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성장 뒤에 숨은 리스크, 그리고 스타트업이 배워야 할 생존 전략
실리콘밸리는 지난 10여 년간 전통 산업의 비효율을 해소하겠다는 약속으로 무장한 스타트업들을 세계 무대에 올려놓았습니다. 자본은 풍부했고, 소프트웨어는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는 신념이 산업 곳곳을 관통했습니다. 온라인으로 집을 하루 만에 팔게 해주겠다거나, 사무공간을 서비스처럼 구독하게 만들겠다는 서사는 대중과 투자자 모두에게 강력한 매력을 발산했습니다. 그러나 혁신이라는 이름이 언제나 구조적 리스크를 제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자본으로 일시적으로 가려진 균열은 경기의 변화 앞에서 가장 먼저 드러납니다. 온라인 주택 매매를 표방한 오픈도어와 공유오피스의 상징이었던 위워크는 바로 그 점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 기업들입니다. 두 기업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기술·자본·거버넌스·확장전략이 어떻게 맞물려야 지속 가능성이 확보되는지, 반대로 어디서부터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하는지가 구체적으로 보입니다.
오픈도어는 2014년에 출발했습니다. 창업진은 전통적인 주택거래가 지니는 복잡성과 불확실성—중개인 섭외, 방문·오픈하우스, 가격협상, 검사·수리, 잔금 마감—을 기술로 단순화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 해법이 이른바 iBuyer 모델입니다. 집주인이 온라인으로 정보를 입력하면 회사가 자체 알고리즘으로 가격을 산정해 즉시 현금 제안을 내고, 매입 후 경미한 수리를 거쳐 다시 되파는 구조입니다. 고객 가치제안은 분명했습니다. 시간이 돈인 사람에게는 거래기간의 대폭 단축, 불확실성의 제거, 일정의 통제권이라는 혜택이 제공됩니다. 기업의 단위경제학은 가격 스프레드와 서비스 수수료, 보유기간 동안의 자본비용과 수리·보유비용, 재판매 실현손익의 균형 위에 세워집니다. 곧잘 간과되지만 이 모델의 심장은 가격책정 능력과 재고회전입니다. 한 채를 하루라도 덜 보유하면 자본비용이 줄고, 가격 오차를 1%포인트만 낮춰도 포트폴리오 전체 손익이 뒤집힐 수 있습니다.
성장은 화려했습니다. 초기 도시에서의 고객 경험이 입소문을 타자 신규 도시 진출이 가속화되었고, 대규모 자본이 공급되면서 매입·보유·재판매의 선순환이 확장되었습니다. 팬데믹 초반 일시 중단을 거쳤지만 비대면 거래 수요는 오히려 온라인 주택거래의 채택을 앞당겼습니다. 문제는 자본시장의 금리가 오르고 부동산 시장이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적극적 매입이 역풍으로 바뀌었을 때 드러났습니다. 가격 하락 국면에서의 알고리즘 오차는 보유재고의 평가손을 실현손으로 바꾸고, 그 사이 사이클에 묶여 있는 자본은 유동성 압박을 키웁니다. 보유기간이 늘수록 자본비용과 관리·세금·보험비용이 불어나고, 소수의 하자·사례가 평균 수익성을 갉아먹습니다. 여기에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의 과장으로 규제기관과의 분쟁이 얹히면 신뢰는 추가로 소진됩니다. 오픈도어는 구조조정과 사업 축소, 리더십 교체를 통해 체력 보존과 손익 개선을 도모했지만, 이 모델이 본질적으로 경기·금리·가격변동성에 노출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후의 전략은 더 엄격한 인수심사, 보수적 가격산정, 보유기간 단축, 헤징 강화, 파트너십을 통한 자본집약도 완화 같은 수순으로 이동합니다. 소프트웨어 기업처럼 보이기를 원했을지라도, 하루하루의 손익은 결국 ‘집을 사서 되파는’ 실물 리스크의 관리에서 결정된다는 명제가 끝내 핵심으로 남습니다.
위워크의 서사는 다른 듯 닮았습니다. 이 회사는 사무공간을 단기·유연 계약으로 상품화하고, 인테리어·브랜드·커뮤니티를 결합해 공간경험을 재정의하겠다는 비전으로 시장을 뒤흔들었습니다. 초기의 고객가치는 명확했습니다. 스타트업과 프리랜서는 장기임대의 보증금·인테리어·위약금 부담 없이 당장 일을 시작할 수 있고, 대기업은 프로젝트 단위로 민첩하게 확장·축소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사업의 본질이 어디에 있느냐였습니다. 장기 임차계약으로 고정비를 부담하고 이를 단기 고객에게 재판매하는 구조는 회계상 자산·부채와 현금흐름의 만기가 어긋나 있는 ‘기간 미스매치’를 내재합니다. 점유율이 조금만 흔들려도 레버리지와 고정비가 복합적으로 손익을 압박하고, 확장의 속도가 빠를수록 누적된 임차계약의 경직성은 더 커집니다. 브랜드와 커뮤니티가 차별성의 모양새를 만들어주더라도, 수익성은 결국 평당 임대단가·가동률·운영효율의 곱으로 귀결됩니다.
자본의 과잉공급은 이 괴리를 잠시 가렸습니다. 대규모 투자는 전 세계적 확장을 가능케 했고, 기술기업이라는 내러티브는 높은 밸류에이션을 정당화하는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공시 문서를 통해 지배구조의 허점과 비경상성 지표에 의존한 실적 서술이 드러나면서 신뢰가 흔들렸습니다. 창업자의 독단과 내부거래, 모호한 성과지표의 남용은 성장의 동력이었던 카리스마를 순식간에 리스크 요인으로 바꾸었습니다. 팬데믹은 수요단 충격을 가했고, 고정비의 중량감은 위기 국면에서 잔혹하게 드러났습니다. 이후의 여정이 구조조정과 재무재편, 사업축소로 향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기술적 수사가 임대업의 물리법칙을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두 기업을 나란히 놓고 보면 몇 가지 교훈이 선명해집니다. 첫째, 기술과 비즈니스의 본질이 일치하지 않으면 성장의 속도는 신뢰 상실의 속도로 되돌아옵니다. 오픈도어의 알고리즘은 정교했지만, 그것이 가격 하락 국면의 변동성과 재고위험을 삭제해 주지는 못했습니다. 위워크의 커뮤니티 설계는 매력적이었지만, 장기임차·단기전대라는 경제구조를 기술기업의 외피로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했습니다. 둘째, 빠른 확장은 단위경제학이 견고할 때에만 의미가 있습니다. 수익성의 ‘나중에’를 전제로 한 성장전략은 자본이 싼 시기에는 통하지만, 금리가 오르거나 사이클이 꺾이면 조달비용과 리스크 프리미엄이 동시에 올라가며 계획 전체가 재검토됩니다. 확장을 위한 확장은 고정비의 스노볼을 만들고, 불황기에 그 눈덩이는 가장 먼저 기업의 숨을 조입니다. 셋째, 리스크 관리는 모델의 일부가 아니라 모델 그 자체입니다. 오픈도어의 본질이 가격과 재고의 위험을 어떻게 가격에 반영하고 보유기간을 얼마나 짧게 가져가느냐에 있듯, 위워크의 본질은 임차계약의 만기 구조와 점유율 민감도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있습니다. 헤징, 스트레스 테스트, 시나리오 플래닝, 조기경보 지표 같은 ‘지루한’ 기능이 곧 생존율을 결정합니다. 넷째, 거버넌스는 성장의 브레이크가 아니라 엔진의 윤활유입니다. 사외성·독립성을 갖춘 이사회, 내부통제와 공시의 엄격함, 숫자와 서사의 균형은 고속 성장기에 간과되기 쉽지만, 위기 때 기업의 선택지를 넓혀 주는 거의 유일한 장치입니다. 카리스마는 제품을 팔 수 있으나, 신뢰가 없으면 채권자·파트너·고객이 떠납니다.
창업자와 경영진에게 실용적인 함의를 더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새로운 카테고리를 개척할 때일수록 ‘우리가 진짜로 하고 있는 일’의 경제구조를 매일 문서로 확인해야 합니다. 오픈도어라면 평균 보유일수·가격오차·재고 회전·헤지 성과가, 위워크라면 가동률 브리지·평당 수익·임차계약 만기 테이블이 경영회의의 첫 페이지를 차지해야 합니다. ‘조정 EBITDA’ 같은 내러티브 지표는 내부 개선을 위해서만 쓰고 외부에는 보수적·표준화된 지표로 신뢰를 쌓아야 합니다. 자본구조는 순풍보다 역풍을 기준으로 설계해야 하며, 확장 결정을 내릴 때는 되돌릴 수 있는 이탈 경로를 확보해야 합니다. 인재·브랜드·제품 모멘텀에 취해 고정비를 앞질러 늘리는 결정은 항상 한 번 더 늦추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CFO와 리스크 책임자가 비즈니스 오너와 대등하게 토론하고 ‘아니오’를 말할 수 있을 때, 속도와 지속가능성의 균형이 잡힙니다.
투자자에게도 시사가 큽니다. ‘테크’라는 수사는 밸류에이션의 배수를 높여줄 수 있지만, 현금흐름의 변동성을 낮춰주지는 않습니다. 핵심은 총주소가능시장(TAM)의 크기가 아니라 진입장벽의 본질과 자본회전의 속도, 그리고 사이클 변곡점에서의 손익 방어력입니다. 밸류체인에서 어디의 위험을 떠안고 있는지, 그 위험을 가격에 충분히 이전하고 있는지, 계약 구조가 하방을 얼마나 보호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서사보다 먼저 와야 합니다. 규제기관과 사회 역시 혁신의 외형뿐 아니라 소비자 보호와 공정한 정보제공을 통해 시장 신뢰의 기반을 다질 필요가 있습니다. 투명한 커뮤니케이션은 규제 회피의 기술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전체 생태계의 비용을 낮추는 공공재입니다.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로 시야를 넓히면, 두 사례는 더 직접적인 메시지를 전합니다. 부동산·모빌리티·헬스케어처럼 규제와 실물자산이 얽힌 분야에서 ‘소프트웨어가 모든 것을 바꾼다’는 구호는 실행의 디테일과 리스크 설계가 뒷받침될 때만 성립합니다. 정부·금융기관·대기업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자본집약도를 낮추고, 데이터·브랜드·운영기술 등 비자산적 무형자산을 차별화의 핵심으로 삼되, 손익은 항상 보수적으로 관리해야 합니다. 거버넌스와 공시는 상장 직전에 급히 꾸릴 체크리스트가 아니라, 시리즈 A부터 문화로 심는 설계도여야 합니다. 성장 서사는 고객과 임직원을 결집시키지만, 위기 시를 견디게 하는 것은 언제나 숫자와 제도입니다.
오픈도어와 위워크의 이야기는 실패담이 아닙니다. 그것은 혁신이 무엇을 바꿀 수 있고 무엇을 바꾸지 못하는지, 자본이 어디까지 아군이고 어디서부터 시험대가 되는지, 리더십이 언제 동력이고 언제 리스크가 되는지에 대한 고밀도의 학습 데이터입니다. 빠른 성장은 꿈의 크기를 증명하지만, 지속 가능한 성장은 설계의 깊이를 증명합니다. 기술과 본질의 정합성, 확장과 수익의 균형, 카리스마와 거버넌스의 조화라는 세 가지 축이 맞아떨어질 때 기업은 사이클을 건너 도달해야 할 곳에 도달합니다. 혁신의 시대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간명한 문장은 이렇습니다. 성장률은 스포트라이트를 가져오지만, 생존은 어둠 속에서 다듬는 디테일이 결정합니다. 그리고 그 디테일을 반복해서 점검하는 일이야말로, 화려한 서사 뒤에 숨어 있는 진짜 경쟁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