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을 지구로 가져오다

국제핵융합실험로 ITER 이야기

by 드라이트리

냉전 속 협력이 빚은 ITER의 탄생


1985년 11월, 스위스 제네바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과 소련 서기장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역사적인 만남을 가졌습니다. 핵 군비 경쟁에 한줄기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고자 한 두 정상은 본질적으로 무궁무진한 에너지원의 개발을 위한 가장 폭넓은 국제 협력을 약속했습니다. 바로 이때 탄생한 아이디어가 국제 핵융합 실험로 ITER입니다. ITER는 라틴어로 '길(The Way)'을 의미하며, 인류가 나아갈 에너지의 새로운 길을 상징적으로 담았습니다.


사실 거대한 국제 핵융합로를 함께 짓자는 구상은 그 이전부터 과학자들 사이에 있어왔습니다. 1970년대 국제 토카막 연구(INTOR) 워크숍 등에서 밑그림이 그려졌지만, 어느 나라도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프로젝트였습니다. 그러던 중 소련의 과학자 예브게니 벨리홉 등이 나서 핵융합 에너지의 과학적·기술적 실현을 보여줄 거대한 기계를 만들려면 오직 국제적인 협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쳤고, 마침내 고르바초프가 그 해 11월 레이건에게 공동 프로젝트를 공식 제안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냉전 한복판에서 탄생한 이 협력의 씨앗은 1988년부터 개념 설계를 시작했고, 2006년 한국을 포함한 7개 핵심 회원국이 공식 협정을 맺으면서 본격적인 세계 최대의 과학 프로젝트로 발돋움했습니다.


ITER 프로젝트의 규모는 실로 전대미문입니다. 초기 예상 사업비는 약 50억 유로였지만, 설계 변경과 지연으로 공식 예산만 180~200억 유로(약 25조 원)에 달하게 되었고, 누적 투입 비용을 따지면 인류 역사상 가장 비싼 과학 실험으로 꼽힐 정도입니다. 미국과 러시아(소련), 유럽연합, 일본, 한국, 중국, 인도까지 총 35개국이 참여하여 자재와 기술을 분담하며, 특히 EU가 건설 비용의 절반 가까이를 부담하고 나머지 6개국이 나머지를 고르게 분담하는 구조입니다. 서로 다른 이념과 문화권의 나라들이 인류 공동의 에너지 꿈을 위해 손을 잡았다는 점에서, ITER 탄생의 역사는 과학과 외교의 교차점이라 할 만합니다.


태양을 담는 그릇: 핵융합 원리와 ITER 기술


image.png https://www.iter.org/


밤하늘의 별이 내는 에너지는 핵융합으로부터 옵니다. 가벼운 원자핵(예컨대 수소의 동위원소인 중수소와 삼중수소)이 엄청난 압력과 온도에서 서로 융합해 하나의 무거운 원자핵(헬륨)을 만들면서 막대한 에너지가 방출되지요. 태양 중심에서는 약 1,500만 °C와 엄청난 중력이 이러한 융합을 자연히 일으킵니다. 그러나 지상에서는 대기압의 수십억 배에 이르는 우주적 압력을 재현할 수 없기에, 그보다 훨씬 높은 초고온 플라즈마 상태를 만들어 핵융합을 유발합니다. 플라즈마란 기체가 너무 뜨거워 전자와 이온으로 분리된 물질 상태로, 전기를 띤 입자들이기 때문에 자기장으로 잡아둘 수 있습니다. 이를 이용한 장치가 바로 토카막(tokamak)으로, 도넛 모양의 진공 용기 속에 강한 자기장을 걸어 태양보다 10배 이상 뜨거운 플라즈마를 가둬 핵융합을 일으키는 장치입니다. 토카막이라는 이름도 러시아어 약자에서 온 것으로, 이 개념을 1950년대 소련 과학자들이 처음 고안했습니다.


ITER는 직경 약 6미터에 부피 830㎥에 달하는 거대한 플라즈마 챔버를 갖춘 세계 최대의 토카막 장치입니다. 내부에 연료로 주입되는 중수소-삼중수소 혼합 기체를 전류와 고주파로 가열해 플라즈마 온도 1억5천만 °C 이상으로 끌어올릴 예정입니다. 이는 태양 중심보다도 훨씬 뜨겁지만, 초전도자석으로 생성한 최대 5.3테슬라(T)의 자기장으로 플라즈마를 뭉쳐놓으면 반응을 지속시킬 수 있습니다. ITER의 토카막은 D자 형태의 초전도 자기코일 18개가 도넛 둘레를 감싸고 있어 강력한 토로이드 자기장을 형성하고, 중앙에는 1,000톤짜리 중앙 솔레노이드 자석이 관통하여 플라즈마 전류 1,500만 암페어를 유도합니다. 또한 도넛 단면을 따라 배치된 6개의 폴로이드 자석 코일이 플라즈마 위치와 형태를 안정화합니다. 이러한 거대자석들은 모두 영하 269°C 이하로 냉각되어야 초전도 상태로 작동하므로, ITER는 거대한 액체헬륨 냉각 플랜트까지 포함한 하나의 종합 기계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ITER의 가장 중요한 목표 지표는 Q값=10입니다. Q값은 투입한 에너지 대비 플라즈마가 얻은 열출력의 비율을 뜻하는데, ITER에서는 약 5천만 와트(50MW)의 외부가열로 플라즈마를 데워 5억 와트(500MW)의 핵융합 출력을 얻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는 투입 대비 10배의 열에너지 생산으로, 과거 영국 JET 토카막이 1997년에 달성한 세계 기록 Q≈0.67에 비하면 압도적인 도약입니다. ITER가 달성한 500MW의 열은 약 20만 가구에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양이지만, 실험로인 ITER에서는 발전설비를 연결하지 않고 오직 에너지 증폭의 과학적 실증에 집중합니다. (전기를 만들기 위해 터빈 등을 추가하면 실험 복잡도가 커지지만 부가적인 연구 가치는 적기 때문입니다.) 대신 ITER 이후에는 이런 출력으로 실제 발전까지 수행할 DEMO라는 실증발전소를 건설할 계획입니다.


ITER가 핵융합에서 궁극적으로 입증하려는 것은 '불타는 플라즈마(burning plasma)' 상태입니다. 이는 플라즈마 가열에 외부가 아닌 핵융합 반응 자체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상태로, 별처럼 스스로 연료를 태워 유지되는 플라즈마를 의미합니다. 그러려면 충분히 큰 Q값을 달성해야 하며, ITER가 그러한 자기밀폐 연소플라즈마를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장시간 유지하는 장치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핵융합 반응에서 방출된 고에너지 중성자는 장치 벽에 흡수되어 열로 전환되는데, ITER에서는 이 중성자를 리튬 담체재(blanket)에 충돌시켜 삼중수소 연료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기술도 시험합니다. 이처럼 ITER는 핵연료 자기생산, 고에너지 중성자 재료 거동, 초전도 자석 및 초고온 플라즈마 제어 등 미래 발전소에 필수적인 모든 요소를 한곳에서 검증하는 종합실험으로 설계되었습니다.


거대한 퍼즐 조립: ITER 건설 현황과 도전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의 카다라쉬(Cadarache)에는 축구장 여러 개를 합친 넓이에 수천 명의 인력이 투입되어 ITER 건설이 한창 진행 중입니다. 2010년대 초반 부지 정지 작업과 건물 공사가 시작되어, 2020년 7월에는 프랑스 대통령까지 참석한 가운데 조립 착수식이 열렸습니다. 이후 초대형 부품들이 세계 각지에서 현장으로 모여들며, 마치 거대한 퍼즐을 끼워 맞추듯 톱니바퀴처럼 정밀한 조립 작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ITER 토카막의 진공용기(vacuum vessel)는 직경 19.4m, 높이 11.4m에 이르는 이중 강철벽 구조로, 내부 용적만 1,400㎥에 달하는 거대한 그릇입니다. 이 용기는 9개의 커다란 섹터 조각으로 나뉘어 제작되었는데, 두께 5~9cm의 특수 스테인리스강으로 만든 각 조각이 높이 14m, 무게 440톤에 이릅니다. 유럽이 5개 섹터를, 한국이 4개 섹터를 담당하여 제작했고, 특히 한국은 당초 2개를 맡았다가 추가로 2개를 더 만들어 2024년 말까지 모든 섹터 조각을 성공적으로 인도했습니다. 각 섹터는 수㎜ 오차도 없이 정밀해야 서로 용접해 하나의 용기로 완성할 수 있는데, 한국 제작분은 초정밀 가공·용접 기술로 품질과 일정을 모두 준수해 큰 찬사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완성된 거대한 조각들은 프랑스 현지 조립홀에서 초전도 자기코일 및 차폐재와 한데 묶여 1100톤이 넘는 모듈 단위로 결합된 뒤, 수직 크레인으로 들어올려 최종 위치에 설치되고 있습니다. 2022년에는 첫 번째 모듈이 토카막 설치공간(Pit)에 성공적으로 안착했고, 2023년 말 기준 3개의 섹터 모듈이 조립pit에 설치되어 약 1/3 원형이 갖춰졌습니다.


하지만 이런 전례 없는 조립 과정은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원래 ITER는 2018년까지 첫 플라즈마를 내는 일정이 목표였으나, 초기 설계의 복잡성과 재정 문제 등으로 2016년 계획이 수정되어 2025년 12월 첫 플라즈마로 일정을 재조정한 바 있습니다. 이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차질, 조립 인력 이동 제한 등이 겹치며 일정에 큰 타격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2022년에는 이미 설치된 열차폐체 일부 배관에서 결함이 발견되어, 약 2.3만 미터에 이르는 냉각 배관을 모두 다시 교체해야 하는 상황도 발생했습니다. ITER 조직은 이러한 예상 밖의 기술적 난관들을 해결하고자 2023년 새로운 프로젝트 일정 검토에 들어갔는데, 우선 이미 계획했던 2025년 첫 플라즈마는 장치 완성도를 높여 몇 년 연기하고, 대신 2030년대 초반에 바로 실질적인 연구 운전에 들어가는 방향으로 논의되고 있습니다. 2023년 말 ITER 이사회 발표에 따르면 2033년경에 장치를 완전 가동해 플라즈마 실험을 개시하고, 2035년에는 중수소-삼중수소를 활용한 1단계 핵융합 운전을 시작하며, 2039년경부터는 최대 출력의 핵융합 실험단계에 돌입하는 수정 로드맵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ITER 건설 일정은 초기 예상보다 10년 이상 늦춰질 전망이며, 조립 지연으로 인한 공사비 증가도 불가피하여, 2024년 현재 ITER 완공 시점의 총비용은 또 50억 유로 이상 늘어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함께 그리는 핵융합: 참여국들의 역할과 경쟁


ITER 프로젝트는 단일 국가가 이뤄내기 어려운 대규모 과학기술을 국제 분업으로 풀어가는 흥미로운 사례입니다. 각 참여국의 연구자와 산업체들은 자신 있는 분야의 부품을 맡아 제작 공급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선의의 기술 경쟁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은 앞서 언급한 진공용기 섹터 4개 외에도, 토카막 내부에 들어갈 440개의 블랑켓 차폐 블록 가운데 절반인 220개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이 블랑켓은 중성자를 흡수하고 열을 전달하는 내부 구조물로, 한국과 중국이 분담하여 만들고 있습니다. 한국은 또한 ITER에 필요한 초전도 케이블과 열차폐체, 조립용 특수 공구류까지 제때 공급하며 기술력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은 자체 핵융합 연구용 KSTAR 초전도 토카막을 운영 중인데, 2020년대 들어 1억°C 플라즈마를 48초 유지하여 세계 기록을 세우는 등, 고성능 운전 부문에서 선도적인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KSTAR는 향후 2026년까지 100초 이상 유지 기록을 목표로 하여, 장시간 운전과 플라즈마 제어 기술에서 ITER과 상호 보완적인 연구를 이어갈 계획입니다.


중국은 막대한 자본과 인력을 투입하여 핵융합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ITER 부품으로는 초전도 자석의 도체와 전원 시스템, 냉각장치 등에 큰 몫을 담당하고 있고, 거대한 폴로이드 필드(PF) 자석 6개 중 일부는 중국에서 완성되어 프랑스 현지로 보내졌습니다. 중국이 제작한 PF 코일은 지름 10m가 넘는 것도 있으며, 이 거대 자석들을 통해 자기장을 세밀히 조정해 플라즈마를 안정화하게 됩니다. 한편 중국 국내에서는 EAST라는 초전도 토카막을 운용하며 기록 경신에 나서고 있는데, 2021년에는 70 million°C 이상의 플라즈마를 무려 1,056초(17분 36초) 간 유지하여 전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이는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긴 핵융합 플라즈마 유지 기록으로, 연속 운전 기술 측면에서 중국의 강점을 보여줍니다. 중국은 이러한 연구들을 종합해 CFETR(중국 핵융합공학시험로)라는 자체 ITER 후속 실험로도 구상 중이며, 2030년대에 ITER와 병행하여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2030년까지는 핵융합-핵분열 하이브리드 발전소인 싱허(Xinghuo)를 100MW급으로 건설해 실증하겠다는 파격적인 계획까지 발표하며, 에너지굴기를 향한 과감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일본은 토카막 개념의 창안 초기부터 핵융합 연구를 이끌어온 주역 중 하나로, ITER에서 가장 핵심인 초전도 자석과 고출력 난류 가열 기술 등에서 강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ITER의 18개 거대 초전도 토로이드 코일 가운데 9개(8개 + 예비 1개)는 일본이 제작하여 제공했고, 유럽이 만든 10개와 합쳐 모두 현장에 인도되었습니다. 또한 일본은 ITER와 별도로 EU와 공동으로 초전도 토카막 JT-60SA를 자국에 건설하는 브로더 어프로치(Broader Approach) 사업을 진행해왔으며, 2023년 10월 마침내 첫 플라즈마 발생에 성공했습니다. JT-60SA는 ITER의 약 1/2 크기이지만 세계 최대의 운영 토카막으로서, 고성능 플라즈마 운전법과 물리 실험을 통해 ITER 실험을 지원하게 됩니다. 이처럼 일본은 자체 실험과 ITER 참여를 병행하며, 차후 자국형 DEMO 설계에도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미국은 1990년대 초반까지 자국 내에 대형 토카막 TFTR을 운영하여 최초로 D-T 핵융합 플라즈마를 달성하는 등 선도적 위치에 있었지만, ITER 초기 설계 단계에서 한때 탈퇴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이후 ITER 재합류와 함께 세계 최대 중앙 솔레노이드 자석을 전담 제작하는 등 주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미국 제너럴아토믹스(GA)사는 5층 높이에 무게 1,000톤에 달하는 중앙 솔레노이드 모듈 6개를 모두 완성하여 2023년까지 프랑스로 출하했습니다. 이 거대 자석은 ITER의 심장으로 불리며, 강력한 전자기 유도로 플라즈마 전류를 형성하는 핵심 부품입니다. 한편 미국은 정부 연구보다 민간 기업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추세인데, MIT 출신들이 설립한 커먼웰스 퓨전 시스템즈(CFS)가 주도하는 SPARC 토카막이 그 대표적 예입니다. SPARC는 고온초전도 자석을 활용한 소형 토카막으로, 반경 1.85m의 작은 공간에 ITER보다 두 배 이상 강한 12테슬라 이상의 자기장을 걸어 Q≥2 이상의 에너지 이득을 실증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웠습니다. 나아가 이론적으로는 Q≈10까지도 달성 가능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며 큰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이밖에도 여러 스타트업이 첨단 아이디어로 핵융합에 도전 중이며, 2022년 말에는 미 LLNL의 NIF 레이저 실험이 사상 최초로 출력 에너지가 입력을 넘어서는 (Q>1.5) 관성핵융합 성과를 내기도 했습니다. 비록 전력 생산과는 거리가 있지만 이러한 다양한 접근이 경쟁적으로 발전하면서, 핵융합 연구는 새로운 르네상스를 맞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소련 시절 토카막 개념을 탄생시킨 원조로서 ITER에서도 자기코일, 플라즈마 가열장치 등 첨단 부품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ITER용 전자가이로트론(ECH) 가열 장치와 고속 중성입자빔(NBI) 부품, 그리고 가장 상부에 들어가는 직경 9m짜리 PF1 코일을 제작하여 제공했습니다. 최근 국제정세로 일부 협력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측 인력과 기술은 ITER 현장에서 계속 참여하고 있습니다. 자국 내에서는 한동안 중단됐던 T-15MD 토카막을 2021년에 재가동하여 초전도화 개조를 마쳤고, 중장기적으로는 ITER 경험을 바탕으로 한 DEMO로 발전시키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이처럼 각국은 ITER라는 공동 목표 아래 힘을 합치는 동시에, 독자적인 핵융합 프로젝트들도 추진하며 미래 주도권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함께 퍼즐을 맞추면서도 서로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는 셈입니다.


퓨전 에너지의 미래: ITER 이후 상용화의 길


ITER가 완성되어 가동되면 인류는 마침내 자기장에 갇힌 작은 별을 손안에 넣게 됩니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지 않고 이 별빛을 전기로 바꾸어 인류의 에너지로 쓰려면, 넘어야 할 산들이 아직 많습니다. ITER에서 얻은 과학적 성과를 토대로 2040년대에는 DEMO라는 시범 핵융합발전소를 짓는 것이 국제 공동의 목표입니다. DEMO는 ITER보다 발전소에 한층 가까운 설비로, 연속 운전을 통해 전력망에 수백 MW급 전기를 직접 송전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유럽연합(EU)은 이미 EUROfusion DEMO 설계 프로그램을 가동하여 2050년대 초반 가동을 예측하고 있고, 한국도 K-DEMO 구상을 통해 비슷한 시기 실증로를 지으려 준비 중입니다. 일본과 중국, 미국 등도 각기 독자 또는 협력 DEMO 계획을 갖고 있으며, 민간 기업들도 2030~2040년대 소규모 시범 발전을 공언하는 등 다양한 경로가 모색되고 있습니다. 한 일본 연구에서는 운이 좋으면 2030년대에도 소규모 발전소가 가능하다는 예측부터, 늦어도 2050년대에는 첫 상업용 핵융합 발전기가 등장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옵니다. 물론 이는 낙관적 시나리오이고, 현실적으로는 2050년경 첫 전력 생산, 2060년대 이후 본격 상용화가 유력하다는 견해가 많습니다.


핵융합 상용화까지 남은 과제들은 공학적으로도 만만치 않습니다. 첫째로, 초고온 플라즈마를 오랫동안 담아두는 내벽 소재 개발이 시급합니다. 반응이 진행될수록 내부 벽이 중성자 폭탄에 맞듯 손상되기 때문에, ITER에서는 초기 벽면을 베릴륨으로 했다가 나중에 텅스텐으로 교체하며 다양한 재료 거동을 시험할 예정입니다. 둘째로, 삼중수소 연료를 자가 생산하는 증식기술 완성과 연료주기 처리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ITER 이후의 DEMO 단계에서는 운전 중에 자체적으로 삼중수소를 계속 만들어 보충해야 하는데, 이를 위한 블랑켓 기술과 화학공정 제어를 확립해야 합니다. 셋째로, 경제성 향상도 중요한 숙제입니다. ITER처럼 거대하고 복잡한 시설은 건설비와 운전비가 너무 높아, 향후에는 소형화와 고효율화를 통해 단가를 낮춰야 비로소 석탄이나 태양광 같은 기존 에너지와 경쟁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초전도 자석의 성능을 높여 더 작은 토카막에서도 높은 자기장을 얻는다든지(예: 고온초전도 테이프 사용), 토카막 이외에 레이저나 z-핀치 등 대체 핵융합 접근법도 고민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운전을 확보하는 일이 남습니다. 핵융합은 본질적으로 멜트다운(폭주) 위험이 없고 방사성폐기물이 적은 청정에너지로 알려져 있지만, 복잡한 부속 시스템들의 고장 방지, 방사선 차폐, 사이버보안 등 실제 발전소 운영 단계에서 고려해야 할 현실적 안전 이슈들이 있습니다. ITER를 통해 얻은 운영 데이터와 규제 경험은 이러한 부분에서도 큰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핵융합을 두고 '영원히 30년 뒤의 꿈'이라고도 말합니다. 그만큼 실현이 어려웠던 까닭입니다. 그러나 ITER 시대에 이르러 상황은 분명히 달라지고 있습니다. 인공태양을 통한 에너지 생산에는 비록 상용화까지는 더 많은 인내와 투자가 필요하겠지만, 미래에 우리가 쓰는 전기를 거대한 별의 힘에서 가져오려는 노력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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