, 코인베이스는 여러 ETF에 커스터디(수탁)·프라임 브로커리지를 제공하며 제도권 자금의 온램프(온체인 진입로)로 자리 잡았습니다. 블랙록의 iShares Bitcoin Trust(IBIT) 공개 자료는 Coinbase Prime이 신탁의 커스터디와 연계된 핵심 인프라임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거래 수수료에 의존하던 수익구조가 수탁 및 기관 대상 서비스로 다변화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다만 코인베이스의 여정이 일직선의 승리였던 것은 아닙니다. 암호화폐 시장의 극단적 변동성은 거래량에 연동되는 수수료 수익의 롤러코스터를 뜻합니다. 이 회사는 이에 대응해 스테이킹, 커스터디, 프라임 서비스, USDC 이자수익 공유 등 ‘구독·서비스(Subscription & Services)’ 비중을 키웠고, 단기 금리 수준과 USDC 준비금 이자가 수익성에 미치는 민감도를 공시에서 반복적으로 강조해 왔습니다. 금리가 하향 반전하면 이 부분의 수익이 빠르게 줄어들 수 있다는 취약성도 동시에 드러납니다. 또한 규제 리스크는 상수에 가깝습니다. 2023년 제기된 SEC(미 증권거래위원회)의 소송은 2024년 3월 뉴욕 연방법원이 SEC의 주요 주장 대부분을 심리 단계로 진입시키며 본안 다툼을 이어가게 했습니다. 이는 코인베이스가 거래소·브로커·청산기관으로 기능해 왔다는 SEC의 주장이 소명 수준을 넘겨 다툴 가치가 있다고 본 결정으로, 규제 프레임이 여전히 유동적임을 말해줍니다.


로빈후드의 등장은 또 다른 의미에서 전환점이었습니다. 2013년 설립된 이 회사는 주식·ETF 거래 수수료 0원을 내세워 ‘투자의 문턱’을 무너뜨렸습니다. 하지만 수수료 0원은 ‘공짜 점심’이 아니라 PFOF(payment for order flow, 주문흐름 판매)라는 수익모델의 반대면이었습니다. 고객 주문을 대형 마켓메이커로 라우팅하고 리베이트를 받는 이 구조는, 고객이 체감하는 비용을 낮춰주는 대신 주문 최적 실행(best execution)과의 이해상충 논란을 상시적으로 불러왔습니다. 실제로 2020년 12월 SEC는 로빈후드가 PFOF 수익과 실행 품질 관련 사실을 기만적으로 알렸다며 제재했고, 로빈후드는 6500만 달러 합의로 사건을 마무리했습니다. 이 건은 ‘무료 거래’의 이면에 있는 경제적 실체와 정보 비대칭 이슈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사례였습니다.


로빈후드의 ‘게임화된 UX’는 젊은 투자자 유입을 폭발적으로 늘렸지만, 옵션 등 고위험 파생상품의 대중화라는 부작용도 낳았습니다. 그리고 2021년 1월 28일, 소위 게임스톱 사태의 정점에서 로빈후드는 일부 밈 주식 매수 제한 결정을 내리며 거센 역풍을 맞았습니다. 회사는 청산소 증거금 요구 급증 등 리스크 관리·규제 준수 사유를 들었지만, ‘개미의 편’ 이미지는 심각하게 훼손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소매 중개 플랫폼의 유동성·리스크 관리 체계가 극단적 변동성 앞에서 얼마나 취약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전환점이었습니다.


그 이후 로빈후드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넓히며 플랫폼의 생활 금융화를 시도했습니다. 2023년 X1 인수의 연장선에서 2024년 3월 로빈후드 골드 카드를 출시해 골드 회원에게 전 카테고리 3% 적립을 내걸었고, 앱 내 여행 포털 결제 5% 등 보상 체계를 결합했습니다. 신용카드 보상 포인트를 투자계좌로 바로 넘기는 설계를 통해 ‘소비–투자’의 파이프를 직접 연결하려는 전략으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24시간 마켓(주 5일)을 도입해 밤사이 제한적 종목의 주문 체결을 허용하며 비정규장 체험을 대중화했습니다. 회사는 2024년 초 기준 24시간 마켓 누적 야간 체결금액 100억 달러를 공표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비정규장 유동성의 얕음·스프레드 확대·가격 충격의 과대화 가능성 등 투자자 보호 이슈를 상시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과제도 남습니다.


암호화폐 비즈니스 측면에서도 로빈후드는 행보를 넓혔습니다. 2024년 6월 룩셈부르크 기반 거래소 비트스탬프(Bitstamp) 인수 발표(약 2억 달러)로 라이선스 포트폴리오와 기관 고객 기반을 확보했고, 2025년 6월 거래종결을 공시했습니다. 이는 순수 소매 브로커에서 국제 암호화폐 비즈니스로 외연을 확장하려는 의지를 보여줍니다. 한편 2024년 5월 SEC의 웰스 노티스 통보는 규제 리스크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음을 시사했으나, 2025년 2월 SEC 집행국이 로빈후드 크립토 조사 종결·무조치를 통지했다는 회사 발표로 일단 한 고비를 넘겼습니다. 규제 환경의 변동성이 사업 전략과 밸류에이션에 얼마나 큰 레버리지를 갖는지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두 회사의 궤적에서 겹쳐 보이는 교훈은 분명합니다. 첫째, 금융의 민주화는 규제와 책임의 이중과제를 동반합니다. 접근성을 높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암호화폐의 온램프를 넓히든, 주식·옵션 거래의 장벽을 낮추든, 그 가장 안쪽에는 투자자 보호와 시장 건전성이라는 고전적 목표가 있습니다. 코인베이스의 경우 자산의 보관·검증·감시 기능을 제도권 표준에 맞춰 끌어올리는 노력이, 로빈후드의 경우 최적 실행·이해상충 관리·유동성 리스크 관리의 제도화가 혁신의 내구성을 좌우합니다. 둘째, 수익모델의 지속가능성이 혁신의 진짜 시험지입니다. 코인베이스는 변동성이 큰 거래 수수료에서 커스터디·프라임·USDC 이자수익 등으로 다변화했지만, 금리 사이클과 규제 변수에 대한 민감도는 여전히 큽니다. 로빈후드는 PFOF에 대한 사회적·규제적 시선이 바뀔 때마다 사업기반이 흔들릴 수 있기에, 카드·현금관리·대출·해외암호화폐로의 확장이 단순한 제품 라인업 추가가 아니라 구조적 리스크를 분산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합니다.셋째, 신뢰는 가장 중요한 무형자산입니다. 코인베이스의 규제 소송 진행, 로빈후드의 게임스톱 매수 제한과 PFOF 논란은 한 번의 균열이 플랫폼 정체성 전체를 뒤흔들 수 있음을 상기시킵니다. 신뢰는 프론트엔드에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리스크 관리 모델, 내부통제, 투명한 공시, 고객에게 불리한 구조를 먼저 고치는 원칙에서 자랍니다.


흥미로운 대조점도 보입니다. 코인베이스는 ‘암호화폐 네이티브 인프라’로서 제도권과의 연결 부위—ETF 커스터디, 기관 프라임—를 넓히며 규제 친화적 포지션을 강화하는 중입니다. 반대로 로빈후드는 ‘소매 투자 네이티브 UX’로서 생활 금융 슈퍼앱으로의 확장을 통해 거래 수익의 변동성을 줄이려 합니다. 전자는 B2B2C 인프라화의 길, 후자는 B2C 생태계화의 길입니다. 어느 쪽이든 핵심은 같은 곳을 가리킵니다. 규모의 확장은 단위경제학이 단단할 때만 의미가 있다는 평범하지만 잊기 쉬운 명제입니다.


한국의 창업자·정책담당자에게도 두 사례는 직접적인 메시지를 줍니다. 고객 접근성 혁신과 투자자 보호는 대립항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입니다. 투자 의사결정을 가볍게 만드는 UX는 정보 제공·위험 경고·거래 제한 로직의 정교화가 함께 따라붙어야 하며, 암호화폐·파생상품·24시간 거래처럼 구조적 리스크가 높은 영역일수록 리스크 디스클로저와 사전적 보호장치가 UX의 일부로 내재화되어야 합니다. 또한 공짜 모델의 대가—PFOF, 스프레드, 슬리피지, 유동성 비용—를 투명하게 설명하는 문화가 시장 신뢰의 최저선입니다. 금융 규제기관과의 관계 역시 사후 집행이 아니라 사전 협의·샌드박스·파일럿 같은 공진화 모델로 전환될 때 생태계 전체의 비용이 낮아집니다.


마지막으로 투자자 관점에서의 함의입니다. 코인베이스가 암호화폐의 제도권 인프라가 될수록 주가의 베타는 암호화폐 가격뿐 아니라 규제·금리·기관 수요에 동시 노출됩니다. 로빈후드는 거래량·PFOF·옵션 활성도에 민감한 구조에서 카드·현금관리·24시간 마켓 등으로 레버리지를 분산하려 하지만, 유동성 얕은 시간대 거래의 리스크를 감수하는 대가가 무엇인지 늘 점검해야 합니다. ‘민주화된 금융’이 진짜로 민주적이려면, 선택의 자유만큼이나 정보의 질과 보호장치가 민주화되어야 합니다.


코인베이스와 로빈후드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금융의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그러나 문을 여는 것만큼 그 안에서 안전·공정·지속가능성을 설계하는 일은 더 어렵습니다. 혁신의 속도가 빠를수록, 기본기의 점검은 더 자주·더 엄격해야 합니다. 규제와 책임, 수익모델과 이해상충, 리스크 관리와 신뢰—이 여섯 가지 축을 어떻게 정렬하느냐가 앞으로의 생존과 평가를 가를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금융의 민주화’가 제도권 안에서 뿌리내리는 유일한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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