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 곰리 + 안도 다다오
자연 속에 편안하게 놓인 건축과 작품들이, 방문하는 계절과 시간에 따라 그 아름다움을 다채롭게 선사하는 뮤지엄 산은 우리 가족이 사랑하는 공간이다. 안도 다다오와 안토니 곰리가 협업한 새로운 상설 전시관 'GROUND'가 2025년 6월에 개관한다는 소식을 듣고, 건축과 조각을 각각 전공한 우리 부부는 아이들 못지않게 아이들의 여름방학을 손꼽아 기다렸다.
바람 한 점 없고 습도마저 높아 더욱 뜨거웠던 2025년 8월 12일 화요일 오후 3시경. 내리쬐는 햇빛 덕에 유독 더 새빨간 '마크 디 수베르(Mark di Suvero)'의 '제라드 먼리 홉킨스를 위하여(For Gerard Manley Hopkins)' 옆에 'GROUND'의 입구가 조그맣게 톡 튀어나와 있다.
안도의 건축물답게 길게 돌려놓은 진입로를 따라 플라워 가든을 둘러보며 입구에 다다른 후 계단을 따라 땅 속으로 내려간다. 메인 홀에 진입하기 전 곡선형 공간의 중심에 놓여있는 벤치에 앉아 전면의 큰 창을 통해 메인 홀을 먼저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드디어 메인 홀로 진입. 로마 판테온의 약 4분의 3 규모인 지름 25m, 높이 8m 돔 형 공간. 그 끝자락을 일부 잘라내 바깥의 풍경과 후끈한 공기가 그대로 유입된다. 실내인지 실외인지 규정하기 모호한 서늘한 회색 콘크리트 공간 안과 밖에 놓인 7점의 부식된 적갈색 철재 조각들. 공간의 바깥으로 보이는 진한 녹색의 나무들과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연신 땀을 닦다 바닥에 드러누워 조금씩 불어오는 바람을 맞았다.
비나 눈이 오면 어떡하지? 돔 최상단의 구멍은 유리로 막혀있지만 잘린 공간의 단면에는 셔터나 문 등 막을 수 있는 장치를 찾아볼 수 없다. 물은 바닥이 조금만 기울어도 기울어진 쪽으로 흐른다. 평평한 듯 하지만 절대 평평하지 않을 메인 홀의 바닥. 비나 눈이 오는 날 꼭 다시 방문하여 물의 흐름뿐만 아니라 돔 형태의 공간 내 울려 퍼질 빗소리, 차분히 쌓여가는 눈이 만들어 낼 설경 또한 꼭 느껴볼 예정이다. (개인적으로 눈 오는 날의 뮤지엄 산을 가장 좋아한다.)
GROUND 내 곰리의 조각들은 인체와 흡사한 스케일로 구성된다. 그 누구도 이 작품들이 사람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지만, 공간에 방문한 관람객들은 조각들을 친구처럼, 가족처럼, 또 다른 나처럼 인식하는 듯하다. 곁에 서서 천장을 올려다보기도 하고, 곁에 앉아 조각을 마주 보기도 하고, 곁에 드러누워 낮잠을 청하기도 한다. 누군가의 코 고는 소리가 잠시 쩌렁쩌렁 울려 퍼졌는데, 돔 형태의 콘크리트로 마감된 공간은 이러한 소리를 더욱 생동감 있게 증폭시킨다. 함께 간 둘째가 자연스럽게 바깥의 조각 옆으로 가더니 먼 산을 바라보며 풍경을 사진에 담았다. 왜 조각을 찍지 않고 조각 옆에 서서 풍경 사진을 찍었을까? 안도와 곰리는 공간과 작품이 주인공이 되길 바라지 않고, 공간과 작품을 통해 이 장소를 경험하는 지금 이 순간을 관람객 모두가 각자 오롯이 느껴보길 바라지 않았을까? 그들이 우리 둘째를 바라보았다면 슬며시 미소 지었을지도 모른다.
관람을 마친 후 다시 플라워 가든으로 향하는 길은 메인 홀의 바깥에 위치한다. GROUND의 공간, 곰리의 조각들, 원주의 자연을 최대한 오랜 시간 동안 감상하도록 안도는 나오는 길 역시 동선을 최대한 길게 돌린다. 이렇게 주인공보다는 배경이 되는 건축이 이 땅에는 더 어울린다고 항상 생각한다.
뮤지엄 산의 창립 비전인 '소통을 위한 단절'을 위해 제임스 터렐관(2013), 명상관(2019), 빛의 공간(2023)에 이어 만들어진 GROUND(2025)는 일상의 소음과 단절하며 스스로의 내면과 소통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새로운 공간으로 손색이 없었다. 그리고 기존의 전시공간에 11월 30일까지 곰리의 다른 작업들도 전시되니 꼭 들러보시길 바란다.
Antony Gormley - Drawing on Space @Museum SAN (2025.06.20 ~ 2025.11.30)