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의 파도에서 살아남기

과장과 현실 사이에서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들

by 드라이트리

2020년 2월을 떠올려 봅니다. 당시에도 어떤 사람들은 저 멀리서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고 말했지만, 대부분의 일상은 멀쩡해 보였습니다. 주식은 오르고,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고, 사람들은 여행을 계획하고, 악수를 하고, 식당에 앉아 웃었습니다. 그러다 불과 몇 주 만에 세상은 완전히 재배치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자꾸만, 그때의 ‘공기’가 다시 떠오릅니다.


며칠 전, 한 글이 폭발적으로 퍼졌습니다. "뭔가 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요지의 글이었습니다. 그 글은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의 AI 변화는 ‘언젠가 올 미래’가 아니라, 이미 기술 업계부터 먼저 시작된 현실이며, 곧 대부분의 직업이 그 영향을 피하기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그 글에 반응한 이유는, 문장 자체의 공포감 때문만이 아니라 나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는 경험담이 여기저기서 겹쳤기 때문입니다.


https://shumer.dev/something-big-is-happening


이 경고가 힘을 얻은 가장 큰 배경은 구체적인 사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2026년 2월 5일, 두 주요 AI 연구소가 같은 날 새로운 모델을 공개했습니다. OpenAI는 GPT‑5.3‑Codex를, Anthropic은 Claude Opus 4.6을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두 회사 모두 장시간 작업과 에이전트형 업무를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다시 말해, AI가 단순히 답을 ‘잘하는’ 단계를 넘어, 컴퓨터 위에서 여러 단계를 거쳐 일을 ‘끝까지 수행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는 신호였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코딩’ 그 자체가 아닙니다. 코딩은 많은 지식노동의 공통 언어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AI를 만드는 과정 자체가 코드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코딩 에이전트가 강해진다는 것은, 제품 개발이 빨라진다는 뜻이기도 하고, 더 나아가 AI 개발에 AI를 투입해 가속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OpenAI는 GPT‑5.3‑Codex가 자기 개발 과정에서 학습 디버깅·배포 관리·평가 진단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공식 문서에 적었습니다. AI가 스스로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는 문장이 수사 이상의 의미를 갖는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이제부터는 모든 것이 순식간에 무너질까요. 저는 여기서 ‘현실적인 두려움’과 ‘현실적인 제약’을 같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두려움은 과장이 아닐 수 있습니다. METR의 시간지평선 지표는, AI가 끝까지 성공할 수 있는 작업 길이가 장기적으로 빠르게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최근 업데이트에서는 특정 구간에서 두 배 주기가 더 빨라졌다는 추정도 제시됩니다.


https://metr.org/blog/2026-1-29-time-horizon-1-1/


하지만 제약도 분명합니다. METR은 이 지표가 AI가 자율적으로 행동한 시간이 아니라 사람 기준 작업 길이를 50% 성공 확률로 완료할 수 있는 수준임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이 측정은 주로 소프트웨어·사이버보안처럼 비교적 정형화된 과제에 편중되어 있다는 점도 함께 말합니다. 즉, 그래프의 기울기가 곧바로 모든 사무직 자동화의 기울기와 같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또 하나의 제약은 경제의 속도입니다. 기술이 데모에서 강력해졌다고 해서, 조직이 내일부터 바로 프로세스·책임·규제·데이터 인프라까지 전부 바꾸지는 못합니다. 신기술은 보통 ‘보완투자’가 있어야 효과를 내고, 그 과정에서 초기 생산성이 오히려 눌릴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경제학에서는 오래 논의되어 왔습니다. AI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질문이 더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AI가 인간을 대체할 수 있나가 아니라, 내 일의 어떤 조각이 먼저 재조립될까입니다. 그 조각은 보통 화면 위에서 반복되고, 정형화되어 있고, 문서와 표, 코드, 리서치처럼 ‘입력과 출력’이 분명한 영역에서 먼저 바뀝니다. 그리고 바뀌는 방식은 해고보다 더 조용할 때가 많습니다. 채용이 줄고, 신입에게 주어지던 업무가 사라지고, 팀의 형태가 달라집니다. 이런 변화는 겉으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어느 순간 ‘당연했던 사다리’가 사라진 뒤에야 체감됩니다.


이런 변화 앞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첫째, AI를 검색창처럼 쓰는 습관을 버리고, 동료처럼 일을 맡기는 습관을 들이는 것입니다. 둘째, 가능한 범위에서 더 나은 도구에 접근해 품질과 한계를 직접 체험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서비스들은 유료 구독을 중심으로 사용량·기능 접근을 확장하고 있고, ChatGPT는 요금제에 따라 모델 선택과 사용량이 달라지며, Claude 역시 월 20달러 수준의 Pro 구독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셋째, 가장 중요한 것은 ‘적응 근육’을 키우는 일입니다. 특정 도구를 완벽히 익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도구가 나올 때마다 빠르게 시험하고, 내 일의 일부를 다시 설계하는 습관입니다. 지금은 그 습관이 곧 경쟁력이 되는 시기입니다. 다만 동시에, AI의 결과물을 그럴듯함 때문에 덜컥 신뢰하지 않는 습관도 같이 필요합니다. 50% 성공 확률의 지표가 시사하듯, 능력이 늘수록 위험은 아예 못해서 생기는 위험이 아니라 대체로 맞아 보여서 생기는 위험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입니다.


뭔가 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말은 공포를 팔기 위한 문장이기보다, 질문을 바꾸자는 제안으로 읽는 편이 건강하다고 생각합니다. 미래를 맞히는 사람이 되기보다, 변화가 올 때마다 내 일의 구조를 다시 짜는 사람이 되는 것 말입니다. 그게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준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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