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반발과 동아시아의 균열
1991년 소련이 붕괴했을 때, 세계는 잠시 평화의 도래를 기대했습니다. 독일은 통일되었고, 동유럽은 민주화의 길을 걸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미국과 서방은 러시아와 새로운 관계를 모색했지만, 나토 확장이라는 문제에서 양측은 곧 갈등을 드러냈습니다.
당시 러시아 측에서는 “독일 통일을 허용하는 대신, 나토가 동쪽으로 확장하지 않겠다”는 비공식적 합의가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미국과 서방은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이 불일치는 이후 수십 년간 러시아가 서방을 불신하는 핵심 근거로 작동했습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나토는 본격적으로 동유럽 국가들을 회원국으로 받아들였습니다. 1999년에는 폴란드, 체코, 헝가리가 가입했고, 2004년에는 발트 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과 동유럽 대부분 국가들이 합류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군사동맹의 확대가 아니라, 러시아 입장에서는 ‘과거 소련 영향권의 잠식’을 의미했습니다.
나토는 자신들의 확장이 민주주의와 안보를 보장한다고 주장했지만, 러시아에게 이는 포위 전략으로 인식되었습니다. 러시아는 과거 제국의 영광을 잃은 뒤, 안보적 불안을 극도로 의식하게 되었고, 이는 민족주의적 반발로 이어졌습니다.
2000년 집권한 블라디미르 푸틴은 러시아의 국가적 자존심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습니다. 그는 나토의 확장을 ‘러시아에 대한 배신’으로 규정했고, 군사력 강화와 권위주의적 통치를 통해 서방에 맞서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푸틴 체제의 러시아는 나토 확장에 대응해 조지아 전쟁(2008), 크림반도 병합(2014), 우크라이나 전면전(2022)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군사 행동을 감행했습니다. 이는 러시아가 단순히 방어적 태도를 넘어, 적극적으로 세력권을 복원하려 했음을 보여줍니다.
유럽에서 벌어진 나토-러시아 갈등은 단순히 대서양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동아시아에도 직접적 파급을 미쳤습니다.
첫째, 북한 문제입니다. 러시아가 서방과 대립하면서 북한과의 군사적 협력을 강화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2020년대 들어 러시아는 무기 부족을 북한과의 교류로 메우고 있으며, 이는 한반도의 긴장을 높이고 있습니다.
둘째, 중국과 러시아의 접근입니다. 나토의 확장은 러시아를 중국 쪽으로 끌어당겼습니다. 양국은 반(反)서방 전선을 형성했고, 이는 미국과 중국의 전략 경쟁과 겹치며 신냉전 구도를 강화했습니다. 그 결과 한반도는 미·중·러의 갈등이 교차하는 공간으로 다시 부각되었습니다.
셋째, 한국의 전략적 딜레마입니다. 나토 확장과 러시아의 반발은 한국에도 간접적 영향을 주었습니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미국과 동맹을 맺고 있지만, 동시에 중국과 러시아와의 경제·외교 관계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유럽에서 벌어진 충돌은 동아시아에서의 세력 균형과 직결되며, 한국 외교는 더욱 복잡한 줄타기를 요구받게 되었습니다.
나토 확장은 단순한 동유럽 문제를 넘어, 세계 질서의 균열을 심화시켰습니다. 러시아는 이를 계기로 권위주의적 민족주의로 회귀했고, 서방은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라는 구도를 강화했습니다. 이는 동아시아에서 미국과 중국의 경쟁으로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한반도는 여전히 중요한 시험대입니다. 한국전쟁의 정전 체제가 유지되는 한, 한반도는 언제든지 세계 갈등이 재점화될 수 있는 불씨이기 때문입니다. 나토와 러시아의 갈등은 곧 미·중·러의 대립으로 번지고, 한반도는 그 충돌의 한복판에 서게 됩니다.
나토 확장의 역사는 한 가지 분명한 교훈을 남깁니다. 힘의 공백은 곧 외부 세력의 경쟁을 불러온다는 사실입니다. 동유럽에서 소련의 붕괴가 나토 확장으로 이어졌듯, 동아시아에서 중국과 미국의 세력 경쟁은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습니다.
한국은 이러한 구조 속에서 다시 묻습니다.
“우리는 세계 질서의 균열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는 단순히 외교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한반도의 생존 전략 그 자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