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 인간 서사의 시각화

다니엘 아샴 / 에릭 오

by 윤재원

다니엘 아샴의 세 번째 한국 전시가 페로탕 서울에서 7월 10일 개막하였다. 그의 신작을 보고 나니 작년에 제주도에서 관람하였던 에릭 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OPERA가 떠올랐다. 두 작가의 작업을 순환 구조와 기억이라는 키워드로 함께 엮어 리뷰해 보았다. 각 전시가 진행 중인 공간은 다음과 같다.


Daniel Arsham - Memory Architecture @Perrotin Seoul (2025년 7월 10일 ~ 8월 16일)

Erick Oh - Retrospective @House of Refuge

Daniel Arsham - Memory Architecture / Erick Oh - Retrospective

1. 인류 문명의 순환과 영속성

Daniel Arsham

페로탕 갤러리 2층 중심에 아샴의 신작 'Stairs in the Labyrinth'가 놓여있다. 고전적 형태의 흉상과 그 내부의 계단, 미로, 아치 등의 건축 조형요소들을 바라보면 마치 유럽의 어느 박물관에 놓여있는 작품을 감상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 작품은 서양의 고전적인 조각과 건축을 만들어내는 방식인 석조가 아닌, 샌드 캐스팅(모래 주조)이라는 가장 새로운 기술을 활용하여 제작되었다. 마치 한 시대의 기억을 다른 시대의 기술과 물성을 통해 되살려 시간의 순환적 흐름과 영속적인 인간 문명을 압축하여 형상화하는 듯하다.

Erick Oh

피라미드 형태의 직접적인 계층구조 틀 안에서 다양한 인간 군상이 반복적으로 움직인다. 작품 전체에 명확한 시작과 결말이 없이 영원히 반복되고, 관통하는 사건의 축이 보이지 않기에 관람객은 어디로 시선을 두든 항상 새로운 이야기를 포착하게 된다. 낮과 밤, 탄생과 죽음, 전쟁과 평화, 권력의 교체 등 다양한 사회 현상을 반복적으로 보여주고 이러한 사건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끊임없이 되풀이된다. 감독인 에릭 오는 '인간 사회, 역사, 삶이 반복적인 사이클을 그린다'라고 이야기하며, 우리 자신과 사회가 끊임없이 과거를 반복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Daniel Arsham - Stairs in the Labyrinth / Erick Oh - OPERA


2. 집단적 기억을 담는 그릇

Daniel Arsham

아샴은 흉상 속에 건축 구조물을 배치하였다. 그리고 작품을 자세히 보면 공간 내 배치한 인물들의 얼굴을 표현하지 않았다. 이러한 익명성을 통해 한 인물의 기억이 아닌, 마치 스발바르의 국제 종자 저장고처럼 보편적인 인류의 기억이 집적되어 있는 기억 저장고와 같은 공간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흉상 또한 구체적인 인물을 특정하지 않는다. 이러한 '누구의 것도, 모두의 것도 아닌' 흉상은 관람객 각자의 경험과 기억이 투영될 수 있는 그릇이 된다.

Erick Oh

얼굴 없는 수많은 캐릭터들은 정체성이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오로지 각자의 행위만 반복한다. 이를 통해 작품은 한 개인의 서사가 아닌 인류 전체의 보편적인 기억과 경험을 드러낸다. 작품의 구조가 여러 계층, 행동, 사건을 한눈에 보여주듯, 관람객은 작품을 보며 특정 인물의 감정보다는 자신이 기억하는 인류의 역사나 사건, 사회 공동체의 경험 등을 자유롭게 환기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에릭 오의 작품은 관람객들에게 덧입힐 인류의 집단적인 기억을 담고 있는 커다란 그릇으로 작동한다.


Daniel Arsham - The Layered Body Study / Erick Oh - OPERA



아샴의 조각은 개념과 확장 가능성에 비해 내부 공간 구성이 단조로운 점이 아쉬웠지만, 추후 디벨롭을 통한 다음 작업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그리고 하우스 오브 레퓨즈의 지하 어두운 공간에 설치된 에릭 오의 작업들은 마치 고대의 동굴벽화가 아주 세련되고 현대적인 방식으로 재해석된 느낌을 받았다. 전시가 계속되고 있으니, 두 작가의 작업들을 직접 경험하고 비교해 보시길 적극 추천한다. 마지막으로 직접 찍어온 에릭 오 감독의 OPERA 영상 일부를 첨부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Erick Oh - OP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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