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글을 쓰는 이유 : 위안받는 글쓰기

히로시 스기모토와 존 파슨의 작업이 주는 위안

by 윤재원

지인의 아버지께서는 일이 너무 힘들 때면 갤러리로 그림을 보러 가는 것이 낙이었다고 하셨다. 그리고 관람은 컬렉팅으로 진화하여 굉장한 컬렉터가 되셨다. 일이 너무 많아 지친 마음으로 퇴근하여 소파에 널브러져 있던 어느 날, 요즘 내가 예전보다 왜 더 많이 전시를 보러 다니고 관련된 글을 쓰고 싶어 하는지 생각하다 문득 그 아버님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전시 관람은 작품을 분석하기 위함이 아니라 작품을 통해 나의 내면과 대화하는 것이라는 걸. 그 행위를 통해 위로받고 힘을 내기도 한다는 걸. 작품들을 수집함과 마찬가지로 어찌 보면 난 이런 글들을 쓰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나의 감상을 다른 사람들에게 수다 떨 듯 쓰는 글. 쓰면서 내가 위안받을 수 있는 그런 글 말이다.



히로시 스기모토(Hiroshi Sugimoto)의 Seascape 시리즈를 참 좋아한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과 파도 한 점 없는 바다가 평온하게 맞닿은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복잡했던 머릿속이 조금은 정리되곤 한다. 내 핸드폰 배경화면도 언제나 그의 작품인데, 흑백이기에 하늘은 하얗고 바다는 까맣게 표현되어 위아래로 그라데이션 지는 이미지는 그 위에 어떤 앱을 배치하여도 화면이 깨끗하게 정리 돼보여 기분이 좋아진다. 그가 설계한 에노우라 측후소(Enoura Observatory)도 꼭 방문할 예정이다.

Hiroshi Sugimoto - Aegean Sea, Pillion, 1990 ©Hiroshi Sugimoto


미니멀한 작품들을 유독 좋아하는 건 아마도 내가 건축설계를 업으로 삼고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하나의 건축물을 설계하는 동안 건축가는 수많은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업한다. 의도한 공간을 만들어내기 위해 건축가는 쾌적한 실내 공기질 확보를 위한 공기조화설비, 깨끗한 물을 공급하기 위한 위생배관, 지저분한 물을 처리하기 위한 하수배관, 빗물을 처리하기 위한 우수배관, 불이 났을 때 불을 끄기 위한 스프링클러나 소화가스 배관, 각종 전기의 사용을 위한 트레이 등을 포함한 수많은 설비들을 정확히 배열하고 마감재로 마감을 해야 한다. 미니멀한 작업으로 유명한 영국의 건축가 존 파슨(John Pawson)은 그의 작업들 뿐만 아니라 'minimum'이라는 저서에서 이러한 행위들을 통해 본질에 집착하고 불필요한 요소를 철저히 배제함으로써 더 깊은 감각과 경험을 이끄는 '절제의 미학'을 강조한다. 잘 정돈된 좋은 건축물을 경험할 때 벽과 바닥 그리고 천장 속에 숨겨진 수많은 분들의 노고를 너무나 잘 알기에, 미니멀한 작품들과 오브제들을 바라보면 마찬가지로 나도 모르게 마음이 차분해지곤 한다.

John Pawson - Giessen House ©Harry Crow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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