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근 탐험대원 / 한 가지 주제로 깊게 연구한 식물탐험가
고진감래(苦盡甘來)의 뜻은 힘든 일을 겪은 후에 단맛 같은 즐거움이 찾아온다는 뜻이다. 2년 동안 한여름에 하천에서 탐구하면서 더위에 땀을 많이 흘렸고, 풀숲의 모기들에게 많이 물리기도 했다. 환삼덩굴은 가시가 많아 피부에 닿으면 따가웠고, 하천변 제방 둑에 박힌 못에 찔려서 병원에 간 적도 있었다. 하지만 친구들과 팀을 이뤄 꾸준히 현장을 탐사하고 분석해 새로운 사실을 알아내면 배우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정말 뿌듯했다.
반전(反轉)이 있는 식물탐사
하천변 토종식물과 생태계교란 식물이 서식하는 고정조사구(1m x 1m)를 조사했다. 무덥던 8월 어느 날 조사하러 갔던 우리는 충격을 받았다. 인천 굴포천 주변에 제초작업을 해서 그동안 관찰하던 모든 식물이 제거된 것이다. 갑작스럽게 탐구계획에 문제가 생겨서 허무하고 허탈했다.
하지만 주저앉을 순 없었다. 지금까지 관찰한 조사내용과 어떻게 연결할지 친구들과 함께 고민한 끝에 제초작업 이후에 이곳이 어떻게 변할지 지켜보기로 했다. 조사 결과 생태계교란 식물이 제거되면서 토종식물이 우점한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예상치 못한 위기가 더 좋은 조사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생태계교란 식물은 나쁘기만 할까?
키가 3m 넘게 자라는 단풍잎돼지풀은 급속도로 성장해서 다른 식물들이 햇빛을 보지 못하게 그늘을 만드는 생태계교란 식물이다. 나는 환삼덩굴을 먹이로 살아가는 네발나비 애벌레처럼 단풍잎돼지풀을 기주식물로 사는 곤충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곤충이 짝꿍처럼 붙어 살면서 자신의 먹이로 삼는 식물이 바로 기주식물(寄主植物)이다. 그래서 매주 조사를 나갈 때마다 단풍잎돼지풀을 유심히 관찰했다. 처음엔 단풍잎돼지풀 이파리에 구멍이 여러 개 발견되었고, 그 다음 주 조사하러 갔을 땐 누군가 갉아먹은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거의 1mm 크기의 작은 곤충들이 잎 하나에 20마리도 넘게 붙어 있었다.
곤충을 잘 아는 국립생물자원관 선생님께 사진을 보냈더니 방패벌레과 곤충이라고 알려주셨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 인터넷도 검색하고 도서관에서 곤충도감을 찾아보아서 '해바라기방패벌레'라는 이름을 알게 되었다. 그 다음 주에 갔을 때는 단풍잎돼지풀에 붙은 해바라기방패벌레 수가 더 많아져서 단풍잎돼지풀은 거의 잎맥만 남아 있었다. 일부러 제거하지 않아도 생태계교란 식물이 어떤 곤충에게 유용한 먹이가 되어 자연적으로 먹고 먹히는 먹이그물에 의해서 소멸한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기쁨과 짜릿함을 느낄 수 있었다. 모두 이 세상에서 소중한 생명체인데, 우리 인간의 기준으로 생태계교란 식물로 지정되면 이유도 모른 채 억울하게 뽑혀야 했기 때문이다. 토종 식물과 교란 식물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살면서 경합도 벌이고, 다른 양서류와 곤충의 서식처가 되어 주는데, 인위적으로 제거하려니 자연에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중금속 청소기 단풍잎돼지풀
단풍잎돼지풀이 중금속을 제거해주는 효능이 있다는 것은 보고서를 통해 알고 있었는데 이 사실을 직접 확인해보기로 했다. 단풍잎돼지풀이 심어진 토양과 식물체 자체에 구리(Cu), Ni(니켈), 납(Pb)이 얼마나 들어있는지를 검사해보는 것이다. 대조군으로는 환삼덩굴을 정했다. 각각의 식물체에 중금속이 과연 얼마나 들어 있을지 궁금했다.
단풍잎돼지풀과 환삼덩굴은 생태계교란 식물이기 때문에 식물체를 채취하기 전에 한강유역환경청에 허가서를 받아야 했다. 각 식물체의 잎을 100g 정도 채취해서 국립환경과학원에 분석을 의뢰하면서 담당 선생님께 이메일로 방법을 여쭤보았다. 화학약품 처리, 고온 조건과 냉각 처리 등의 복잡한 중금속 전처리가 끝난 식물체를 ‘유도결합플라스마-원자발광분광법’을 이용해서 분석한다고 한다. 고주파 유도 콜코일에 의해 형성된 아르곤 플라스마에 주입하여 6,000-8,000K에서 들뜬 원자가 바닥상태로 이동할 때 방출하는 발광선 및 발광 강도를 측정하여 원소의 정성 및 정량분석하는 방법이다. 측정파장이 구리는 324.754nm, 납은 220.353nm, 니켈은 231.604nm 등 중금속마다 차이가 있다고 한다.
거의 3주를 기다려서 검사 결과서를 받아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놀라운 결과를 볼 수 있었다. 대조군인 환삼덩굴에 비해 단풍잎돼지풀이 실제로 구리(Cu)를 두 배 이상 흡수했다. 검사를 직접 의뢰해서 결과를 확인하니 보고서에서 글로만 읽었던 내용보다 더 구체적인 수치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어서 정말 신기했고 성취감을 느꼈다. ‘고진감래’는 이럴 때 쓰는 사자성어가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