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간 사용된 오던 마그네틱 카드의 마지막 날. 2025.12.31
뉴욕 지하철의 풍경 중 하나인 삑(Beep) 소리의 울림이 끝나는 날
1904년 개통한 뉴욕의 지하철은 다양한 변화를 겪어왔다. 1993년의 뉴욕은 여전히 흑백 영화의 잔향을 품은 도시였다. 회색빛 열차가 철로를 달리고, 구겨진 달러 지폐를 동전으로 바꾸어 토큰을 사던 시절. 그때 등장한 노란색 플라스틱 한 장이 도시의 리듬을 바꾸었다. 이름하여 메트로카드(MetroCard). 납작한 카드 한 장으로 개찰구를 통과하니, 그 ‘삑’ 하는 가벼운 소리가 마치 새로운 시대의 신호음처럼 들렸다.
처음엔 서툴렀다. 카드를 기계에 ‘스와이프(개찰구에 부착된 마그네틱 리더기에 카드를 긁히는 동작)’하는 각도를 익히기까지, 개찰구 앞에 잠시 대기줄이 생기기도 했다. 생각보다 이 스와이프가 처음에는 쉽지 않다. 그래서 이 것을 한 번에 통과하는 사람이 진짜 뉴요커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곧 그 리듬은 뉴요커들의 손에 익숙해졌다. 출근길의 분주함과 함께 손끝으로 그어지던 일종의 도시 속 의식. 금속의 무게 대신 플라스틱의 가벼움이 시대의 감각을 바꿔놓았다.
당시 뉴요커들은 반신반의했다. 익숙한 금속 토큰이 사라진다는 말은 곧, 지난 세대의 정서가 사라진다는 뜻이었으니까. 하지만 사람들은 곧 새 시스템에 적응했다. 출근길엔 카드 한 장 휙 내밀고, 바쁜 점심시간엔 잔돈 계산도 필요 없었다. ‘삑’ 한 번이면 모든 것이 해결되어 어느덧 도시의 박자가 조금 빨라졌다.
메트로카드는 ‘뉴욕다움’을 상징했다. 그 노란색 플라스틱은 뉴욕의 시민권이었다. 퇴근길 재즈 버스커의 손끝에도, 학생의 오래된 지갑 속에도, 여행자의 티켓홀더에도 같은 카드가 있었다. 노란색은 도시의 새벽 불빛처럼 곳곳에 스며 있었다. 알루미늄의 냉기 대신, 플라스틱의 따뜻함이 뉴욕의 생활 온도를 올렸다.
누군가 잃어버린 카드는 역무소 유리창에 붙은 “Found MetroCard” 쪽지로 다시 주인을 찾기도 했다.
늘 그렇듯 기술은 늘 한 발 앞서 간다. 스마트폰과 애플워치가 새로운 결제의 수단으로 사용되면서, 메트로카드는 천천히 뒷자리로 물러났다. ‘OMNY’라 불리는 비접촉식 시스템이 도입되었고, 그 매끄러운 패널은 개찰구의 풍경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다가올 2026년에는 이 노란 카드가 더 이상 찍히지 않는다.
오늘, 2025년의 마지막 날. 누군가는 낡은 지갑 속 카드를 꺼내 마지막으로 ‘삑’ 소리를 남기게 될 것이다.
한 장의 플라스틱이 연결해 온 도시는 이제 더 가벼운 전파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 얇고 노란 카드가 만들어낸 감각의 시간, 그 손끝의 온도는 오래도록 뉴욕의 일부로 기억될 것이다.◼︎
필자 소개 : 장성환(pigcky@gmail.com)
현재 203인포그래픽연구소 대표| <리더스다이제스트>, 연합뉴스 그래픽뉴스팀 창설, <주간동아>, <과학동아> 등에서 아트디렉터로 활동하다가 2003년 홍대앞에서 203 X 디자인스튜디오를 설립했다. 이후 2009년 홍대앞을 기록하는 동네잡지 <스트리트H>를 창간해서 현재 12년 차에 이르고 있다. 2012년 인포그래픽 연구소를 설립하고 <윤디자인연구소 갤러리>에서 현직 언론사 인포그래픽 담당자들과 인포그래픽 그룹 전시회를 주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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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20 말로피에 국제 인포그래픽 어워드 3년 연속 동상
2019~2020 싱가포르 아시안 미디어 어워드 인포그래픽 금상, 동상 수상
2020 레드닷 브랜드&커뮤니케이션 부분 위너
2020 디자인대상 공로부문 대통령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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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 X 인포그래픽연구소 http://203x.co.kr/
홍대앞 동네잡지 <스트리트H> http://street-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