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황홀경
아모레퍼시픽미술관(APMA)의 고미술 기획전 '조선민화전(Beyond Joseon Minhwa)'이 내일이면 막을 내린다. 내용이 어렵지 않은 전시여서 아이들과 그림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수다 떠는 재미가 쏠쏠했었다. 사실 이 전시는 작품도 작품이지만 디스플레이가 너무 궁금해서 더욱 가보고 싶은 전시였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작품들보다는 인상적이었던 전시의 디스플레이에 관해서 가볍게 이야기해보려 한다.
지하에 위치한 전시공간으로 내려가면 아래 사진의 장면을 마주하게 된다. 흰 벽에 은은하게 빛나며 소개되어 있는 이번 전시의 타이틀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마치 벽에 투사된 대형 프로젝션인가 싶은 착각이 든다. 하지만 천장을 자세히 보시면 저 타이틀을 비추기 위하여 수많은 스포트라이트 조명들이 배치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전시 조명 디자인에 많이 활용되는 Erco 사의 Pullux Contour라는 조명으로 추측된다. 이 조명은 윤곽 스포트라이트 기능을 갖추고 있는데, 앞에 달린 프레이밍 부착물을 통해 좁고 정확한 빛을 투사하여 특정 영역을 강조하거나 윤곽을 드러내는데 특화되어 있다. 이 전 글에서 잠시 언급했지만, 김리아 갤러리의 전시에서도 헬렌 그로스만의 작업을 핀포인팅 하기 위해 아래의 조명을 사용하였다.
전시공간은 의도적으로 전체적인 공간의 조도를 낮췄고, 각 작품들의 크기에 맞춰 적당한 조도의 조명을 투사하였다. 이러한 디스플레이는 멀리서 바라보면 작품들이 보석처럼 빛나는 느낌을 받음과 동시에 관람객들이 실루엣만 남는 것처럼 보이는 효과까지 얻어낸다. 일반적으로 밝은 전시공간에 배치된 회화 작업들을 많은 관람객들이 동시에 관람할 경우, 그들의 다양한 옷 색깔도 함께 눈에 들어와 작품에 온전히 몰입하기 쉽지 않은 상황들이 종종 발생한다. 하지만 이 전시는 디스플레이의 효과 덕에 관람객들이 두드러지지 않으면서 작품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그리고 은은한 노란빛이 감도는 조명의 색온도는 민화가 그려진 종이의 톤을 한층 더 고급스럽게 만들며 작품들의 색채감도 더욱 선명하게 느낄 수 있게 한다.
전시를 관람하러 가면 작품들 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공간의 구성을 습관적으로 둘러보게 된다. 좋은 전시들이 너무나 많은 요즘, 공간 디자인에도 신경을 많이 쓰는 전시들이 늘어나 관람하는 재미가 배가된다. 특히나 이번 조선민화전은 근래에 본 회화전 중 손꼽히게 잘 구성된, 특히나 조명을 잘 활용한 좋은 전시였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